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어제 뭐 먹었어?'
*방영시기 : 2019년
*등장인물 : 니시지마 히데토시, 우치노 마사아키, 야시바 토시히로, 나카무라 유리카, 카지 메이코
*산들의 코멘트
40대 중년의 변호사 '시로'와 미용사 '켄지'가 저녁이면 집에서 함께 맛있는 밥을 지어먹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다. 특이점이 있다면 시로와 켄지가 둘 다 남자로, 동거 중인 게이 커플이라는 점. 만화 원작인 이 드라마는 게이 커플이라는 소재보다는 두 사람이 집에서 알콩달콩 요리하고 맛있는 걸 해 먹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만화 원작도 누적 발행부수가 765만 부 이상으로 인기 있었지만, 드라마 자체도 방송되자마자 트위터 월드 트렌드 1위에 오르고 다시 보기 서비스 재생 횟수가 100만 회를 돌파하는 등 심야드라마 치고 이례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고 있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 커플이 요리를 해 먹는 한 회 20분 상당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인기 있을 일인가 싶다가도, 나도 생각날 때마다 한 회씩 다시 보고 있는 걸 보면 분명 아주 매력 있는 드라마 임은 분명하다.
시로는 본인이 게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지 않은, 미중년 변호사다. 켄지와 둘이서 늙어갈 준비를 하면서 미리 노후자금을 저축하기 위해 10엔이라도 더 싼 계란을 찾아다니는 알뜰한 절약가이기도 하다. 요리를 잘하기도 즐기기도 하는 시로는 외모나 성격이 게이의 스테레오 타입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 설정이 신선했다. 켄지는 시로와 반대로 본인이 게이임을 직장에서도 커밍아웃하고, 행동이며 패션이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소 뜨악할 수도 있는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 않는다. 시로가 만든 저녁밥을 켄지가 요란스럽게 맛있게 먹으면 그 모습을 시로는 조용히 웃으며 바라본다. 식탁 위에는 전골이나 닭날개 간장조림, 솥밥처럼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맛있는 가정식이 올라온다. 특별한 갈등 없이 두 사람이 식사하는 장면일 뿐인데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시로는 일은 월급 받을 만큼만 하자는 주의. 6시면 퇴근해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집에 오고,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식비는 엄격하게 한 달에 2만 5천 엔으로 제한하고 사치하지 않는다. 요리할 때는 잡생각이 들지 않기에 심난한 일이 있을 때도 요리하는 것 만으로 머리가 맑아진다는 시로. 뭔가 하나를 완성해 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요리만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이만큼 멋진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그가 만드는 요리를 나도 따라 해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서는 실제로 이 드라마에 나온 레시피를 따라한 요리 인증이 꽤나 많은 듯하다. 저녁에 맛있는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삶, 이것만큼 원초적인 행복이 있을까.
‘Man is what he eat’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 자신이라는 뜻의 이 말은 '루드비히 포이어바흐'라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가 한 말이다. 최근 2030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진 몸만들기나 바디 프로필 촬영 열풍, 달고 짠 음식 먹방으로 인한 당뇨 위험 등 건강에 대한 화제가 부각되면서 식이 조절이라는 개념 또한 확산되고 있다.
건강한 삶을 생각해보면 사실 운동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유산소나 근력 운동도 중요하지만 결국 식이 조절을 해야 목표하는 체지방량이나 근육량을 만들 수 있다. 음식은 그야말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토대가 되므로 아주 중요한 분인데, 직장인들은 식사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은 영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로 우리를 행복한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맛있는 식사’는 어쩌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한 후 점심은 대부분 사내 식당이나 회사 근처 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야근을 하지 않는 이상 개인생활 영역에서 해결할 것이다. 밖에서 사 먹든지 배달을 시켜 먹든지 스스로 요리해서 먹든지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요즘 나는 가급적이면 직접 밥을 해 먹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밖에서 사 먹는 밥은 편하기도 하고 맛있지만, 간이 세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아 먹고 나면 소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격도 웬만한 가정식이 1만 원 가까이, 좋은 식당은 몇만 원도 넘어가기 때문에 밖에서 식사를 즐기다 보면 엥겔지수가 위험 수치에 이른다.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는 직장인은 보통 나이가 들수록 건강검진에서 정상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려 하는 위험 수치가 늘어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잘못된 자세로 앉아서 컴퓨터를 보며 척추나 눈을 혹사시키고, 머리를 썼더니 당 떨어지는 것 같다며 액상과당이나 단 간식을 즐기는 데다, 회식을 핑계로 과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뇨나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복부 비만 등 젊은 직장인을 위협하는 질환에서 벗어나려면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스스로 만드는 건강한 밥상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다.
