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 모두 춤추자
빌리 엘리어트가 재개봉을 했다. 이 영화는 2000년 작, 메시지로 따지면 라라랜드의 원조격 될 법한 영화다. 워낙에 좋았던 기억이 있던 지라, 재개봉판을 관람했다. 역시나, 또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영국에서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이 진행되고 있던 1984년, 영국 북부 광산지대 더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난한 동네, 무뚝뚝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반항적인 형,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와 살고 있는 11살 소년 엘리엇. 감이 오시는지.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할 수 있으나, 그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 안에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으나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1984년에는 석탄의 연간 생산량 절반을 비축 해 놓고, 20개의 탄광을 폐쇄, 인력 감축을 발표했다. 영화는 이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광부인 형과 아버지는 파업에 적극 동참하고, 내심 빌리도 광부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작은 소년에게 권투를 가르치려 하지만, 빌리는 권투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소질도 없다. 어느 날부터 파업으로 인해 동네 발레 강습소가 노조 사무실로 쓰이게 되면서, 발레 클래스는 빌리가 권투를 배우는 권투 도장 한편에서 진행되게 된다. 여기서 빌리는 발레를 접하고 빠지게 된다.
영화에서 빌리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억압과 장애물에 맞닥들인다. 가난한 가족들은 그의 흥미와 재능을 찾아 줄 수 없으며, 그의 아버지와 형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연일 거리로 나서 시위를 하고, 소년은 빡빡한 삶을 살아내는 아버지와 형에게 폭언을 듣기 일쑤인 데다, 발레는 남자가 할 수 없는 분야라는 편견에 부딪힌다. (이는 얼마 전 개봉했었던 아일랜드 배경의 영화, 싱스트리트와 묘하게 겹친다. 불우한 가정, 가난이라는 측면에서)
어린 빌리 혼자서는 결코 이겨낼 수 없는 현실의 벽이다. 이런 현실에서 빌리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주장해보지도 못한 채 좌절하고 만다.
헬렌켈러에게 설리반 선생님이 있었고, 라라랜드 미아에게는 셉이 있었듯, 빌리에게는 발레교습소의 윌킨슨 부인이 있다. 이 발레 선생님은 빌리가 권투 글러브를 들고서 발레 교습소 앞에 주춤거리고 있을 때 망설임 없이 함께하기를 권유한다. 빌리가 몰래 권투 수업을 빼먹고 발레 수업을 듣게 될수록, 윌킨슨 부인은 빌리의 재능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빌리의 재능을 이끌어내며 처음으로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빌리의 어머니도 중요하다. 그의 어머니는 빌리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지만, 나중에 읽어보라며 편지를 남겨주었는데 그 속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 'Be yourself'. 어쩌면 빌리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래도 발버둥 치며 노력하는 건, 그의 어머니가 남겨준 이 원초적인 메시지 덕분인지 모른다.
빌리의 친구 마이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동성애적 성향을 빌리에게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데(집에서 여자 옷을 입고 있다든지, 발레 스커트를 입어보고 싶어 한다든지), 경직된 영화 속 당시의 성역할에 대해 돌을 던지는 듯한 존재다. 그는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 빌리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준다. 성인이 된 후의 영화 후반부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그는 발레학교로 진학한 빌리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힘이 되어주는 친구로 죽 함께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빌리에게 폭언만 쏟아내던 아버지와 형의 태도 변화가 영화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빌리는 친구 마이클을 권투 도장에 데리고 가 발레를 가르쳐 주다가, 아버지에게 들키고 만다. 그 순간 이 소심한 소년은 궁지에 몰린 상황 탓인지, 맞기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이것이 마지막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것을 알았는지, 미친 척 아주 신나게 춤을 춘다. 마치 발레가 좋고, 너무 하고 싶다고 제대로 이야기도 꺼내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는 듯, 아버지에 대한 강력한 하소연을 뱉어내는 듯.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충격을 받고, 빌리를 지지해주기로 큰 결심을 한다.
조력의 원천은 가족이었다. 빌리를 런던에 있는 발레학교로 보내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는 자존심을 꺾고 '배신자'소리를 들으며 파업해 나가지 않았던 광산으로 다시 나서지만, 빌리의 형 토니는 아버지를 만류하여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낸다. 서로를 증오하고 싸우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것은 가족의 품이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마지막 부분, 백조의 호수 음악이 흘러나오고, 빌리가 도약하는 모습에 소름이 돋고는 한다. 청춘, 성장, 꿈에 대한 영화는 많이 있다. 제 각기 다른 방식의, 예쁜 옷을 입고선 우리에게 오지만, 빌리 엘리엇이 주는 감동이 더 큰 이유는, 성공을 위한 희생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가족들을 위해 아버지는 죽은 아내의 유품과 같은 피아노를 부숴서 장작으로 썼다. 무뚝뚝한 아버지지만, 남은 가족을 위해 그가 뒤에서 얼마나 많은 뜨거운 눈물을 삼켰어야 했을까.
빌리의 로열 발레스쿨 합격 발표를 받은 날, 아버지는 너무나도 기뻐 동료들에게 그 소식을 전달하러 날듯이 달려간다. 그러나 그는 광부들의 파업은 끝났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는다. 아버지와 형은 다시 탄광으로 돌아가야 한다. 빌리가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아버지와 형은 패배한 것이다. 빌리가 런던으로 꿈을 쫓아가는 순간, 형과 아버지는 다시 어두운 갱도 속으로 내려간다. 이 영화는 꿈이 마냥 아름답고, 너 스스로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뼈 아프게 알려준다. 너의 꿈을 위해, 성공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을 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이 17년 전의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