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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oga Sep 08. 2016

칼과 방패를 든 바르샤바 인어

전설과 역사가 투영된 폴란드 바르샤바의 상징

                 

바르샤바(Warszawa)

폴란드(Polska)의 수도이며,

폴란드의 중동부에 자리잡고 있다.


(바르샤바 위치:출처는 사진에 표시됨)


서울과 달리

바르샤바가 폴란드의 수도가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0세기에 피아스트(Piast) 왕조로

처음 폴란드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때,

폴란드 중서부의

그네즈노(Gniezno), 포즈난(poznań)이 수도였고,


11-18세기에는 대체로

남동부의 크라쿠프(Kraków)였고

(중간에 잠깐 포즈난(Poznań), 프워츠크(Płock)가 수도인 적도 있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엔

폴란드라는 나라가

세계 지도상에서 사라졌으니,


20세기 들어서야 바르샤바가

본격적으로 폴란드의 수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르샤바는

18세기-19세기 폴란드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되어 통치되었을 때

러시아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에 저항하여 봉기를 하면서

폭격을 심하게 당해서

건물이 거의 하나도 안 남다시피 폐허가 되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로만 폴란스키의 2002년작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과 흡사하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

(출처:https://axford1.wordpress.com/)


따라서 현재 수도인 바르샤바보다

구 수도인 크라쿠프에

옛 유적이 더 많이 있고,

관광객도 대체로 크라쿠프에 많다.




"바르샤바"라는 명칭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Wars(바르스)라는 어부

그의 아내 Sawa(사바)의 이름이 합쳐져서

Warszawa(바르샤바)가 되었다는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졌는데,


그게 하나는

사냥하다 길을 잃은 왕을,

그가 왕인지도 모른채

어부 바르스와 아내 사바가 잘 거두어 먹였고,

나중에 왕이 그것을 고맙게 여겨

지금의 바르샤바 지역을

이 부부에게 주었다는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Wars라는 어부와

Sawa라는 인어의 이름을 합친 거라는 버전이다.


폴란드어 Wikipedia판에 따르면

Sawa가 고대슬라브어에서 남자이름이었기 때문에,

아내가 아니었고,

뱃사람들이 비스와 강변에 가까와지면서

Sawa의 이름을 부르며,

Warz Sawa("사바, (물을) 끓여")라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버전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많이 언급되는 버전은

 

그가 왕인지도 모른 채

길 잃은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고

복을 받은

남편 바르스와 아내 사바의 전설이다.


바르샤바의 상징은 칼과 방패를 든 인어이며,

시의 문장에도 등장하고,

바르샤바 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바르샤바의 인어는 "시렌카(Syrenka)"라 불리는데,


많은 유럽 국가의 신화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을 파멸로 몰고가는 반인반수의 세이렌(siren)

[그리스 신화에서는 새의 몸,

다른 나라에서는 대체로 물고기의 몸인]

의 이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설에 따르면

시렌카는 비스와(Wisła) 강변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인어였는데,


한 부유한 상인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면

돈이 되겠다 생각하고,

그녀를 잡아 가둔다.


하지만 어부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

그녀를 탈출시키고,


시렌카는 그 댓가로

도움이 필요할 때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칼과 방패로 무장하고

바르샤바를 수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좀 더 긴 버전의 "시렌카" 이야기에는

시렌카에게 원래 인어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는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고,

동생인어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왔다는 설정이

앞에 첨가된다.


하지만 세이렌(siren) 이야기는

덴마크뿐 아니라

많은 유럽국가에서 발견되는 거라

이 설정은 아마도

안데르센의 동화가 유명해진 이후에,

비교적 최근에 덧붙여진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유럽 국가에 존재하는

세이렌과 관련된 전설은,


대체로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뱃사람들을 노래와 미모로 유혹하여

파멸로 몰고가는 팜므 파탈이었다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낭만주의의 옷을 입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는

"비운의 여주인공"이 되었고,


20세기 말 디즈니 버전의 "인어공주"에서는

헐리웃적으로 재해석되어

"동화다운"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드보르쟉의 오페라 버전 "루살카(Rusalka)"에서

체코의 인어공주

왕자를 칼로 찌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까지는

안데르센 버전과 동일한데,

그 다음에 물방울이 된 것이 아니라

호수의 밤정령이 된다.


