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푸른 바다와 아담하고 예쁜 구시가지를 가진 Felix Arba
2018년 자그레브 날씨는 무지 이상해서,
2월 중순쯤 늦게 시작된 추위가
3월말, 4월초까지 계속되며,
잊을만하면 한번씩 눈이 내려주더니,
4월 말, 5월초에는 또 갑자기 더워져서,
6월초에 이미 한여름이랑 다름 없는
최고기온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였다.
크로아티아가 처음인 난
자그레브 날씨가 원래 그런 줄 알고,
"여긴 봄이 없는 것 같다(Ovdje nema proljeća)"
고 말했는데, 다들
"올해가 좀 특이한 거(Ovo nije normalno)"
라고 반응했다.
아마 내가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단기 여행자고,
영어로라도 현지인과 그런 얘기할 기회가 없었다면,
난 그냥
"크로아티아는 5-6월이 무척 더운 나라"
라고 쉽게 단정했을 거다.
아무튼 그런 성급한 한여름 같은 초여름,
이제 곧 크로아티아 수업이 끝날 6월초,
제대로 된 여름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벌써 더위에 지쳤던 우린,
마치 어서 빨리 무더운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
마치 도시만 벗어나면
그 더위도 벗어날 수 있기라도 한 듯,
아니면 그렇게라도 그 더위를 잊고 싶은 듯,
기회 있을 때마다
여름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 때 크로아티아에 꽤 오래 살았고,
크로아티아 남자친구랑 여기저기 많이 다닌
칠레 친구 야스나가
라브(Rab)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름을 기억했다가 나중에 찾아보니,
라브(Rab)는 섬인데,
수도 자그레브 사람들이 매우 선호하는 관광지다.
섬인데도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자그레브에서 한번에 갈 수 있는데다가,
다른 크로아티아 해안 지역에 비해
자그레브에서 가깝기도 하다.
자그레브에서 라브(Rab) 섬까지는
시외버스로 5시간이 좀 못 걸리고,
비용은 편도 30유로 내외다.
Rab은 한국어 "랍"에 가까운 발음이지만,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라브"라고 표기해야 한다.
이제 "로브스터"도 "랍스터"로 쓸 수 있는 마당에
Rab도 처음엔 그냥 "랍"으로 썼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래도 표기법대로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나에게는 낯선 발음인 "라브"로 모두 바꾸었다.
아무튼 처음 라브(Rab)란 이름을 들었을 때
내가 쉽게 그 이름을 기억했던 건,
러시아어로 раб[랍]은 "노예"란 뜻이기 때문이다.
'설마 섬 이름이 '노예'라는 의미인가?'
싶은 생각에 사전을 찾아보니,
크로아티아어로 "노예"는 "롭(Rob)"이라,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단어다.
그리고 다행히
"노예"와 관련된 어두운 역사도 없는 듯하고,
어원적으로도 아무 관련이 없다.
예전에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이 섬을 Arba[아르바]라 불렀다고 한다.
기원전 아드리아 연안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일리리야어로 arb[아르브]는
"어둡다, 녹색이다, 숲이 우거지다"라는 의미인데,
라브 섬에 나무가 많아서,
거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7세기에 이 섬에 온 크로아티아인들은
앞의 a와 r를 교차하여
rab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런 metathesis라 불리는
슬라브어에서 매우 흔한 음성학 현상이다)
이 섬이 크로아티아인들의 섬이 되면서
현재는 라브(rab)라 불린다.
그 이름의 어원이 시작된 기원전 일리리야에서
라브 섬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후 수세기간
로마제국,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는다.
그 유명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지금도 남아 있는,
소도시 라브(Rab)를 둘러싼 성벽이 세워지기도 했다.
3-4세기엔 라브 섬에 살던
그리스도교 석공 마리누스(Marinus)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피해
라브 섬을 탈출하여 아드리아해 연안에,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옆에 있는 소국
산 마리노(San Marino)를 세우기도 했다.
라브 섬에서 아래 같은 플래카드도 볼 수 있었는데,
크로아티아어와 이탈리아어로 쓰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50주년(1968-2018)
산 마리노(San Marino) 시 - 라브(Rab) 시
성 마리누스가 아드리아해를 건너
가슴 속의 섬과 산을 연결했다.
