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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Feb 26. 2017

[영화리뷰] 23 아이덴티티 (Split, 2016)

- 정말로 상처받은 자는 누구인가

[주의 : 스포일러 다량 함유]


공포영화 같은 거 절대 못 보는 쫄보 주제에, 제임스 맥어보이가 스릴러 영화를 찍었다는 소식에 룰루랄라 극장으로 간 게 화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을 후덜덜 거리며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거 공포영화였나? 하며. 

인격 분열이라는 흥미로운 소재 + 스윗가이 제임스 맥어보이 조합에 만세 부르고 달려갔다가, 이제 제임스 맥어보이 사진만 봐도 쫄아서(?) 눈을 깔게 되었다. 아아, 한동안 이럴 것 같다. 어쨌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제작, 미국에서 스플릿(Split)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하며 숱한 화제를 뿌린 이 영화에 대해 리뷰해본다.

으앙 그렇게 인상쓰면 무섭다구

1. 흥미로운 소재 활용, 긴장감 팽팽한 전개

트래일러나 소개 문구만 봐도 사실 이 영화의 내용은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어떤 남자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존재한다. 그 남자의 위험한 인격 중 하나가 세 명의 소녀를 납치한다. 그 남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남자가 소녀들에게 해코지하겠구나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혹시라도 반전이 있다면 그 남자 안의 선한 인격 하나(?)가 각성하여 소녀들을 풀어주지는 않을까? 하는.

도망쳐, 도망치라고 소녀들아!!!

그러나 그걸 알고 보아도 스크린을 응시하는 내내 심장이 쫄리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초반부터 무게감 있게 등장하는 제임스 맥어보이(원래 이 인간 이름은 케빈, 이 씬에서의 인격은 데니스)를 보면, 아 내가 차에 타고 있는데 저런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옆에 타면 나도 끽소리 못하고 덜덜 떨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내 소녀들은 저항하고, 이 남자는 여러 인격이 차례로 등장하며 소녀들에게 공격적이었다가, 선의를 베푸는 듯했다가, 장난스러웠다가 하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참 무섭고 미칠 노릇인 거다. 어떤 모습으로 소녀들에게 다가올지 모르니, 보는 입장에서 마음의 준비가 안되고. 그래서 더 스릴 있다. 

이 남자의 희생양이 된 소녀들, 이들이 납치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또한, 영화 후반부를 보면 감독이 이 영화와 2000년 개봉했던 언브레이커블(Unbreakable)의 세계관을 연결시키려는 큰 그림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또 등장하거든! (이 부분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2. 제임스 맥어보이 연기의 힘

제임스 맥어보이는 표정, 말투, 행동에 차이를 주며, 서로 다른 인격들을 표현해 낸다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진 자를 연기하는 제임스 맥어보이에게 박수를. 이 영화가 가진 힘 중 상당 부분은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에서 온다고 본다. 보통일 때 케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사내 안에, 23개의 인격(또 하나, 가장 위험한 인격이 생겨 24개가 되는 지도)이 존재한다. (그는 영화상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학대받은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위해 여러 개의 인격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로 보이는 인격은 대여섯 개 정도이다. 지배적으로 자주 나오는 인격들은 데니스, 패트리샤, 헤드윅, 배리 정도를 들 수 있겠다. 소녀들을 납치할 때의 인격이자, 심한 강박증이 있고, 소녀들이 옷을 벗고 춤추는 것을 보는 것을 즐기는 데니스, 소녀들에게 비교적 나긋하지만 그녀 또한 강박증을 가진 모습을 보이는 여성 패트리샤, 9살 남자아이인 헤드윅, 패션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여성스러운 배리.  