이에 왕자는 자기가 죽게 될 걸 알면서도,

호수의 밤정령이 된 루살카에게 키스하고,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루살카는 왕자에게 감사하고,

그의 혼령을 신에게 보내고,

자신은 호수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이야기가 원래 체코 버전인지,

아님 드보르쟉에 의해 개작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같은 슬라브 지역인

러시아의 인어공주 "루살카(Русалка)"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영혼이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자신이 원래 살아야 했던 그 남은 생을

이 세상에서 마저 살면서,

물가에서

노래나 미모로 젊은 남자를 유혹하여

그를 물에 빠져 죽게하는 일종의 "물귀신"이다.


그런데 바르샤바의 인어공주 "시렌카(Syrenka)"

목숨을 담보로 하는

애절한 사랑 게임의 승자나 패자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은,

악에 받친 처녀 물귀신도 아니고,


칼과 방패로 무장을 하고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바르샤바의 무장한 인어 상징이

처음 등장한 것이 15세기라고 하니,

아직 큰 국가적 환란을 겪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폴란드의 미래를 예측한 건지,

아님

그런 무장 인어를 가진 덕에

폴란드인들이

오랫동안 국가를 위해 싸워야 했는지 모르지만,


벌거벗은 몸으로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바르샤바 인어의 전투적 모습은

자기보다 훨씬 강한 적들에 맞서 싸워야했던

바르샤바인 그리고 폴란드인의 운명과 닮아 있다.




바르샤바에서 가장 중요한 인어 동상은

구시가 광장(Old Town Market Place, Rynek Starego mista)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지도]


동상의 원본은 손상이 심해,

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고,

2016년 현재 구시가 광장에 있는 건

카피본이라고 한다.


(2008년 6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3년 7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5년 7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6년 7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6년 7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6년 7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6년 7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2016년 8월, Syrenka, Old Town, Warszawa)


또 다른 유명한 인어상은

비스와 강변에 있는 좀 더 큰 버전인데,

시벵토크쥐스키 다리 (Most Świętokrzyski)

[단어가 너무 길어서 발음하기 좀 어려운데,

"시벵토-크쥐스키"처럼 띄어 읽으면 되고,

'성스러운 십자가'라는 의미다]

서쪽편에 있으며

지하철 2호선 Centrum Nauki Kopernik (코페르니쿠스 과학 센터) 역

입구 중 하나 바로 앞에 떡하니 서 있다.


구시가 광장에 있는 인어상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묵직한 느낌이다.


구시가 광장의 인어가 좀 더 상징적인 모습이라면,

이 인어는

정말로

사악한 침입자들로부터

바르샤바인들을 지켜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비록 두 인어 모두

들고 있는 칼과 방패는 너무 작고,

얼굴은 폴란드인들처럼 선하기만 하지만 말이다.


[지도]

(바르샤바 Wisla 강변 Syrenka 지도)


(2016년 7-8월, Syrenka, Wisla riverside, Warszawa)
(2016년 7-8월, Syrenka, Wisla riverside, Warszawa)
(2016년 7월, Syrenka, Wisla riverside, Warszawa)
(2016년 7월, Syrenka, Wisla riverside, Warszawa)


이 인어가 바르샤바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밖에 바르샤바 곳곳에서

Warszawa라는 단어와 함께

혹은 Warszawa라는 단어를 대신해서

칼을 든 인어 형상이 등장한다.


바르샤바 곳곳에 설치된

문학 벤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글

가장 마지막에도

칼과 방패 대신 집을 세 채 든

[이 그림에서 집 세 채는

한국의 구 같은 바르샤바의 행정단위를 나타낸다.

이 프로젝트를 세 행정단위에서 함께 하나 보다]

어린이 인어가 등장하고,

 

(2016년 7월, Skaryszewski Park, Warszawa)
(2016년 7월, Skaryszewski Park, Warszawa)


"바르샤바와 사랑에 빠지세요."

혹은 "바르샤바에서 사랑에 빠지세요."

