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취업 9종 세트라는 말이 있다.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입상, 인턴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을 말하는 거라고 한다. 워낙 신입 채용 문이 좁다 보니 과열된 취업시장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관상/인상이 좋지 않으면 면접에서 불리하다고 외모도 스펙이라며 성형수술까지 고민하는 취준생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취업 자리 몇 개 두고 젊은이들에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사회의 횡포로까지 느껴진다. 최근엔 입사 지원할 때 기업들이 증명사진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면접 때 보일 외모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내가 취업 준비할 때는 증명사진 제출은 필수였기 때문에 실제 외모보다 잘생기고 예뻐 보이도록 자연스레 포토샵을 해주는 사진관 리스트가 돌기도 했다. 증명사진 찍을 때 필요하니까 블라우스, 셔츠, 재킷 같은 정장도 난생처음 거금을 들여 마련했었다. 면접 정장뿐인가, 영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토익에 요즘엔 영어 말하기 시험이 필수니 오픽 같은 자격증 점수를 원하는 수준으로 취득하려면 시험 응시료가 10만 원을 훌쩍 넘어선다. 취업준비에 드는 비용이 취준생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사실 대기업 지원하려면 필요하다고 사회에서 말하는 스펙에는 거품이 많이 끼여있다고 생각한다. 취업 9종 세트만 해도 그렇다. 영어성적? 필요하다, 그러나 점수를 얻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인 어학연수는 지극히 선택적인 사항이다. 목표로 하는 영어 성적은 굳이 어학연수가 아니라, 시중의 문제집을 반복해 풀면서 만들었다고 해서 폄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어회화? 영어권 국가에서 몇 년 이상 살았거나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네이티브 수준이니 논외로 치고, 해외에서 몇 개월 연수하며 어설프게 영어 익혀온 사람보다는 미드 열심히 보고 영어회화 스터디 같은 거 꾸준히 하면서 영어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낫다. 제대로 된 기업이라면 '당신은 어학연수도 안다녀 오고 뭐했어요?' 할 면접관은 단언컨대 없다. 외모 지적? 외모로 면접자를 폄하하는 혹은 합격자를 고르는 면접관이 있는 기업이라면 면접자 입장에서 먼저 거르는 게 현명할 수 있다. 면접관을 대하는 기업문화가 그 정도 수준인 회사라면 몇 년 뒤 뉴스 사회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의 사안으로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회사에 입사해서 쓰지도 않을, 중요하지 않은 스펙들을 들먹이며 가뜩이나 힘든 취준생들 상대로 공포 마케팅을 조장해 돈벌이를 하는 일부 회사들 이야기를 들으며 분통이 터졌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면접관 입장에서도, 영양가 없는 스펙 여러 개만 주르륵 늘어놓는 면접자보다 이 직무에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사항 위주로 준비해온 면접자에게 더 호감이 간다. 내가 몇 차례 면접자도 면접관도 되어보고서 느낀 바로는 그렇다.
경력 있는 신입을 찾는다는 소리를 왕왕 듣는다. '아니 여기저기서 다 경력을 찾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하고 부르짖는 코미디 프로그램 대사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현업에서 가장 반길 인재는 업무와 비슷한 부분에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말은 어디 정규직 채용되어서 거기서 경험을 쌓아 오는 '중고 신입'을 바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르바이트나 인턴, 공모전 같은 제도들을 통해서 '경험'을 하고 그 속에서 뭔가 이루거나 깨달아본 적이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마케팅 직군이라면 뭔가를 홍보하는 아이디어를 내는 공모전 입상 경력을 쓰는 것이 그 지원자의 능력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준다. 마케팅 관련 공모전은 대기업에서 하는 것도 많고 지자체나 공기업에서 하는 경우도 자주 있으니 정보를 잘 확인했다가 내가 원하는 직무와 연관성이 있어 보이면 준비해서 지원해보자. 일부 회사는 공모전 입상한 사람에게 입사 시 가산점이나 입사 기회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첫 직장인 LG에 다닐 때 LG 글로벌 챌린저라는 공모전을 통해 입사한 동기가 있었는데, 밝고 적극적인 친구여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었다) 그러니 한 번쯤은 팀이든 개인이든 공모전에 지원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아이디어를 실행시켜보는 경험을 해보길 추천한다. 입상을 하지 못했더라도 공모전을 준비했던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면 그 내용을 자소서에 녹여보는 것도 평범한 소재로 자소서 문항을 채우는 것보다는 훨씬 의미가 있다.
지원한 회사와 동일 분야에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가장 막강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은행을 지망한다면 농협에서 하는 청년인턴을 지원해서 은행 내부의 생리나 하루 일과를 파악하고 배운다든지, 패션회사를 지망한다면 동대문이나 백화점, 면세점의 패션 브랜드 매장에서 일해본다든지 하는 거다. 특히 지망하는 회사의 영업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것을 추천하는데, 어떤 고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찾는지 체감할 수 있는 데다 현장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고충들을 가감 없이 들으며 내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해 문외한이 아니며, 이 일을 하기 위해 실무적인 경험을 쌓으며 노력해왔고 빠르게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단번에 보여줄 수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간혹 면접을 진행할 때 남들 하는 거 맞춰 천편일률적인 스펙을 기입한 지원자에게는 무얼 물어봐야 할지 당황스러운 때가 있는데(모든 부분에서 우수한 지원자라도 뭔가 특징적인 게 없으면 뭘 물어봐야 할지 흥미가 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우리 회사 해당 직무와 관련된 경험을 많이 한 면접자라면 그 경험이 어땠는지 더 알고 싶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면접관들의 인상에 깊이 박히게 된다.
봉사활동이 지원자의 이타심이나 가치관을 보여주는 이력이 될 수 있지만, 지원하는 기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은 이상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지망한 직무에 관련한 자격증의 경우에는 확실히 가산점 요인이 된다. 노무사,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 자격이 있는 경우 가산점이 있음을 명시한 공고들이 많은데 이런 자격증은 일반 취준생이 준비하기에 많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일뿐더러, 해당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반 기업에 지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인사팀, 회계팀, 법무팀 지망인 경우 더없이 든든한 자격증) 한자 자격증이나 한국사 자격증의 경우 있으면 서류 전형에서 가산점이 붙는다는 공고가 있다면 해당 자격증도 의미는 있겠으나,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력서 자리를 채우기 위한 흔한 자격증보다는 지원하는 직무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 자격증만 골라서 준비하거나 아님 그 노력을 다른 생산적인 일에 쓰는 편이 낫다. 플러스가 확실히 될지 모르는 스펙을 준비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일 바에는 진짜 실무적인 경험에 집중하며 내가 바라는 길이 맞는지 부딪혀가며 배우고 느끼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