패트리샤 인격이 지배적일 때의 케빈

영화에서는 누가 빛을 받는다, 자리에 앉는다 정도의 워딩으로 어느 인격이 케빈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표현했던 것 같다. 케빈은 주로 안정적인 배리의 인격으로 테라피스트에게 상담을 받는데, 인격 분열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케빈에 대한 상담을 오래 해왔던 테라피스트가 상담 도중 이상한 느낌을 받아 '너 배리 아니지? 내 생각에 너 데니스 같은데?'라고 말했을 때, 케빈이 계속 부정하다가 인정하는 그 순간! 제임스 맥어보이의 전체적인 표정과 분위기가 배리에서 데니스로 확 바뀌는데 아, 정말 소름 돋았다. 

헤드윅의 인격이 지배적일 때의 케빈

소녀들 중 가장 중심에 있는 케이시는 이러한 여러 인격을 가진 케빈의 모습을 파악하고, 케빈이 헤드윅의 모습일 때, 9살 아이의 수준에 맞게 대화하고 헤드윅을 꾀어내어 여러 단서를 찾고 탈출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역시 사람은 분위기 파악을 잘 해야 한다. 영리한 케이시. 



3. 상처받은 자와 상처받지 않은 자 감히 누가 구분할 것인가

케빈이 자신 안의 그 어떤 인격도 아닌 오롯이 본인 자신일 때도 영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다. 케빈이 인격 분열 증상을 보인 것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상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 어쩌면 그는 꼬마일 때부터 학대를 받아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인격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실제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 끝내 인격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돈 건지도 모른다(인격들은 자신들이 케빈을 지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자기 자신을 끔찍한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 끝내 케빈은 선한 다른 인격들을 밀쳐내고 데니스, 패트리샤 같은 강하고 악한 인격들에 지배당하다가, 가장 무서운 비스트까지 소환해 내게 된다. 아니, 본인 스스로가 비스트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케빈과 그의 인격들이 생각한 비스트의 모습

여기서 왜 하필 데니스가 이 소녀들을 납치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풀린다. 데니스는 24번째 인격이 될, 가장 강하고 악한 존재인 비스트를 위해 소녀들을 납치했고, 그녀들을 먹잇감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줄곧 상처받아 고통 속에 살아온 케빈(데이스이자 비스트인 케빈)은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이는 어린 소녀들에게 자격지심, 나아가 분노 같은 마음을 품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은 어린 존재들을 먹잇감으로 삼아, 살육을 벌인다. 

그러나 데니스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 하나. 여 주인공인 케이시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삼촌으로부터 학대받고 자라온 아이였던 것. 이것이 이 영화의 엔딩을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수 분장이나, 헤어 메이크업의 변화도 없이, 표정만으로 만들어 내는 이토록 넓은 인물 스펙트럼이라니!

그러나 살아오면서 상처받은 자와 상처받지 않은 자. 그런 부분들을 단순히 육체적인 상처만으로 판단해 낸 것이, 비스트의 옥에 티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케이시와 그녀의 두 친구들을 살펴보면 두 친구들은 상대적으로 철이 없고,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몸을 가졌지만. 이것이 그녀들이 정신적, 육체적인 상처나 트라우마가 없이 자라왔다는 증거가 될는지. 그리고 단순히 그런 외견적인 모습을 보고 희생양으로 삼아도 되는 것이었을지. 이런 생각을 해보니 비스트의 무게감이 조금 가벼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만한 사정 속에서 깊은 고뇌 속에 탄생한 괴물이 아니라, 그냥 살육을 위한 괴물 같다는 느낌. 감독의 의도가 있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번외. 샤방한 제임스 맥어보이의 사진들로 그에 대한 공포심을 덜어내 보자.

이것은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부분이다. 역시 배우는 어떤 비주얼로 연출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고는 하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조금은 무서워졌기에, 정화용으로 우리 훈남 맥어보이의 이쁜 사진들을 함께 붙여놔 봐야겠다.

지적인 섹시함을 풍기는 엑스맨에서의 찰스자비에 교수 
저런 순한 눈빛, 이 영화에서는 1도 없습니다
훈훈한 두 영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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