이후 라브섬은 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과 헝가리의 지배를 받기도 한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진
다른 크로아티아 연안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오랜 지배를 받고,
18세기에 아주 짧게
나폴레옹 프랑스의 일리리야 주에 속하게 된다.
18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멸망 후
1차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
합스부르그, 즉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건,
리예카(Rijeka), 오파티야(Opatija), 풀라(Pula) 같은
다른 이스트라(Istra) 지역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다른 이스트라 도시들과 달리,
라브는 그 이후 다시 이탈리아령이 되지 않고,
1921년 좀 더 일찍 유고슬라비아로 편입된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중 이탈리아가 섬을 점령하고
1942년 수용소를 건설하여,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각 지역의 자기 주거지에서
무력으로 내쫓기고 강제로 이송된
슬로베니아인, 크로아티아인과
유고슬라비아 유대인을 감금하고,
인종청소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다시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된
라브 섬은 1991년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크로아티아 영토가 되었다.
사실 크로아티아엔 예쁘고 좋은 데가 너무 많아서,
그 좋은 데를 다 가보는 건 불가능하다.
6개월간 크로아티아에 체류한 나도
좋다는 얘기만 듣고
결국 가보지 못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데,
아마 크로아티아인들도 다는 못 가봤을 거다.
더군다나 여행이 주목적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어 배우면서,
"시간이 되면 가끔씩" 여행도 할 목적으로
6개월 예정으로 크로아티아에 간 나는
그 좋다는 라브(Rab)까지 갈 생각이 처음엔 없었다.
근데 7월에 "풀라영화제"에 갈려고 루트를 짜면서,
5월에 소풍 갔을 때 제대로 못 보고 온
리예카를 하루 들렀다 와야겠다 하다가,
리예카(Rijeka)에서 라브(Rab)섬에 가는 배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며칠 후 곧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이제 다시 오기 쉽지 않을 크로아티아에 있는 동안
좋은 데 하나라도 더 보고 오고 싶은 욕심,
특별한 경험 하나라도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스믈스믈 솟아올라
결국 라브(Rab)섬도 루트에 넣었다.
그렇게 풀라(Pula)에서 2박하고
리예카(Rijeka)에 들렀다가,
라브(Rab) 섬에서 1박하고
저녁에 자그레브로 돌아오는
꽉찬 3박 4일 이스트라 여행 일정이 만들어졌다.
리예카에서 라브(Rab)섬까지는
하루에 배편이 딱 한 대 있는데,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여름 시즌(6-9월)엔 오후 5시,
비시즌(10-5월)엔 오후 3시에 한 대,
섬에서 나오는 배는
시즌엔 오후 6:45,
비시즌엔 4:45에 한 대가 있다.
배편의 시간이 애매해서,
리예카에서 라브 섬에 갈려면 1박을 해야 된다.
배삯은 편도가 시즌 80쿠나(약 13,000원),
비시즌 60쿠나(약 11,000원)다.
나는 리예카(Rijeka)에서
라브 가는 배에 출발 10분 전에 올랐는데,
창가 자리는 벌써 다 찼다.
창가 자리에 앉아 가려면
출발 20분 전엔 가야 할 것 같다.
배는 5시 정각에 칼 같이 출발했다.
1월말 스플리트에서부터
크로아티아 해안도시 갈 때마다 봤던
그 Jadrolinija 배를 드디어 타게 되었다.
Jadrolinija 배는 쾌적하고 좋은데,
배 안에서 와이파이가 안 잡힌다.
난 창가자리가 아니라 사진 찍기도 뭐했지만,
창이 맑지 않아서
사진을 찍어도 선명하지 않았다.
배 운항중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아마도 안전을 위해서인 것 같은데,
그래서 배타는 동안 좀 지루한 감이 있었다.
(동영상1:리예카-라브 배 안)
그렇게 2시간 정도 가면,
아래 지도 하단 Rab[랍]이라고 쓰여진 곳에
배가 정박한다.
섬 자체의 이름도 라브(Rab)고,
그 섬에 있는 소도시 이름도 라브(Rab)인데,
소도시 라브의 항구에 배가 정박하는 거다.
수도 자그레브에서 라브(Rab)행 버스를 타도
역시 "소도시" 라브의 버스터미널에 정차한다.
