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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Sep 03. 2018

로마원형극장에서 별을 지붕삼아 보는 영화, 풀라 영화제

기대 만큼 근사했던 Pula Film Festival


내가 수강하던 크로아티아어 수업에선

각자 한 학기에 두 번씩

크로아티아어로 발표를 해야했다.


한번은 자기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한번은 크로아티아에 대해서,

15-20분 정도 발표하면 된다.


처음엔 1-2달 크로아티아어 배우고

그걸 할 수 있겠나 싶었는데,

준비에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난 발표할 텍스트를 크로아티아어로

2-3페이지 정도 적어서

원어민인 선생님에게 교정받은 후,

그 중에서 중요한 문장들을 외워서 발표했는데,

그렇게 발표를 한번씩 넘기고나면,

크로아티아어가 부쩍 늘었다.


아무튼

5월 크로아티아에 대한 두번째 발표에서

어떤 팀의 주제가 크로아티아의 페스티벌이었고,

그 때 풀라국제영화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붕 없는  로마 원형극장에 앉아

별이 가득한 하늘을 지붕 삼아

영화보는 사진을 그 때 보고서,

"풀라영화제"를 내 위시리스트에 올렸다.


그리고 정말 7월 마치 무슨 영화인이라도 되는 양,

영화제 맞춰서 풀라(Pula)에 갔다.


나는 그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풀라영화제에

당연히 사람들이 많이 갈 거라고 생각해서

한달 전에 미리 숙소 예약하고,

풀라행 버스 티켓도 예매했다.


풀라 가기 전 7월 초에 약 10일 동안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을 여행했는데,

거기 숙소와 버스티켓보다

7월 중순 풀라 숙소와 버스티켓을

훨씬 더 일찍 예약했다.


워낙은 영화티켓도 예매해둘까 했는데,

그게 다른 극장에서 보는 건 공짜,

원형극장에서 보는 건 25쿠나(약 4000원)라서

인터넷으로 결제하기 너무 소액인 것 같아

그냥 나중에 해야지 했다.


근데 영화제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풀라영화제에 대한 광고가 자그레브에 거의 없어,

별로 사람들이 관심 많이 갖는 행사가 아닌 것 같고,


내가 갈 수 있는 날 원형극장에서 하는 게

당시 미개봉작였던 "맘마미야2"나

(맘마미야2는 다른 날 상영예정이었다)

수요가 많은 다른 미국이나 유럽 영화가 아니라

크로아티아 영화들이었는데,

내용도 좀 잔잔한 다양성 영화 분위기라

예매경쟁이 치열할 것 같지 않고,


(물론 난 크로아티아어 영화라서 더 좋았다.

여기 아니면 

어디서 또 크로아티아 영화를 보겠는가?)


그전에 2018년 2월,

"자그레브 독스(Dox)"라는 영화제 할 때 보니,

인터넷 예매와 별개로

현장판매용 티켓을 따로 남겨두길래,


왠지 풀라(Pula)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영화 티켓은 따로 예매하지 않고,

그냥 떠났다.


그리고 예상대로

영화 티켓은 아무 문제 없이

풀라에서 현장예매에 성공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풀라 영화제에 열광하지 않아서,

어떤 영화를 보러 가든

자리가 "널널했고",


첫날 극장에서 내가 크로아티아어로 인사하고

표사고 했더니,

 

두번째 날엔 다들 내게 크로아티아어로 말하고,

영화 시작 전에 하는 행사도

이제 나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고

다들 그냥 크로아티아어로만 진행할 정도로

(보통 그런 행사 전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인삿말은 영어로 진행한다)

그나마 많지 않은 관람객 중에

외국인 관람객은 더 없었다.


(물론 자그레브에서도 극장의 동양인은 

항상 나 혼자였다.) 


만약 한국에 이런 행사가 있었으면,

며칠 전에 매진되거나

줄 오래 서거나 해야됐을 것 같은데,

인구가 한국의 1/10도 안되는 크로아티아에선 

그런 시작도 전에 힘 다 빼는 

의미 없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풀라(Pula)는 크로아티아 서북부 

이스트라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 자그레브(Zagreb)에서 풀라까진

버스로 5시간 내외가 걸리고,

비용은 편도 18-25유로다. 


비행기로는 40분 걸리고,

비용은 편도 35-100유로다.


