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듯 흔하지 않은 이스트라 반도의 2천년 고도
크로아티아 도시 풀라(Pula)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무엇보다 원형극장(Amphitheater)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찾은 두 개의 풀라 지도에도
원형극장에 1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바다와
수백년간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절 건설된
고풍스러운 이탈리아식 건축들을 가진
다른 크로아티아 해안 지방의 여러 도시들과
풀라를 가장 눈에 띄게 구별하는 게 바로,
옛모습이 많이 손상되지 않은
2000년 된 로마시대 원형극장이기 때문이다.
나도 풀라 가서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
바로 그 로마원형극장에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지붕 삼아
영화를 보는 거였다.
2018년 7월 2박 3일로 풀라에 가서,
"별 아래 로마원형극장에서 보는 영화"라는
그 야심찬 목표를
생각보다 쉽게 달성하고 둘러보니,
풀라에 갈 데가
원형극장만 있는 게 아니다.
비록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맑고 깨끗하고 예쁜 해수욕장도 많고,
영화제를 비롯한 행사도 많이 하고,
어딘지 모르게
다른 크로아티아 해안도시들과 닮긴 했어도,
그래도 어딘가에서 사진으로 만나면,
단번에 "풀라"라고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시가가 나름 개성 있고,
예쁘고,
적당하게 낡은 느낌이 정감도 있어서,
여러번 걸어도 참 좋다.
첫날 시외버스 타이어 문제 때문에
몇시간 늦게 풀라에 도착해서,
영화보고 나서,
오후 늦게 풀라 구시가를 둘러보다 보니,
아우구스투스 사원[2번째 지도 16번] 앞에
성인 90쿠나(약 16,000원),
할인 50쿠나(약 9,000원)로
할인된 가격에 여러 유적에 입장할 수 있는
"풀라 카드(Pula Card)"가 눈에 들어온다.
http://www.pulainfo.hr/pula-card-2017/13639
그 때는 이미 저녁이 다 되어서 입장 못할테니,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움직이면,
"풀라 영화제"의 영화도 보고,
그 유적들에도 다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두브로브니크 카드가 꽤 실속 있었다.
그래서 둘째날 아침 8시 좀 넘어서 숙소를 나와
슬슬 구경하면서
풀라 카드 파는 데를 찾았는데,
가장 번화한 시내에는 여행안내센터가 없고,
그냥 기념품 판매점에서
"풀라 카드 있어요(Imate li Pulsku kartu?)"
라고 물어보니,
풀라 지도를 보여준다.
크로아티아어로 "지도"가
plan[플란] 또는 karta[카르타]라
내가 지도를 찾는 줄 알았나보다.
뭔가 풀라 카드가
널리 사용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다.
결국 구시가로 가서 풀라 카드 파는
여행안내센터를 발견했는데,
그 앞 아우구스투스 사원이
전날과 달리 공사중이다.
그럼 아우구스투스 사원은 못 들어가는데,
그것 말고 원형극장인 아레나는
전날밤 영화보러가서 들어가 봤고,
풀라 카드로 입장할 수 있는 나머지 4군데 중
몇군데는 많이 궁금하지 않다.
그래서 그냥 풀라 카드 사지 않고,
플라카드로 유적 입장할 시간에
풀라영화제의 영화를 몇 편 더 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풀라의 주요 유적 중
그 카드로 못 들어가는 곳이 많다.
풀라 카드가 있어도 따로 표를 사야하는거다.
카드가 좀 더 실속이 있고,
더 많은 곳을 입장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좀 아쉬웠다.
하지만 "덕분에" 풀라영화제는
좀 더 즐길 수 있었다.
금문[2번째 지도 10번]은 기원전 후
로마시대 풀라의 주요한 가문이었던
세르지(Sergi)가가 세운 아치로,
원래는 옆에 성벽도 있었는데,
19세기에 제거되고,
지금은 아치만 남아있다.
이 아치의 동쪽엔
아마도 "문"이라는 의미인 듯한
포르타라타 광장(Trg Portarata)[2번째지도 9번]이 있는데,
풀라영화제를 비롯한 중요 행사들이 열리고,
사람들이 친구를 만나고,
또 앉아서 휴식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아치의 서쪽에서는
본격적으로 구시가가 펼쳐진다.