라고 해석될 수 있는

[전자로 해석될 가능성이 더 높음],


바르샤바 곳곳에서 발견되는

"Zakochaj się w Warszawie!"라는 슬로건에

덧붙여진 형형색색 실루엣도

칼과 방패를 든 인어의 형상이다.


(2016년 7월, Warszawa)


"바르샤바와 사랑에 빠지라"는

슬로건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바르샤바 트램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듯 보이는,


보다 투박한

바르샤바 트램(Tramwaje Warszawskie) 로고에도

보다 구체적인 형상의

시렌카(syrenka)가 담겨 있고,


(2016년 7월, Warszawa)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잘 안 띄지만,

버스, 트램 정거장의 유리막에도

보일 듯 말 듯

칼과 방패를 든 인어가 아로새겨 있으며,


사진 찍는 걸 깜박했지만,

버스, 트램 안의 "좌석"의 파랑색 천 덮개에도

칼과 방패를 든 언어의 실루엣이 새겨져 있다.


(2016년 7월, Warszawa)


구 시가의 Piwna[피브나] 거리 20번지의

Varsaviana[바르사비아나]라는 서점 위에도

날개를 단 인어가

왼손에 방패를 오른손에 칼을 들고 서 있다.


이 장식은

이 서점의 이름 Varsaviana 을 배경으로 보다

큰 개연성을 획득한다.


(2016년 8월, Old Town, Warszawa)


육안으로는 잘 안 보이고

카메라로 줌인을 해야

겨우 보이는 위치와 크기라

언뜻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구시가 광장 남쪽에 있는 한 건물 위에 있는

풍향계에도

1953이라는 숫자 옆에

(아마도 그 건물이 복원된 해인 것 같다)

칼과 방패를 든 인어가 조그만하게 새겨져 있다.


(2016년 7월, Old Town, Warszawa)


이 이외에도 바르샤바 여러 곳에서

칼과 방패를 든 인어상과

인어 실루엣을 만날 수 있다.


인어는 아니지만,

바르샤바 인어와 비슷한 실루엣의 조각물들도 있다.


우선 버스 정거장 "Bankowy 광장"과 "Strare miasto" 사이에 있는

바르샤바 영웅 기념 동상 (Pomnik Bohaterow Warszawy)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언뜻 보고

이것도 인어 동상인가보다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하반신이 물고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긴 칼을 들고

상체를 세우고 있는 형상을 보고

바르샤바 인어를 연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듯,


나처럼 멀리서 이걸 보면서

"아, 저기 인어 있다."

라고 말하는 폴란드인들을 본 적이 있다.


[위치]

바르샤바 Pomnik Bohaterow Warszawy 지도


(2016년 7월, Warszawa)
(2013년 8월, Warszawa)


그리고 드골 로터리에 세워진

"저항군 기념비(Pomnik partyzana)"에서

여자가 왼손 높이 올리브 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도

어딘지 모르게 칼은 든 인어를 연상시킨다.


(위치)

바르샤바 Pomnik Partyzana 지도


(2016년 7월, Warszawa)


바르샤바 영웅 기념비나 저항군 기념비 모두

조각가가 일부러 바르샤바 인어 동상와 연계시켜

그렇게 한쪽 팔을 번쩍 든 포즈를 취하게 하거나

긴 칼을 들게 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워낙 바르샤바의 인어가

폴란드인에게는 정형화된 형상이라,

어느 정도 그것에 영향을 받았거나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기념비에서

굳이 여성의 형상이

굳이 한쪽 팔을 높이 들고,

굳이 상체롤 꼿꼿이 세우고 있어야 할

이유가 따로 없지 않은가?




이렇게 바르샤바 어디가나 만나게 되는

인어 시렌카의 형상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전설에 바탕을 한,

흔한 반인반수의 외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손에 들고 있는,

어딘지 모르게

방어적이라고 느껴지는

그 아담한 크기의 창과 방패는

자기보다 훨씬 강한 외부의 적들의 침입과 지배,

그리고

내부적으로 자유를 억압했던 전체주의 공산정권과

오랫동안 홀로 꿋꿋이 싸워왔던

폴란드인의 강인한 의지, 불굴의 저항정신과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폴란드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바르샤바뿐 아니라

폴란드 자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념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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