이스트라 반도 서쪽에 위치한 크로아티아 제3도시

리예카(Rijeka)에서는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고,

비용은 편도 11-15유로다.


http://www.worldeasyguides.com/europe/croatia/pula/pula-on-map-of-croatia/




풀라(Pula)는 리예카(Rijeka)와 마찬가지로

역사가 오래된 도시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풀라는

Polai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신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스어 '도시'를 의미하는 polis와 

관련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는데, 

그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이후 폴라(Pola)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어, 

풀라의 상징인 원형극장(Amphitheater)이

1세기에 건설되기도 했다.


이후 동고트, 비잔틴, 프랑크 왕국

이탈리아의 여러 공화국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에 속하게 된다.


이후 합스부르그 왕국의 일부가 되어,

19세기 초반 나폴레옹의 일리리야 지방이 된

몇년을 제외하고,

1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크로아티아 해안 도시들을 병합하기 전까지는

마땅한 항구가 없던 오스트리아의 지배 당시 

풀라는 크게 발전했고,

당시 오스트리아 해군의 주둔지로, 

1차세계대전 당시 전함 기지이기도 했다.


패전국인 오스트리아가 물러난 후

풀라는  

2차세계대전 때까지 이탈리아에 편입되고,

1947년 이후 유고슬라비아,

1991년 이후엔 크로아티아의 영토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로 편입될 즈음 

반 파시스트 분위기 속에서 

당시 풀라에 거주했던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떠나

현재 이탈리아인은 풀라 인구의 5%정도라는데,

  

그래도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고,

또 이탈리아와 가깝기도 해서 그런지,


풀라는 크로아티아어와 함께 이탈리아어를 

공식어로 지정했고,

그래서 표지판엔 두 언어가 다 명시되어 있다.


도시 로고에도 도시명이 

이탈리아어와 크로아티아로 쓰여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의 오랜 전통인지, 

아님 그냥 독일인들이 많은 건지,

독일어 화자들도 많이 방문해서,

여기저기서 독일어가 들리고,


여행 안내문엔 영어독일어까지 등장하는 

다언어 도시다.


풀라는 아름다운 바다로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유명한 여름 휴양지라, 

물가는 자그레브나 리예카보다는 비싸고, 

두브로브니크나 스플리트보다는 싼 것 같다.


즉, 크로아티아 어디나 그렇듯이 

마트 물가는 한국보다 싸고,

식당 물가는 한국보다 좀 비싸다.


그리고 역시나 오래된 관광지라서 그런지, 

자그레브와 달리

자정까지 여는 상점과 식당이 많고,

한국처럼 자정이 다 된 밤시간에도 

시내가 환하고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닌다.




난 2018년 7월 어느 날 풀라에 가기 위해

자그레브에서 8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풀라에는 1시 25분 도착 예정이었는데,

리예카 조금 지나서  

오른쪽 뒤쪽 바퀴가 펑크가 나서

버스가 길에 섰다. 


그런데 스페어타이어가 없어서 

기사아저씨가 택시 타고 타이어를 사왔고, 

새 타이어로 갈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파티야 지나서 또 그 바퀴가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한시간 넘게 거기 서서 기다려서,

풀라 가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4시 다 되서 풀라에 도착했다.


5시간 30분 걸리는 거리를  

7시간 30분만에 도착한거다.


풀라 시외버스터미널은 이렇게 생겼다.

리모델링된지 얼마 안 되었는지,

꽤 크고 깔끔하다.


하지만 여행안내센터는 없어서,

지도나 여행정보를 얻으려면 시내까지 

10-15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벽에 쓰인 여러 환영 인사 중 

중국어랑 한국어도 보이는데,

난 풀라에서 동양인은 별로 못 봤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남쪽으로 걸어가야

시내가 나오는데,

그 중간 사거리에는 

이 도시에 대한 기대감을 확 낮추는, 

희안한 조형물도 서 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풀라 가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

원형 경기장에서 영화보는 거라,

숙소에 가서 체크인하자마자 

영화표 예매하러 시내로 갔다.


풀라는 아래 지도처럼 생겼다.


그런데 이 지도 방위가 좀 이상해서

왼쪽이 북쪽이고, 위쪽이 동쪽이다. 


지도 왼쪽, 

즉 북쪽에 시외버스터미널과 공항이 있고,

지도 아래, 서쪽 반도에 구시가가,

지도 오른쪽, 남쪽엔 여러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http://www.croatia-travel-info.com/maps/pula-map.htm


위 지도 1번이 원형극장이고,

7번과 6번 사이에 

영화제 티켓 부스가 있었다.