구시가 입구 한쪽 벽에는
1920년 이곳에서 사람들이
이탈리아 군인들의 총을 맞았다는 글도
이탈리아어와 크로아티아어로 쓰여 있다.
구시가 입구 다른 쪽엔
"율리시즈(Uliks)"라는 카페에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동상이 있다.
1904년 22살이던 조이스가 풀라에 와서
1905년까지
오스트리아 해군장교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원래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일하려고 했으나,
그곳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해 풀라까지 온
조이스가 친척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내용을 쓴 걸 보면,
정작 조이스는 풀라를 싫어한 듯 하지만,
풀라에게 조이스는 그런 짧은 체류를 기념하는
이런 동상을 만들 정도로 자랑거리다.
I am trying to move on to Italy as soon as possible as I hate this Catholic country with its hundred races and thousand languages. . . . Pola is a back-of-God-speed place—a naval Siberia . . . . Istria is a long boring place wedged into the Adriatic peopled by ignorant Slavs who wear little red caps and colossal breeches.
풀라를 "바다의 시베리아"라 부르다니,
뭔가 많이 기울어진 풀라의 짝사랑 같지만,
조이스 정도면 그런 짝사랑 이해된다.
금문에서 구시가로 들어가면
세르기에바차 길[2번째 지도 11번]이 나온다.
그 길을 쭈욱 따라서 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로마 포럼[2번째 지도 15번]에 도달하고,
중간에 북쪽 언덕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올라가면
성[2번째 지도 19번]에 도달한다.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관할에 들어가며
풀라의 중세식 성벽은 제거되고,
본격적으로 풀라의 시가지가 형성되었고,
세르기에바차 길도 바로 그 때부터
풀라의 가장 중요한 길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길 양옆으로 100-200년 된
오래된 건물들이 줄지어 있고,
그 1층엔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자리잡고 있어서,
이 길을 걸으며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밤에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풀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구시가 동쪽 금문에서
세르기에바차 길을 따라 걸으면,
서쪽 로마 포럼[2번째지도 15번]에 도달한다.
광장인 로마포럼에서 서쪽으로 좀 더 가면
바다가 나오는데,
1세기에 로마포럼을 지으면서,
땅을 메웠다고 하니,
당시에는 바다가 좀 더 가까왔을지도 모르겠다.
로마 포럼은 로마시대뿐 아니라
이후 중세 시대 때까지도
천 여년간
풀라의 행정적, 경제적, 종교적 중심지였고,
지금도 행정적으로,
그리고 풀라 관광과 생활에서도 중요한 곳이다.
(동영상: 풀라 로마 포럼, Rimski Forum u Puli)
광장 북쪽에는 아우구스투스 사원(The Temple of Augustus, Augustov hram)이 있는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생전에,
즉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 건설됐다.
나뭇잎 문양이 특징적인 코린트 양식 기둥
4개가 인상적인 이 사원 옆에는
원래 똑같은 모양을 한,
쥬피터(=제우스), 주노(=헤라), 미네르바(=아테나)의 신전과
디아나(=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는데,
그건 현재 옆 건물의 뒷면에
일부분만 남아 있다.
좀 낡긴 했지만,
아직도 전체 윤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 아우구스투스 사원은
중세시대에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입장료 일반 10쿠나(1,800원), 할인 5쿠나.
아래 사진은
아우구스투스 사원 서쪽에서 찍은 건데,
옆 건물안에 쌍둥이 건물이 들어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신전 전체가 아니고,
일부가 뒷부분에만 남아 있는 것이다.
로마신전을 품은 아우구스투스 사원 옆 건물은
공공 궁전(Communal Palace, Komunalna palača), 즉 시청사다.
13세기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은
15세기 르네상스양식,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는데,
1층의 로지야가 르네상스 양식인 것 같고,
창문이 바로크 양식이란다.
하지만 건축양식의 변화와 관계없이
이 건물은 계속 풀라의 행정적 기능을 담당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그 밖에 포럼의 동쪽과 남쪽에도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있는데,
사원과 시청만큼 오래된 건 아닌 것 같다.
풀라 첫날 밤에 숙소에 가는 길에
구시가를 지나갔는데,
11시 반이 넘은 시간에도
포럼의 밤은 아직 한참이었다.
