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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Feb 20. 2021

시골개는 처음이라

 못생겼다. 촌스럽게 누렇게 뜬 털 공 같은 게 굴러다닌다. 내가 기대한 강아지는 이게 아닌데. 전에 키우던 강아지는 눈처럼 새하얀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몰티즈였다고. 13살이 넘어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도 아기처럼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사랑스러웠던, 조그만 몰티즈를 키웠었는데. 시골로 이사하며 강아지를 들였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한달음에 시골집으로 달려온 내 앞에 있는 이건, 흐리멍덩한 눈을 꿈뻑꿈뻑거리고 있는 그 흔한 시골 똥개다.       

오른쪽 발만 하얀 양말을 신은 듯한 못난이

 잔디를 곱게 입은, 넓은 시골 마당에서 키울 거니 내심 천사처럼 웃는다는 골든 레트리버나 용맹하고 날렵한 시베리안 허스키를 기대했었다. 주인에게 충직하고 듬직한 셰퍼드도 좋았다. 중국에서 온 직장 동료가 예전에 지린성에 살 때 셰퍼드를 키웠었는데 그 개가 강에 빠진 사람을 보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뭍으로 끌고 왔다는 미담을 들으면서, 다음에 개를 키운다면 덩치 크고 잘생긴 개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터였다.


 근데 지금 눈 앞에서 내 신발 끈을 물고 집요하게 당기고 있는 이 강아지는 엄마 친구분에게 얻어온 시골 토종견이란다. 맥 빠진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못난이는 마당을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는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왔다. 대체 뭘 씹을 수나 있을까 싶게 쌀알처럼 조그만 앞니, 뭐 하나 움켜잡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이쑤시개처럼 뾰족하고 얇은 발톱. 몸에 비해 큰 머리. 조약돌처럼 까맣고 축축한 작은 코에 콧물 한 가닥이 맺혀 있어 이 녀석의 존재감을 더 하찮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마당에서 집 지킬 개라면 더 폼이 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강아지면 도둑한테도 같이 놀아달라고 꼬리를 흔들겠네.   

       

 잔디가 깔린 우리 집 마당에는 테두리를 쳐놓은 것처럼 소나무에 사과나무며 대추나무, 무화과나무가 우직하게 서 있다. 초가을에 접어들어 연둣빛에서 갈색으로 변해가는 반질거리는 대추들이 나뭇가지 휠 정도로 흐드러졌다. 나무들 아래에는 동그랗고 보송보송한 노란빛 서양 민들레가 한가득 피어 꿀벌들을 불러 모았다. 더위가 싹 가신 시원한 가을 저녁 바람이 건조한 나무 이파리 냄새를 퍼뜨리고, 앞 집과 이웃한 담장 아래 만들어 둔 조그만 금붕어 연못에 장식해 둔 분수에서는 맑은 물소리가 졸졸졸 들린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먹이를 주려는 건 줄 알고 수면으로 올라오는 금붕어들이 물 표면에 대고 입을 뻐끔거렸고, 그 뽀복 거리는 소리가 재미있었다. 마당 안쪽에는 파고라가 있다. 우리 가족이 직접 나무를 고르고, 크기에 맞게 자르고, 사포로 문지르고, 페인트를 칠해가며 만든 파고라다. 파고라 위엔 시들기 시작한 포도 덩굴이 시큼한 단내를 풍기며 얽혀있다. 스페인산 붉은 기와가 입혀진 우리 집 지붕은 동네에서 가장 예뻤다. 이렇게나 쾌적하고 아름다운 우리 집 마당에 뛰놀게 될 개가 시골 똥개라니.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아지랑 인사나 좀 나눠보라며 부모님은 날 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황망하게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 와중에 못난이 강아지는 낮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잡아보겠다고 폴짝 뛰다가 놓쳐서 머쓱한 모양이다. 마당 한 편에 곱게 심어둔 능소화 향기를 한참 맡아보고선 질렸는지 나를 향해 뒤뚱대며 달려온다. 괜히 심술이 나서 못 본 척 강아지와 반대쪽으로 걸어가며 속도를 냈더니, 짧은 다리로 헐레벌떡 나를 쫓다 머리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못생겼는데 멍청하기까지 하다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강아지는 흙바닥에 구른 몸이 아프지도 않은지 폴짝 일어나더니 다시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내가 움직이면 따라오겠다고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뛰었다

