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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22. 2017

[책이야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가 전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따뜻한 권유

나는 뭔가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읽을거리는 여행기.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쓴 여행기를 보고 대리 만족하고 위안을 얻는 편이다. 신문 기사도 많이 보는 편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날은 공리주의니, 자유론이니 하는 철학서도 즐겨 찾는다. (존 스튜어트 밀의 팬입니다.)

스벅에서 커피한잔하며 가볍게 펼쳐 들었으나, 앉은 자리에서 완독!

유독 손이 잘 안 가는 책들도 있는데, 남이 쓴 인물평전(스스로가 쓴 자서전은 좋다), (베스트셀러들의 복제와 복제를 반복해 뻔한 소리를 하는) 자기개발서와 소설책이 그렇다. 책 편식을 하는 내가 이번 생일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장편 소설책을 선물 받았다. 워낙에 유명한 소설이다 보니 그저 몇 장 읽어나 보자 하고 손에 쥐었는데,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완독 했다. 나의 근거 없는 고집이 툭- 꺾이는 순간이었다. 아주 쉽게 읽히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쉬운 인트로, 힌트는 제목에 있었다.

내용에 충실한 일본판 표지

나미야 잡화점. 나미야. 이 잡화점의 이름을 다시 배열하면 나야미. 일본어로 '고민', '번뇌'를 뜻하는 나야미(惱み)가 된다. 그렇다, 나미야 잡화점은 사람들의 나야미(고민)을 해결해주는 만물상 같은 곳이다.

표지를 넘겨 맞이하는 첫 장면은 세 명의 빈집털이 도둑들이다. 이들이 빈집털이를 하고 피신처로 삼아 몰래 들어간, 영업을 안 한 지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이 바로 나미야 잡화점이었다. 이 곳의 사연을 알 리 없는 이 세 도둑은 새벽녘을 여기서 보내고, 아침에 되면 바로 도주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우연히 셔터 앞 우편함에서 나는 툭-소리에 깜짝 놀라고 조심조심 그곳을 향해 보곤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편지를 보낸 이는 '달토끼'. 세 도둑은 숨어있는 것을 들킨 것은 아닌지,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보는 것이 아닌지 불안 속에 고민하다 편지를 열어보고, 그 편지가 고민을 상담하는 편지임을 알게 된다.


그저 무시할 수도 있었을, 한밤 중 외딴곳에 있는 잡화점으로의 편지 한 통. 그러니 이 세 사람은 달토끼 씨의 고민을 무시하지 않고 불가사의한 힘에 끌리듯 답신을 쓰며, 잡화점 뒤의 우유통 속에 편지를 넣어준다. 그로부터 몇 분 지났을 까, 그 답신에 대한 달토끼의 재 답신이 온다.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쓰기에는 불가능한 짧은 시간 내의 재 답신. 이 편지를 받아본 후에야 세 사람은 이것이 우연이 아님을, 그리고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힘이 되어주고픈(고민을 상담해주는) 마음을 느끼게 된다.


짜임새 있는 구성, 쫀쫀한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세 빈집털이범들은 바깥세상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나미야 잡화점 안에서 여러 인물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게 된다. 고민도 아주 다양하다. 애인이 암에 걸린 상황에서 올림픽 출전 연습을 계속 해야하나 고민하는 이, 돈을 벌기 위해 호스트 일을 계속해도 될 지에 대해 묻는 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계속해도 될 지 고민하는 이, 빚에 몰려 야반도주를 하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 등.


소설을 읽는 내내 짠한 인물들의 사연이 나온다(고민 상담이니 당연할지도). 참 기구한 운명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중심을 잡아주는 주인공들인 사람들도 왜 하필 도둑일까 하는 생각도 몰려온다. 사실, 이들을 이어주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이들은 한 보육원 출신이었던 것. 오갈 데도 의지할 곳도 없었던, 그런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환광원'이라는 보육원,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 이 두 공간이 등장인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등장인물 많은 책을 읽으면 쉽게 길을 잃고는 하는데 이 책은 앉은자리에서 완독을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짜임새가 좋고,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우리에게 기적이라는 건 뭘까

동화같은 일러스트의 한국판 표지가 더 맘에 든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다 읽고 나면,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 도둑이 무사히 도망을 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 이루어지지도 않으며, 해피엔딩도 아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고민이 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군중이다.


가난하고, 아프고,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태생적으로 악한 이는 없다. 이것이 이 책에서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인 것 같다. 본래 인간은 선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가 도움을 청하면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는 존재다.라고 주장하는 듯한.


나는 이 책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돌이켜 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책 속에서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인물들이 편지를 통해 마음속 깊은 고민을 꺼내놓는가 하면, 누군가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진심을 담아 상담해 준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점점 가족 간, 이웃 간에 아주 기본적인 대화도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깊은 고민을 들으면 진심으로 대화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그런 인간적인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어 주는 게, 이제 우리들에겐 '기적'이 되어버린,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통해 상처 입은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달라는 상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멋진 책은 영화화가 확정되어 2월 경, 촬영이 완료될 거라고 한다. 책의 느낌을 잘 재현해 준다면, 영화도 기대해볼 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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