(동영상: 풀라 포럼 밤)
로마 포럼에서 동북쪽으로 걸어가면
풀라 대성당 [2번째 지도 22번]을 만나게 된다.
현재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박해받던 4C이전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모임을 갖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 성당은 5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수세기동안 그 모습은 많이 변했다.
대성당 앞엔 높은 탑이 있는데,
이것은 5세기에 건설된 세례당이며,
17세기 후반에 종탑을 증축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대성당이 있는 길의 동쪽 끝에는
높다란 벽돌 굴뚝이 있는데,
거기가 풀라 구시가의 동북쪽 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시가 동북쪽 끝의 쌍둥이 문[2번째지도 5번]은
2-3세기에 건설되었고,
풀라 구시가를 둘러쌌던 10개의 문 중 하나로,
구시가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세르기에바차 길에서 동쪽의 언덕으로 올라가면
풀라 성[2번째 지도 19번] 아래에서
성을 둥글게 감싸도는 길이 나타나고,
그 길에 프란치스코 성당과 수도원[2번째 지도 18번]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당은
14세기에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되었고,
입장료는 9쿠나(약 1800원)다.
골목길 중간의 작은 계단을 걸어올라가면
성당이 나오고,
성당 옆에 수도원이 있다.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동쪽으로 가면,
성 니콜라스 정교성당(Pravoslavna crkva svetog Nikole, Orthodox Church of St. Nicholas) [2번째지도 21번]이 나타난다.
처음 이 곳에 성당이 건설된 건 6세기인데,
카톨릭 성당이었던 교회가 13세기 초반에
그리스 정교 성당으로 재건축되었고,
16세기 후반 키프로스 등에서 온
그리스정교회 신자들의 성당이 되었다.
16세기 후반이면 아마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피해 온 것 같다.
현재는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다.
프란치스코 가톨릭 성당과 니콜라스 정교회 성당
사이에 성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있다.
성[두번째 지도 19번]은 17세기 초
베네치아 공화국 지배 시절 건설되었다.
풀라의 성은 구시가 중심 언덕 위에 자리잡은
군사적 요새로,
이곳에 오르면 풀라 시내가 다 보인다.
현재는 그래서 풀라의 중요한 관광명소지만,
바로 그 그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과거에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었고,
2000년전 로마시대와 로마시대 이전에도
바로 이 자리에 요새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을 위에서 보면 아래 사진과 같은
사각형 성과 모서리의 마름모 모양이 보이는데,
이건 프랑스 성의 특징이고,
이 성의 건축가가 프랑스인이라고 한다.
20세기 이후 성은 군사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현재는 이스트라 역사 박물관(Povijesni i pomorski muzej Istre, The Historical Museum of Istria)으로 사용된다.
일반 20쿠나(약 3,600원), 할인 5쿠나.
4-9월은 아침 8시-밤 9시,
10월-3월은 아침 9시-오후5시에 입장가능하다.
나는 그냥 한번 둘러보고,
풀라영화제의 영화를 보러 가느라,
시간이 없어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성 주변을 한번 빙 돌았는데,
그렇게 성 주변을 한 바퀴를 돌면
풀라 시내를 다 둘러볼 수 있다.
이건 프란치스코 성당.
여긴 풀라 서쪽 바다인데,
가운데 보이는 건 풀라 대성당이다.
니콜라스 성당의 살구색 지붕과
멀리 원형극장 아레나도 보인다.
이건 동북쪽 소 로마 극장 유적이다.
여긴 남서쪽 항구다.
로마시대 풀라에는 세 개의 극장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그 유명한 아레나(Arena)이고,
나머지 하나는 도시 밖 산 위에 위치하고 있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성의 동북쪽에 있는 소 로마극장이다.
이름에 걸맞게 아주 작은,
1세기경에 건설된 극장인데,
아레나와 달리 보전 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폐허다.
입장은 무료.
이 극장 북쪽에 이스트라 고고학 박물관(Arheoloski muzej istre, The Archaeological Museum of Istria)[2번째 지도 6번]이 있는데,
2018년 7월엔 공사중이라 닫혀있었다.
http://www.ami-pula.hr/en/home/
소 로마극장에서 북쪽으로 좀 더 걸어가면
일종의 반공호 터널인 제로스트라세가 나온다.