참고로 라브 섬의 면적은 제주도의 1/20 정도고,
소도시 라브는 도시(grad)라 부르긴 하지만,
도시라기 보다는 그냥 작은 읍내 같다.
라브(Rab) 섬 안 소도시 라브(Rab)의 관광명소는
무엇보다도 바다와 구시가다.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휴양지인 라브(Rab)섬은
당연히 해변이 많고 아름답고,
크로아티아인이 이 곳에 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해수욕이다.
라브 섬에서 크로아티아인들 말고,
러시아인, 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등
유독 다른 슬라브인들도 많이 봤는데,
아마 그들이 굳이 라브 섬에 간 이유도
바다 때문일 거다.
슬로바키아엔 바다가 없고,
폴란드 바다는 북쪽이라 너무 춥고,
러시아의 바다는 너무 멀고 대부분 춥다.
고대 로마인들은 라브를
Felix Arba, 즉 "행복한 아르바"라고 불렀다는데,
그들이 라브에서 발견한 행복의 원천도
아마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바다였을 것 같다.
위 지도에서 깃발로 표시된 곳이
라브 섬의 주요 해변인데,
주요 해변 말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에도 곳곳에 해변이 있다.
위 지도에 표시된 해변 중에서
FKK라고 쓰인 곳은 누드 비치다.
FKK는 독일어 Freikörper-Kultur(자유로운 몸 문화)의 약자인데,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크로아티아에서도 독일어 약자 그대로
누드 비치를 FKK [에프-까-까]라고 부른다.
자그마치 1930년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처음 FKK가 생긴 곳이
바로 이 라브(Rab) 섬이라고 하며,
아마 저기 지도에 표시된 곳 말고도
몇 군데 더 있을 거다.
비록 지도에 깃발은 없지만
위 지도 하단 소도시 라브에도 해변이 있는데,
해수욕할 수 있는 공간은 별로 넓지 않다.
그래서 배를 타고 다른 가까운 섬이나,
섬의 다른 해변으로 가는 투어도 있고,
(보아하니, 라브 섬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 관광객인
폴란드인을 대상으로 하는 해상투어가 많은 듯하다)
좀만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가면,
다른 좀 더 넓은 공간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다.
라브 섬의 해변에 대한 정보는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한국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크로아티아 바다에서 수영을 해볼까 싶어서,
수영복도 챙겨갔는데,
여러 이유로 결국 수영은 안하고
그냥 소도시 근처 해변만 걸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여기는 리예카에서 온 배가 섰던
남쪽 항구다.
크로아티아 다른 해안도시들도 그렇지만,
라브 섬도 물이 정말 깨끗하다.
여긴 소도시 라브의 서쪽이다.
(동영상2: 소도시 라브 서쪽 바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교회건물 뒤로는 길이 없다.
거기선 계단을 통해 위쪽의 구시가로 올라가던지,
아님 서쪽의 산책로에서 북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소도시 라브 근처의 해변은 이렇게 소박하다.
아주 작은 모래사장이 있는데,
거기 앉아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그냥 콘크리트 산책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동영상3: 소도시 라브 서쪽 바다)
사람들이 앉아 해수욕을 즐기는 콘크리트 산책로를
1910년 리흐텐슈타인 왕자가 만든 것임을
알리는 석판도 있다.
그렇게 30분 정도 걸으면
이제 서쪽 바닷가 산책로는 끝이 난다.
구시가 동쪽엔 ㄷ자 모양 항구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항구를 따라 동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이제 길고 넓은 해변이 계속 펼쳐진다.
여기는 아직 항구다.
서쪽의 구시가도 보인다.
ㄷ자 모양 항구 가운데쯤엔 공원이 있다.
그 공원 뒤로 가면
시장도 있고, 슈퍼마켓도 있고,
시외버스터미널도 있는
흔한 시골 읍내가 펼쳐진다.
공원 입구의 동상은 1941-1945년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을 기리며
1952년에 세운 것이다.
이건 1991-1995년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기념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구시가에 있는 동상과 비슷하길래,
그리스도교 동상이라고 생각했다.
구시가 북쪽 입구 분수 옆에 서 있다.
이제 그 공원을 지나고,
ㄷ자 항구를 다 돌면,
소도시 라브(Rab)를 벗어나
"반욜(Banjol)"이라 부르는 지역에 접어든다.