영화제 기간이라고 도시 곳곳에 

풀라영화제를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이건 내가 첫날 본 영화 포스터다.

"그 옛날 좋은 시절을 위하여 (Za ona stara dobra vremena)"

가 제목인데,

포스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반어적인 제목이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구시가 입구 포르타라타 광장(Portarata square)

영화제를 광고하는 대형 전광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동영상: 풀라 영화제 광고 전광판)

(2018년 7월, Pula, Croatia)


영화제 티켓 부스엔

"별 아래서 보는 영화(Film pod zvijezdama)"라고 쓰여있고,

2018년에 풀라영화제가 65주년이라

65라는 숫자가 크게 쓰여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풀라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아래 지도와 같다.


이중 1번 아레나(Arena)

로마원형극장에 입장하려면  

25쿠나(약 4000원)을 내야하고,

다른 데서 하는 건 관람이 공짜다.


(http://www.pulafilmfestival.hr/en)


원형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내가 7월에 풀라(Pula)에 간 가장 중요한 이유라

우선 그 영화표를 예매했다.


별 아래서 노천에서 영화를 보려면 

밤이어야 하니,

아레나(Arena)의 영화는 

해진 후 9시 이후에 시작한다.


9시쯤 한 편, 11시쯤 한 편, 

매일 이렇게 두 편을 상영한다.


2박 3일 예정이라 두번 볼 수 있고,

11시는 너무 늦은 것 같아서,

9시 시작하는 영화 두 편을 예매했다. 




그리고 표 파는 여자분에게 

혹시 다른 추천해줄 영화 있냐고 하자, 

각자 취향이 다르니 뭐라고 말할지 모르겠단다.


그래도 자기라면 어떤 다큐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영화가 Kino Valli[노란 지도 2번]에서 

몇분 후에 시작한다고 했다.


내가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바로 여기라며,

내 뒤를 가리켰다.


그 영화제 부스 바로 앞에 있는 영화관이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영화관에 들어가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헐리웃(Hitlers Hollywood)"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그 독일 다큐멘터리는 

구성이 좀 단조롭고,

생각보다 메시지가 약했다.

 

히틀러 시대에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 건 알겠는데,

그게 소련 같은 다른 전체주의 국가들과 

다른 점은 없었는지,

혹은 그 이후 독일영화랑은 얼마나 다른지

잘 보여주지 못하고, 

그냥 많은 정보를 나열한 느낌이었다. 



다음날은 이 극장에서 또다른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보토리치 가문(The Botorić Family, Botorići)"

이라는 세르비아 영화였다.


세르비아의 보토리치가 

공산혁명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선구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

또 혁명 후에는 그와 그 가족이 

어떻게 핍박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는데,


무슨 중요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 큰 상을 받았다는 세르비아 감독이

영화 전에 직접 이 영화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매우 오랫동안 준비한 작품이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형식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오래된 TV용 다큐멘터리 같아서,

왜 이 작품이 큰 상을 받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두번째 날 오전엔 

이스트라 국립극장 (Istrian National Theatre, Istarsko narodno kazalište) [노랑 지도 4번]에서 하는 영화를 봤다.


이스트라 국립극장은 19세기 후반 건설된  

공연 예술을 위한 극장인데,   

풀라영화제 기간 동안엔 영화관이 된다.

오전엔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상영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클레망스의 오후(L’après-midi de Clémence)"라는 프랑스 애니메이션과 "꼬마 스피루 (Le petit Spirou)"라는 프랑스 아동영화를 봤는데, 

하나는 프랑스 영화다운 쓸쓸함이 있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영화다운 발랄함이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기대했던 고대로마 원형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풀라의 원형극장은 

"풀라 아레나(Pulska Arena, Pula Arena)",

그리고

풀라 내에선 그냥 "아레나(Arena)"라 불린다.


기원전 27년 – 기원후 68년에 건설된 아레나는

현존하는 가장 큰 로마원형극장 중 하나고,


로마에 있는 콜롯세움이 

일정부분이 사라진 개방된 모습인 것과 달리,

풀라 아레나는 그 기본형태를 유지한

폐쇄된 동그라미를 유지하고 있는,

매우 잘 보전된 로마원형극장이다.


고대 로마에선 로마 검투사들의 검투장으로,

중세엔 기사들의 결투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고 훼손됐는데, 

19세기 초 일리리야 지방을 관할했던

프랑스인 마몽장군과 

그 이후 오스트리아 황제 시절 

아레나가 복원되었다. 