제1차세계대전 때 공습을 대비한 피난처로
만든 터널인데,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시절이라
이름이 독일어인 것 같다.
이런 지하터널을 자그레브에도 있고,
리예카에도 있는데,
풀라의 지하터널은
단순히 잠깐 피난하는 곳이 아니라
꽤 넓은 내부공간을 가지고 있어서
콘서트나 전시회도 개최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그레브와 리예카 지하터널과 달리
유료입장이다.
6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오픈.
일반 15쿠나(약 2,700원), 할인 5쿠나다.
도시 구석구석이 연결되기 때문에,
입구는 소 로마극장 근처 말고도
두 군데가 더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구시가 바깥쪽으로 나가보면,
풀라 구시가와 아레나 중간에
티토 공원[2번째 지도 3번]이 있다.
1953년에 건설된 이 공원은
공산주의 느낌이 매우 많이 난다.
그러고보니 크로아티아에서는
공산주의 시대 때 만들어진 것 같은
동상을 거의 못봤다.
원래 있었는데, 체제가 바뀌면서 없앤건지,
아님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크로아티아에서 귀하디 귀한(?)
공산주의 시대의 동상을
크로아티아를 떠나기 바로 전 주
풀라에서 보게 된거다.
사실 다른 구유고슬라비아 국가들에서는
"티토" 이름이 붙은 거리를 흔히 봤는데,
티토의 고향인 크로아티아에서는
오히려 자주 못봤다.
티토(Tito)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로,
국제 공산당 조직 코민포름에서 나와,
당시 공산권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소련과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면서,
"중립주의"를 표방했던,
강력한 지도력의 인물로,
1980년 그의 사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응집력이 약화되었고,
결국 1990년대 연방의 각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수년간 전쟁을 치르게 된다.
티토 시절 60-7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매우 많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와서,
그런 면에서 크로아티아인들도
티토의 지도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고,
나이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이들 중에도
당시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남슬라브인의 나라"라는 의미의
"유고슬라비아"의 존재 자체가
넌센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난 풀라에서 티토 공원과 그의 흉상을 보자마자
브리유니(Brijuni)를 떠올렸다.
풀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브리유니 군도라는
국립공원(Nacionalni park)이 있는데,
아름답기로 유명한 그 섬에
19세기 오스트리아 왕가의 여름 별장이 있었고,
유고슬라비아 시절엔 티토의 별장이 있었다.
1980년 그가 사망한 후
1983년 브리유니 군도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공의 것이 되었다.
(크로아티아 국립공원에 대해선 이전 포스트 참고)
티토 공원의 북서쪽은 바다와 가까운데,
그곳에 세워진 동상은
공산주의를 겪은 국가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가 너무 명백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조각이다.
몸을 꼿꼿이 세운 늠름한 군인과
고통받는 사람들 조각 사이에는
크로아티아어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민족해방 전쟁의 투사들과 1941-1945년 파시즘의 희생자들에게
이스트라의 민중이
뭐 여기까지는 크게 특별한 게 없는데,
그 동상 뒷면은 뭔가 예사롭지 않다.
동상 바로 아래
언뜻 성모나 그리스 여신을 연상시키는 포즈의
평범한 아낙의 동상이 있고,
그들을 향해 여러 개의 흉상이 서 있는데,
그 흉상이 사람 눈 높이에 가깝게 있어서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서
그 사이를 지날 때 좀 기분이 묘하다.
가장 앞쪽엔 이 나라와 이웃나라 사람 누구나 아는
티토의 흉상이 있고,
그 건너편엔 아마도
그냥 흔한 아낙이었을 것 같은 옷차림의
아주머니 동상이 있다.
그 뒤에도 티토 빼고는
다들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의 흉상이다.
아마도 이 흉상은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을 기리는 걸 목적으로 하는 거겠지만,
난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하는
그 전쟁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흉상들 사이를 걸어 동쪽으로 좀 더 걸어올라가면,
누가봐도 항구라서,
굳이 그런 조각을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곳에,
그것도 그닥 특별하지 않은 모습으로
거대한 닻 조각이 볼품 없이 널부러져있다.
그 길을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면
로마원형극장 아레나가 나온다.