내가 거기서 30-40분을 걸은 것 같은데,
눈 앞에는 계속해서 넓고 긴 해변이 펼쳐진다.
바다 건너 구시가의 붉은 지붕은
이제 옆으로 쭈욱 늘어선 듯 보인다.
구시가 전경을 찍기엔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다.
남쪽 바다엔 작은 섬이 하나 보이고,
그 뒤로도 기다란 섬들이 멀리 보인다.
가장 가까운 섬까지는 길이 나 있는데
중간이 끊겼다.
무슨 이유가 있어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님 뭔가 미완성된 건지 모르지만,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사람들은 보통 수영으로
그 끊어진 다리(?)를 건넌다.
크로아티아의 바다는 서쪽에 있어서,
어느 해안 도시에 가나
바다로 해가 지는 근사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라브 섬도 예외는 아니어서,
1박 2일 중 첫날 저녁에
난 구시가에서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동영상 4: 라브 섬 일몰)
나는 사실 유명 관광지인 라브의 바다가 근사할 건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
구시가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라브의 구시가가
다른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와 많이 다르진 않지만,
그래도 아담하고 매우 예쁜,
걸어다니기 좋은 곳이다.
라브 섬 로고에도 구시가 건물들이 들어가 있다.
소도시 라브의 모습은 아래 지도처럼 생겼는데,
지도의 방위가 좀 이상해서,
위가 서쪽이고, 아래가 동쪽이다.
지도 위쪽, 즉 서쪽에 번호들이 붙어있는 곳이
구시가인데,
크게 "아랫길", "중간길", "윗길"이라는 의미의
도냐(Donja)길, 스레드냐(Srednja)길,
고르냐(Gornja)길이 있고,
이름 그대로, 점점 더 높이가 높아져,
도냐 길은 항구와 거의 수평이지만,
고르냐 길은 바다 쪽으로 거의 절벽을 이룬다.
그리고 중요 명소는
거의 다 고르냐(Gornja) 길에 있다.
가장 아래 도냐(Donja) 길 북쪽엔
성벽이 있고,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다.
그 돌계단 밑
성 크리스토포로 광장(Trg sv. Kristofora)에선
밤마다 수공예품을 파는 야시장이 펼쳐진다.
구시가에 진입하면,
항구를 따라 쭉 늘어선
아기자기한 장식이 인상적인 고풍스러운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세식 성벽 서쪽 스레드냐(Srednja) 길 입구엔
16세기 건축된 수수한 외관의
성 안토니오 성당(Crkva sv. Ante Padovanskog)이 있다.
거기서 남쪽으로 스레드냐 길과 도냐 길엔
특별한 관광지 없이,
좁은 골목 양 옆으로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이 줄지어 서 있다.
그 길에서 서쪽 계단을 올라
고르냐(Gornja) 길로 갈 수도 있고,
남쪽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갈 수도 있다.
남쪽 골목 끝엔 성당과 작은 공원이 있고,
산 마리노(San Marino)라는 나라를 세운
라브 출신 성 마리누스의 동상이 있다.
석공이었던 그는 손에 정과 망치를 들고 있다.
공원 동쪽엔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있고,
그 공원 서쪽엔 고르냐 길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오르면
성 안토니오 수도원(Samostan Svetog Antuna, Monastery of St. Andrew)이 나오는데,
11세기에 건축되어 18세기에 재건된,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으로,
아직도 수도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성당에 딸려 있는,
12세기에 건설된,
이 섬에서 가장 오래된 종탑은
다른 3개의 종탑과 더불어
라브 구시가 특유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다.
그 수도원으로부터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라브 구시가의 주요명소를 다 둘러보게 된다.
그 수도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서쪽의 아드리아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간에
성 크리스토포로 동상이 있는데,
성 크리스토포로는 라브의 수호성인으로,
11세기 노르만족의 칩입으로부터
그가 도시를 지켜주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그를 이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크리스토포로 성인은 예수를 어깨에 업고
강을 건너다 준 전설의 거인으로 알려져 있다.
라브의 수호성인 성 크리스토포로 등 뒤엔
성모 마리아 승천 대성당(Katedrala Uznesenja Blažene Djevice Marije , Cathedral of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이 자리잡고 있다.
4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대성당이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13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종탑이 높이 서 있다.