현재 아레나는 관광지로 일반에게 개방되는데,

지하에는 박물관이 있다.


나는 밤에 영화보면서 들어가 볼거라, 

낮에 따로 들어가보지는 않았는데, 

풀라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풀라에 갔으면 

한번은 들어가봐야 하는 곳인 것 같다.


2018년 현재 입장료는 

일반 50쿠나(약 만원), 할인 25쿠나,


입장시간은 7-8월 8시부터 24시까지,

1-3월 9시부터 17시까지,

그 사이 기간 동안은 겨울보단 길고,

여름보단 짧으니,

방문 전에 체크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6월부터 9월까진 Spectacvla Antiqva라는 

로마 검투 경기가 밤에 재현되는데, 

2018년 현재 입장권은

성인 80쿠나(약 12000원), 할인 40쿠나다.


매일 하는 건 아니고,

경기 일시가 규칙적이지 않으니,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한다.



아레나에선 간간히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데,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등 클래식 가수,

스팅, 노라 존스, 레너드 코헨 등 대중음악가수들이

이곳에서 콘서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풀라영화제 기간에는

영화관이 되기도 한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풀라 영화제(The Pula Film Festival, Pulski filmski festival)는 

1954년 유고슬라비아 시절 시작되어,

2018년 7월에는 65회가 되었다.


단순히 영화 상영만 하는 게 아니라,

그해 최고의 크로아티아 영화에 

"황금 아레나(Golden Arena)"상을 

수여하기도 하는데,

우리처럼 이미 개봉된 영화가 아니라,

영화제를 통해 새로 소개된 영화에 

상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최근엔 크로아티아 영화 산업이 침체되면서

예전만큼 인기와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그레브에서

영화제 광고를 별로 많이 보지 못했고, 

풀라에 와서도 

영화관에 사람이 많지 않았나보다.


관계자 출입구는 아레나 서쪽에,

관람객 출입구는 아레나 남쪽에 있었는데,

관계자 출입구엔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좀 소박해 보였다.


(동영상: 풀라 영화제 레드카펫)

(2018년 7월, Pula, Croatia)


아레나 남쪽 출입구에선 

입장객들 짐 검색을 했다.

 

검색대는 아니고, 

그냥 검은 옷 입은 관계자들이

가방 검사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아레나에 두번 들어가면서

두번째 날은 안에서 먹으려고 

피자를 들고 들어갔는데,

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해서

밖에 서서 다 먹고 들어갔다.


'하긴 중요한 유산이니까 그래야겠지'

생각하고 

경솔한 내 행동을 반성하며 들어갔는데,

안에서 팝콘과 음료수를 판다.


그리고 과자 같은 거는 

다들 가지고 들어가서 먹는다.


아, 괜히 반성했다.


낮에는 영화제인데 

극장에 사람들이 너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레나에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 건축이니

좌석이 딱딱 나눠진 게 아니어서,

어디서는 수용인원 500명이라 하고,

어디서는 또 700명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그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공간에 

자리가 꽤 많이 찼다.


역시 2000년된 건축물에서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영화를 좋아하는 나한테만 

큰 매력으로 다가온 건 아니었던 거다.


좌석은 스크린 앞에 접이식 의자가 있고,

뒤에 아레나의 딱딱한 돌좌석이 있다.

 

아레나 돌좌석은 등받이가 없어

오래 앉아 있기 힘들긴 한데,

그리고 스크린과 거리가 있어서

자막도 잘 안 보이긴 한데,


그래도 이왕 고대로마 원형극장에 왔으니,

고대 로마인들이 하던대로 하고 싶어서,

난 이틀 모두 돌좌석에 앉아서 봤다.


밤에 추울까봐 긴팔 옷 챙겨갔는데,

춥기는 커녕, 

한낮의 열기가 돌에 남아서

자리가 밤까지 따뜻하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영화 시작 전에 스크린에서 계속 광고가 나오고,

조명이 화려하게 비추다가 

진행자가 나와서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면,

주위는 어두워지고,

아레나에 약간의 조명이 들어가서,

완벽한 암전은 아니지만,

이제 화면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진짜 별이 보인다.


"별 아래서 보는 영화(Film pod zvijezdama)"

라는 슬로건이 

거짓말도, 과장도 아니었던 거다.


덕분에 별도 봤다.


주위가 어두우니,

별도 진짜 많이 보인다.