아레나와 금문 사이 지아르디니[2번째 지도 8번]는
19세기 후반 조성된 녹지를 의미하지만,
이후 도시가 개발되면서
녹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지금은 그 근처로 형성된 길의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지아르디니 거리엔 나무가 많고,
사람도 많고,
버스도 다니고,
자동차도 다니는 번화가다.
지아르디니 거리 자체도 그렇고 그 근처엔
카페, 빵집, 레스토랑, 마트, 상점들도 많다.
아래 사진은 지아르디니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벼룩시장이다.
다른 유럽 도시와 마찬가지로,
풀라에도 아케이드처럼 생긴
닫힌 시장 건물이 있는데,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지배 시절 건설되었다.
지금 봐선 별로 특별해보이지 않는데,
1903년 시장 건물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유리와 철제로만 된 건물이 풀라엔 처음이라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건물은 지금 그렇게나 특별하진 않지만,
그래도 시장엔 이것저것이 많아서
구경하기 재미있다.
생선, 육가공품도 팔고,
과일, 채소, 그리고 올리브 오일 등도 팔고,
시장 안에 레스토랑도 있다.
구시가 바깥쪽 좁은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동쪽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냥 주택가인데,
뭔가 풀라 사람들의 진짜 생활 모습인 것 같아서,
그렇게 동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난민들처럼 보이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를 지날 때는 좀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반파시스트의 집(Dom antifašista)을 발견했을 땐,
나도 몰래 웃게 되었다.
"반 파시스트"라는 표현이 너무 옛날식인데다,
그 밑에 "이스트라 여단 행진곡"이라 쓰여 있고,
악보까지 그려져 있는 걸 보니,
정말 희한하다 싶어 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아직도 활발하게 문화적 활동을 하는 단체다.
행사 내용으로 봐서는
이젠 파시즘 및 반파시즘과 무관한 걸 하는 듯한데,
아마 이탈리아 치하
반파시즘 운동할 때 만들어진 단체라,
이름이 그런가보다.
아레나 뒤에 있는 안토니오 성당도
"관광 지도 밖을" 걷다가 만났다.
어디서 봐도
아레나 옆에 우뚝 서 있는 게 보이길래,
저건 뭐지 했는데,
관광 지도나 책자에는 안 나온다.
이 동네에서 흔하게 보는 건축이라
몇 백년 되었거니 했는데,
1930년대 초반에 지어진 성당이다.
그래서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여겼나보다.
안토니오 성당 종탑 꼭대기엔
성 안토니오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동상이 있다.
그 종탑은 풀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성당은 이스트라 반도에서
가장 신자수가 많은 성당이라고 한다.
풀라 구시가 서쪽엔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기차역이 있는데,
아마도 예전엔 그 기차가 구시가 근처까지 왔는지,
지금은 폐쇄된 오래된 기찻길도 보인다.
야자수와 다른 키큰 나무가 가득한 공원도 있다.
하지만 풀라의 해안로는 이게 다가 아니어서
찻길 옆으로 고대 유적과 현대적 건축이
경계 없이 섞여있다.
포르모사 마리야 성당(Kapelica sv. Marije Formoze, The Basilica of St. Mary Formosa) [2번째 지도 13번]은 6세기에 건설된 아주 작은 비잔틴 성당이다.
13세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침입 때 파괴되었고,
그 일부를 베네치아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의 성당은 이후 복원된 듯 한데,
그래도 여전히 종교적인 기능을 하는 것 같진 않고,
그냥 유적으로 서 있는 것 같다.
그 성당 북쪽엔 놀이터가 있는데,
이렇게 아무렇게나 고대 유적들이 흝어져 있다.
포르모사 마리야 성당 남쪽으로는
단테 광장(Danteov trg)[2번째 지도 12번]이 있다.
이탈리아어로 폴라(Pola)였던
풀라를 방문한 적 있는 단테가
"신곡"에 Pola를 언급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래서 그의 이름이 붙은 광장도 있나보다.
그 광장 가운데에는 분수가,
광장 서쪽엔 바다가,
그리고 동쪽엔 14세기에 건설된 자비의 성모 성당(Crkva Svete Marije od Milosrđa)이 서 있다.
단테 광장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크로아티아 수호자의 집(Dom hrvatskih branitelja, House of Croatian defenders)이 보인다.