26미터로 라브 구시가에서 가장 높은 건축인
대성당 종탑에서는
라브 시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입장은 유료인데,
인터넷으로 정확한 가격이 검색이 안되지만,
아마 15-30(약 2500-5000원) 정도일 것이다.
대성당 종탑 옆 골목길을 좀 걸으면
슬로보다 광장(Trg Slobode),
즉 "자유 광장"이 나타난다.
1921년 오랜 이탈리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을 때,
그것을 기념해서
이곳에 참나무를 심고,
자유 나무(Stablo slobode)라고 이름 붙였다.
광장과 나무의 이름뿐 아니라,
이 나무 자체도 근사하다.
사실 광장이라 하기엔 규모가 좀 작은 감이 있지만,
남쪽으로는 높이 솟은 대성당 첨탑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예쁜 분홍 성당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구시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사방으로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는
광장이라는 명칭이 제격인,
내가 라브에서 가장 좋아했던 공간 중 하나다.
내가 7월 중순에 라브에 갔을 때
도시 여기 저기에 Rapska fjera를 알리는
포스터가 있었는데,
이 "자유 광장"에 유독 많이 붙어 있었다.
랍스카 피에라(Rapska fjera)는
14세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중세시대를 재현한 축제로
매년 7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데,
7월 27일이 라브 섬의 수호성인인
성 크리스토포로의 축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7월말에 라브 섬을 방문하면
유서깊은 중세 페스티벌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자유 광장" 북쪽의 분홍색 건물은
16세기 건설된
성 유스티노 수도원(Church of St. Justine, Crkva sv. Justine)이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수도원의 기능을 잃고
현재 미술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스티노 성당 북쪽엔 13세기에 건설된
성 십자가 성당(Crkva svetog križa, Church of St. Cross)이 있다.
계단 아래 스레드냐(Srednja) 길에
16세기에 건설된
시계탑(Town Clock, Gradski sat)이 보인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잘 작동한다.
고르냐(Gornja) 길에서 좀 더 북쪽으로 가면
사도요한 성당(The church of St. John the Evangelist, Crkva sv. Ivana Evanđelista)과 수도원, 종탑이 나온다.
그리스도교 공인 이전에 세워진 걸로 추정되는
이 성당과 수도원 건물은
후에 로마네스트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9세기에 폐허가 되었다.
동쪽 계단 밑으로는 이제
흔한 바닷가 마을이 보인다.
북쪽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서,
서쪽에 바다로 나가는 길 옆에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작은 성이 나오고,
그 위에 구시가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동영상5: 낮 라브 전경)
(동영상 6: 밤 라브 전경)
갈 때는 리예카에서 배를 타고 갔지만,
라브에서 자그레브로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탔다.
자그레브와 라브 간 버스는
하루에 각각 4대씩 있다.
라브과 자그레브를 운행하는 버스의 특이점은
섬에서 육지까지 버스가 배를 타고 간다는 거다.
난 뭔가를 타고 배에 오른 적이 처음이라
그 경험이 어떤 걸지 무지 궁금했는데,
막상 해보니 별 거 없긴 했지만,
그래도 좀 신기하고 또 기분도 좋았다.
여행자가 라브 섬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중 하나인 것 같다.
버스를 타고, 배를 갈아타고,
또 버스를 탈 필요 없이,
그냥 한번 버스를 타면,
버스가 알아서 배에 타고 내려주니,
무지 편하기도 했다.
난 7시 출발 버스를 탔는데,
버스는 7시에 출발해서 라브 섬의 서쪽으로 가서
7시 18분 선착장에 도착했다.
얼마 후 배가 도착했고,
7시 35분에 라브 섬을 출발해서
7시 50분에 육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크로아티아 사람들끼리
배타고 15분 간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정말 딱 15분을 배로 갔다.
배에는 버스를 탄 채로 올랐다.
버스 말고 자동차들도 배에 올랐다.
(동영상 7: 라브 시외버스 배에 오르기)
1-2분도 아니고 15분간 배를 타고 가니,
나가서 구경도 할 수 있게
배에 오르면 버스에서 내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다들 높은 곳에 올라
"짧은 크루즈"를 즐긴다.
생각보다 주변 풍경이 근사하진 않지만,
쌩쌩 부는 바람은 시리도록 시원하고,
그 시원한 바람 때문인지 바다 때문인지
기분도 괜히 좋다.