 이번에는 조금 골려줄까 하는 마음에 엄마가 사 온 강아지 공 장난감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광 초록빛 천으로 만든 강아지 공은 내 눈에 언뜻 테니스 공처럼 보였다. 공을 집어 들자 이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놀아달라는 눈치다. 자, 어디 한 번 물어와 봐 하며 멀리 공을 던져놓고 강아지가 그쪽을 쳐다보는 사이 마당 구석 큰 나무 뒤에 숨었다. 강아지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을 보고 꼬리를 흔들면서 쫓아가다, 나와 뜀박질 놀이를 하던 게 생각났는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공은 맥없이 대문 앞에 떨어졌다. 녀석은 어느새 공은 까맣게 잊은 듯, 마당 끄트머리에서부터 내가 어디 갔나 코를 킁킁거리며 찾기 시작했다. 내가 안 보이자 불안해졌는지 금세 낑낑거렸다. 어찌나 열심히 흙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는지 콧잔등에 축축한 흙이며 잔디 조각이 붙어있다. 왠지 그 꼴이 조금은 애교 있게 느껴졌다. 이제 슬슬 강아지 앞으로 짠! 하고 등장해줄까 싶던 찰나, 강아지 옆에 우뚝 선 파고라를 감싸 안은 말라버린 포도 덩굴 사이로 말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골에 살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날갯짓 소리가 무서운 말벌.          


 나비처럼 덩치가 큰 말벌을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부모님 댁에 올 때면 가끔 볼 수 있는 말벌이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시골 말벌에 대한 공포는 나아지지 않았다. 멀리서도 보이는 압도적인 존재감, 노란색 검은색 대비가 선명한 몸체, 선풍기라도 틀어둔 듯 세찬 날갯짓 소리. 말벌과 마주치면 나는 마치 메두사를 정면으로 바라본 것 마냥 굳어 버리곤 했다. 문제의 말벌은 쭈글쭈글한 포도송이 위를 날더니 민들레 꽃을 향해 내려앉았다. 제발 어서 멀리 날아가라 하고 나직한 혼잣말을 내뱉으며 강아지 쪽을 쳐다봤다. 틀림없이 말벌을 처음 보는 듯한 녀석은 강아지풀 같은 꼬리를 흔들며 벌에게 다가갔다. 저 조그만 게 말벌에 쏘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무슨 일 있겠어하는 마음과 위험할지 모르니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덩치 큰 성인 남자도 말벌에 쏘이면 위험할 수 있다는데 저 호박만 한 강아지가 말벌에 쏘이면 어떡하지.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나는 강아지에게로 뛰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인 다리 덕에 나는 말벌보다 빠르게 강아지에게로 후다닥 달려가 오른손으로 강아지를 낚아챌 수 있었다.


 한 손으로 쉽게 들릴 정도로 강아지는 작고 가벼웠다. 그 따뜻하고 말랑하고 생각보다 더 보송한 솜털 입은 몸뚱이를 들어 올린 순간, 왼쪽 귓가로 말벌의 세찬 날갯짓 소리가 위잉 하며 지나갔다. 절로 목이 움츠려 들고 소름이 돋았다. 대체 이 바보 강아지는 말벌에 쏘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토록 무모한지.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 없겠지만 훈육을 해야겠다 싶었던 찰나, 내 검지 손가락에 강아지의 축축한 코가 닿았다. 구해줘서 고마워하는 것 같기도,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났어하는 것 같기도 한 맑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내 손에 따끈한 몸뚱이를 기대는 이 다정함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걸까.        

  

 강아지를 들어 올려 눈을 빤히 바라봤다. 마당에서 숨어버린 나를 필사적으로 찾았음이 분명한 흙 묻은 콧잔등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쳐다봐서 머쓱한지 조그만 분홍색 혀를 날름거린다. 시골 개는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얼굴을 가까이 마주 댄 순간, 아차 싶었다. 이 녀석이 방금까지 흙 먹던 입으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핥아대기 시작했다. 마치 이제 나 버리고 어디 가면 안 돼 하고 투정을 부리듯이. 쿰쿰한 입 냄새가 찝찝했지만, 왠지 강아지를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온통 누런 털 중에 오른쪽 발만 털 색깔이 하얗다. 흔한 누렁이가 아니고 조금은 개성이 있구나 너? 싶어 강아지 코에 내 코를 맞댔다. 순진무구한 눈빛의 녀석은 나를 마치 하나의 구원자처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존재에게 이렇게까지나 맹목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도저히 가만히 두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털 뭉치 꼬리가 왜 이리 또 귀여울까. 시골 개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말벌 같은 세상에서, 이 녀석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착한 내가 이 강아지를 거둬줘야만 할 것 같다 싶어 나도 모르게 얄궂은 미소가 지어졌다.          


 사랑스럽다. 황금 같은 태양 빛의 보드라운 털을 가진 나의 강아지가 신나게 마당을 뛰어다닌다. 시골 개와의 시작이 없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원초적인 생명력이 넘실대는 시골에서의 생활이 나를 다시 키운다.

같이 가자며 쪼르르 달려오는 이 조그만 녀석을 어쩌면 좋을까


*성견이 된 뿌꾸, 볼 살 조물조물

https://www.youtube.com/watch?v=hb-SdNA-N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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