원래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건축가가
지은 카지노 건물이었는데,
지금은
콘서트, 전시회, 회의 등을 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풀라 해안가엔 그 밖에 19-20세기에 지은
특별한 역사적 중요성이 없는 건물들도 많이 있다.
1914라고 쓰인 아래 조형물을 보고,
1914년에 풀라에 무슨 일이 있었나 했더니,
그 때 풀라에만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 아니다.
제1차세계대전이 시작된지 100주기 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하는
문화프로젝트를 알리는 조형물이었다.
(http://www.pulainfo.hr/where/1914-puna-je-pula-pola-gremita)
그렇게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항구 쪽으로 높은 돌담이 길게 이어지고,
그 돌담 옆에 가로수 우거진 길이 나온다.
아마도 이 길을 따라가면
해수욕장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냥 이 길을 걷는 것도 좋았다.
내가 풀라에 살았으면 자주 왔을 것 같다.
그 밖에 구시가 북쪽의 해안 풍경은 이렇다.
이런 흔한 바다풍경은
밤이 되어 멀리 조선소 기중기에
알록달록 불이 들어오면
색다른 풍경이 된다.
내가 2018년 7월에 풀라에 갔을 땐
이제 크로아티아랑 그 주변국가 많이 돌아다녀서,
좋은 거, 예쁜 거 많이 봐서,
멋진 풍경이나 예쁜 조형물에 대한 갈망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무언가 좋은 걸 보면,
뭘봐도 새롭지 않고,
어딘가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어,
감동이 덜했다.
그래서 풀라에 갈 때는 다른 기대 없이
그냥 소박하게 "풀라영화제", 즉
원형극장에서 보는 영화보는 경험만 기대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게 충족됐고,
그리고나서 마치 보너스처럼 경험하게 된
그 밖의 풀라의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렇게 풀라에서 하고 싶은 걸 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라는 보너스도 얻었지만,
마냥 만족스럽지만은 않고,
어딘가 좀 아쉬웠다.
풀라에서 2박 3일이 나한테는 너무 짧았다.
사실 구시가 구경하고,
바다에서 해수욕만 하는 거면,
2박 3일로도 뭐 괜찮을 것 같은데,
풀라까지 간 김에,
배 타고 15분이면 간다는
국립공원 브리유니 군도에 가보려면,
하루 더 머물러야 할 것 같고,
만약 7월에 "풀라영화제"를 가서,
쉽게 볼 수 없은 크로아티아 영화와
그 밖의 다른 좋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대로 누리려면,
며칠 더 머물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한 5-6일 머물렀으면 좋았을 것 같다.
풀라는 갈 데도 많고, 할 것도 많다.
난 시간이 없어 가지 못했지만,
그 밖에 행사도 많았다.
어쩌면 풀라 자체는 보통 2박 3일이면 충분한데,
내가 풀라 영화제(Pula Film Festival)의
영화들 보느라,
풀라 자체를 볼 시간이 좀 부족했고,
바다도 못 가고 그래서
풀라에서의 시간이
더 짧고 아쉽게 느껴진 건지도 모른다.
아님 그 다음주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어서
크로아티아에 대한 아쉬움이
풀라에 대한 아쉬움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내 마음 속에 스믈스믈 기어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그렇게 어딘가 좀 부족했어서,
다음에 또 가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하다.
아, 그리고
풀라에서 이스트라 반도 산
올리브유랑 트러플 많이 파는데,
심지어 올리브유 박물관도 있는데,
(https://oleumhistriae.com/en/home/)
풀라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자그레브보다 비싼 것 같길래,
'그냥 자그레브에서 사야지' 하고 왔다.
그런데 자그레브에서 파는 올리브유와 트러플이
다 이스트라 산이다.
가격은 비교하지 못했는데,
마진이 붙기 전이니
아마 가격도 좀 더 싸지 않을까 싶고,
또 다른 도시에서 파는 대량생산 가공품 말고,
수제 느낌 나는, 뭔가 더 진짜같은 것도
시장과 상점, 박물관 등
시내 여기저기서 구매할 수 있다.
혹시나 크로아티아에서
선물로 혹은 기념품으로
올리브유나 송로버섯 살 생각이 있다면
풀라 갔을 때 사는 게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