(동영상 8: 라브 섬 - 육지 간 페리1)
(동영상 9: 라브 섬 - 육지 간 페리 2)
(동영상 10: 라브 섭 - 육지 간 페리 3)
그렇게 육지에 도착해서 한참을 더 달려
버스는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크로아티아에서 하는 마지막 여행이라
마음이 아쉬워서 그런지,
하늘이 유독 더 아름답다.
(동영상11: 라브 섬 - 자그레브 하늘)
(동영상 12: 라브 섬-자그레브 : 육지에서 보는 바다)
전날 밤 늦게까지 크리스토포로 광장에
수공예품 시장이 선 걸 보고,
다음 날 낮에 선물을 살까 하고 갔는데,
어젯밤과 달리 문 연 부스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 날 이른 저녁에 출발할 예정이라
밤시장은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어제 샀어야했나' 후회하면서
진열된 액세서리를 보고 있는데,
유일하게 문 연 그 부스에 앉아있던 여자애가
자기 얘기를 한다.
다음 학기에 대학에 진학할 건데,
industrial design을 전공할까 한단다.
근데 그 학과가 크로아티아엔 한두 군데밖에 없고,
30명 뽑는데,
그것도 학교 관계자나 빽 있는 사람들 먼저 뽑고,
뭐 이래저래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고,
가까운 나라 슬로베니아도 생각했는데,
거기도 비슷하고,
그래서 영국에 가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단다.
그러고는 내가 크로아티아 와서
크로아티아어 배우는 게 너무 신기하다며,
자기 친척이 미국이랑 호주에 있는데,
유럽 밖은 아직 가보지 못했단다.
내가 미국이랑 호주 가봤는데,
크로아티아가 더 예쁘다고 했더니,
(내가 가본 미국과 비교했을 때는 정말 그렇고,
호주는 예쁜 데 많아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크로아티아인에겐
왠지 그렇게 이야기 해야할 것 같았다)
그래봤자 소용없다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여름 세 달 바짝 일하고, 나머지 달은 일이 없다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건 industrial design인데,
유고슬라비아 붕괴 이후 industry가 없으니,
industrial design을 할 수 있겠냐고 그런다.
그 얘기 들어주고, 액세서리 몇 개 골랐는데,
자기 그런 얘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30쿠나(약 5천원)를 깎아주겠단다.
거의 1/3, 1/4을 깎아주는거다.
대학등록금 때문에
엄마 대신 일하는 거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
마음이 좀 그래서 괜찮다는데도,
나한테 고맙다며 깎아주겠다고 해서,
내 지갑에 있던 1000원짜리를
행운의 부적으로 삼으라고 줬다.
그랬더니 두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더니,
나중에 오면 연락하라면서,
자기 연락처도 적어줬다.
크로아티아 살고 여행하면서 계속
'여기는 어째 가는 데마다 이렇게 예쁘냐?'
하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좋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했는데,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기회가 되면 여기 살면 좋겠다'
생각도 했는데,
평생을 그 예쁜 곳에서 사는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그런 속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비교적 높은 물가에 비해
월급이 턱 없이 낮은 걸 보며
살기 힘들겠다 생각하긴 했는데,
그런 구체적인 사정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행복한 섬" Felix Arba에 사는 사람들이
다들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던 거다.
라브에서 들은 얘기도 그렇고,
그 밖의 내가 경험한
다른 시스템의 문제나
사람들 성향 때문에도 그렇고,
아마 며칠 여행을 다녀왔으면
그냥 한없이 좋은 곳인 줄 알았을
크로아티아에 대해
6개월 생활 한 난
부정적 인상과 긍정적 인상 모두 가지고 있다.
물론 긍정적 인상이 더 크고,
기회가 있으면 또 가고 싶지만 말이다.
그런 크로아티아에 대해
아직 반도 이야기를 못했는데,
(아직 자그레브 이야기가 한 보따리,
크로아티아의 슈퍼스타 두브로브니크와
자그레브 내륙 도시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남았다)
이쯤 해서 크로아티아 이야기 잠깐 쉬고,
잊어버리기 전에,
다음 포스트부터는
크로아티아 간 김에 가봤던
가깝고 먼 유럽의 다른 나라 이야기를 좀 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