별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영화보는 중간이라, 

그리고 찍기 쉽지 않아서 별은 사진 못 찍었다)


생각해보면 하늘의 별은

다들 수백, 수천, 수억만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거니까 

우리가 현재 보는 별은 

다들 그 별의 오래된 과거의 모습인 건데,


그렇게 2000년된 원형극장과 

머리 위 별의 수천년, 수만년 전의 모습을 흘끗거리며, 

찰나처럼 스쳐지나가는 

영화의 영상들을 보고있는 내가 

기나긴 시간과 짧은 시간들이 교차되는 그 순간 속에

있다는 게 참 기분이 묘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동영상 2: 풀라 아레나 영화 시작전)

(2018년 7월, Pula, Croatia)


내가 첫날 본 영화는 크로아티아 극영화인

"그 옛날 좋은 시절을 위하여 (For Good Old Times, Za ona dobra stara vremena)"였다.


20년전 크로아티아 젊은이들의 이야기였는데,

당시 크로아티아의 상황을 영화로나마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영화 줄거리도 재미있었다.


상황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코믹한 요소들과 비극적인 요소들이 섞여 있어서

너무 지루하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이 두드러지는 영화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관객들 반응이 너무 좋다.

다들 작은 사건 하나 하나에 크게 호응하니, 

영화가 더 재밌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감독, 작가, 배우들이 무대 위로 나왔고, 

사회자가 이름을 호명하면 인사를 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2018년 7월, Pula, Croatia)


그리고 몇분 후 다음 영화를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9시 영화를 보고 앉아 있으면,

따로 입장권을 안 사도 

그대로 앉아서 11시 영화를 볼 수 있는거다.


다음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너무 늦게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을 안고 아레나를 나왔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 마음이 들떠서 

숙소로 곧장 가지 못하고, 

구시가 좀 걷다가, 

바닷가도 좀 걷다가 

결국 12시 넘어서 들어갔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그 다음날엔 "깊은 상처(?)(Duboki rezovi, Deep cuts)"라는 

크로아티아 영화를 봤는데,

3편의 서로 다른 영화가 연결된 

옴니버스 영화였다.


아이들이 주요 인물인데 다들 연기를 잘 한다.

영화가 정적이라 약간 일본영화같기도 하다. 

그 전날 본 영화보다 더 예술성이 있다. 


http://pulafilmfestival.hr/en/filmovi/2714


영화가 끝나자 또 어제처럼 
감독, 작가, 출연자들이 나와서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명씩 관객에게 인사를 했다.


(2018년 7월, Pula, Croatia)


그리고 또 휴식 후에 다음 영화 상영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다음날 아침 리예카로 떠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

그날은 두번째 영화도 보고 갈려고 남았다.


8번째 판무관(Osmi povjerenik, The Eighth Commissioner)이라는 

크로아티아 영화였다.


이번엔 코미디 영화인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웃는데,

나는 왜 웃긴지 모르는 데다가,

영화 줄거리가 예전에 TV에서 본 

이탈리아 영화랑 비슷하길래,

그냥 30분쯤 보다 나왔다. 



그리고는 또 아쉬운 마음에,

이번엔 마지막 밤이라 더 아쉬운 마음에, 

밤바다를 좀 걷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위 노랑지도 15번 암브렐라 해변(plaža Ambrela)에서도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거기도 야외라 밤에만 영화를 상영해서 

아레나(Arena)에서 하는 영화와 시간이 겹쳐서 

결국 

"별이 쏟아지는 암브렐라 해변에서 보는 영화"는 

경험하지 못했다.


암브렐라 해변

물이 깨끗해서 파랑 깃발(Blue flag) 상도 받았단다.


그 밖의 풀라의 다른 해수욕장 목록은 

다음 링크에 나와있다.



아레나와 영화 상영 시간이 

겹친 것도 겹친 거지만,

암브렐라 해변은 풀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조금 먼 거리에 있었는데,

 

난 영화 보랴, 구시가 구경하랴 

낮에도 거기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


그거 다 하기에

2박 3일이 너무 짧았다.


하지만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지붕 삼아

2000년된 로마원형극장에서

영화를 본 그 경험이 너무 특별해서,

그것만으로도 정말 만족스럽고,

문득 고개를 들어

머리 위 하늘에 가득 담긴 별을 봤을 때,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그 벅찬 행복감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일부러 그 영화제 맞춰서 풀라 갈 정도로

기대 많이 했는데,

 

기대만큼 아니 기대보다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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