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을 추억하는 법

무생채 하나의 사랑과 시금치 하나의 추억과

by 김혜진

나에게는 피가 섞이지 않은 이모가 두 분이나 있다.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고 아파트에 갇혀 지내던 시절 나는 그 갑갑함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과 함께 조용한 시골학교로 떠났다. 추위를 유독 많이 타는 탓에 따듯한 곳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무작정 남쪽으로 가자며 부산, 거제, 남해, 고흥 여기저기 시골집들을 둘러보다 결국 남해로 정착하게 됐고 그곳에서 사랑이 넘치는 이모들을 만났다.


이웃사촌이었던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나는 이모, 삼촌으로 불렀다. 우리가 이사 온 첫날부터 이모들은 젊은 우리가 예쁘다며 이유 없이 커피를 내어주고 시금치, 양파, 옥수수, 부추 등 온갖 먹거리를 나눠주었다. 산으로 들로 봄나물을 캐러 갈 때면, 동네 크고 작은 행사에도 이모들은 꼭 나와 신랑을 불러 함께 갔다. 농사일은 해본 적도 없기에 가봐야 내가 캘 수 있는 거라고는 한 끼 먹을 정도였지만 이모들은 꼭 자신이 따고 캔 것까지 모두 다 내어주었다. 겨울 한해 버티고 처음으로 난 부추는 영양도 맛도 좋아 꼭 나 혼자 먹으라며 수북이 가져다주곤 했던 나의 이모들. 이모들은 꼭 엄마 같고 이모같이, 정말 가족같이 나를 챙겨주었다.


나는 그런 이모들과 함께 지내며 나도 돌아보게 됐다. 이모라고 부르긴 했지만 나와 열 살 이상 차이 나던 이모들을 보며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혜진아~ 하며 아무 때나 찾아오는 이모들은 반갑게 맞이하고 주는 것들 모두 감사하게 받으면서, 어머님이 찾아올 땐 왜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을까. 막 결혼해서는 시집의 '시'자만 붙어도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어머님이 아이들을 키워주시다 보니 싫어도 싫다고 잘 말하지 못했고, 말해도 바뀌기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가까이 지내다 보니 오해가 쌓이고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 와 생각하면 항상 참고 이해하는 건 어머님이었다. 나를 참 귀하게 여겨주던 시어머니에게 이모들에게 하듯 그저 반갑게 맞아주면 되었을 텐데.. 내 안에 여유가 없으니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던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참 삐뚤고 못난 시기였다.


그렇게 내게 넘치는 사랑을, 또 깊은 깨달음을 준 나의 이모들이 작년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장을 보러 가면 시금치, 부추, 양파, 오이, 호박, 두릅, 달래, 냉이, 미나리 같은 것들을 보고 이모들을 떠올린다. 내가 좋아한다고 무생채를 맛있게 무쳐주던, 김밥 쌌다며 아이들 먹이고 보내라고 아침 일찍 가져다주던 사랑하는 나의 이모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어떤 걸까. 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신랑과 나는 지금도 정말 자주 이모들 이야기를 한다. 마트에 가면 있는 모든 것들에서 이모들이 떠오른다. 고사리, 냉이, 달래를 땅에서 처음 본 이야기, 산으로 두릅 따러 가서 막걸리 마시고 온 이야기, 고추밭에 가서 고춧대 세우던 이야기, 감나무에 거름 주던 이야기 등. 그럼 마음 한가운데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먹먹한 기분이 들고 눈시울이 불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불혹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데 기억에 추억에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나이가 돼도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