A는 최근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보고 충격을 받았다. 신입사원 때에 비해 몸무게가 5kg 정도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고, 자주 걷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상 범위를 벗어나는 항목이 여러 가지 생겼다. 만성 표재성 위염에 공복 혈당이 정상 기준보다 높았고, 철 결핍성 빈혈에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았다. 운동과 식이 조절을 하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받았다.
A는 코로나 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활동량이 더 떨어지니, 우선 단 음식부터 줄이기로 했다. 즐겨 마시던 커피는 바닐라 라테에서 일반 라테로 바꿨고, 조금이라도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항상 곁들였던 콜라나 사이다도 끊기로 했다. 그리고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를 직접 해 먹겠다는 다짐을 했다. 재택근무로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이 사라지니 한결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A가 자취생활 초반에 느꼈던 것처럼, 혼자 사는데 음식을 직접 해 먹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채소나 고기 종류를 사두면 혼자서 먹을 수 있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아 결국 상해서 버리는 게 너무 많았다. 식재료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재료를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도 해봤지만, 냉동실에 들어가는 순간 잊어버리게 되어 나중에 결국 또 정리하면서 버렸다. 이번에는 양을 좀 적게 해서 파는 제품들을 사 보기로 했다. 마트는 대용량 제품이 많으니 온라인 몰에서.
온라인 쇼핑은 편리했다. 무엇보다 1인 가구가 사용하기 편하도록 채소도 양파 하나, 감자 두어 개 정도로 적은 양으로 팔고, 굳이 다듬지 않아도 되도록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순두부찌개나 된장찌개 같은 국을 만들기 위한 양념도 한 회 분량씩 포장해 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요리에 필요한 주요 재료와 양념, 레시피까지 함께 들어있는 밀키트도 한식부터 중식, 일식, 양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있었다. 밖에서 사 먹는 거나 밀키트나 다를 바 없나 싶다가도 양념의 양을 조절한다거나 야채를 더 많이 넣는 식으로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밀키트부터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재택근무를 마치고 오랜만에 부엌에 섰다. 어제 주문해 오늘 아침에 집 앞으로 배송된 ‘차돌박이 숙주볶음’ 밀키트를 열었다. 차돌박이, 숙주, 잘게 썬 대파, 양념에 식용유까지 요리에 필요한 단계별 재료가 착실히 들어있었다. 레시피에 나와 있는 것처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볶았다. 물에 씻은 숙주를 다듬고 냉장고에서 어제 주문해 둔 양파와 두부를 꺼내 썰어서 함께 넣었다. 한결 더 든든한 요리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요리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맛있기도 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샘솟았다.
이제 A는 일주일 단위로 식단표를 세운다. 일주일에 두 번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되, 월 식재료 쇼핑 예산 한도를 정했다. 일주일 단위로 미리 메뉴를 생각하니 그 메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만 구매했고 재료 하나도 며칠 텀을 두고 볶거나 튀기거나, 삶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다 보니 버리는 경우가 없어졌다. 자연스레 맵고 짠 음식보다 담백한 음식과 채소를 의식적으로 많이 먹게 되었다. 밥도 흰쌀밥 대신 잡곡을 섞은 밥을 해 먹고 아침마다 자주 마시던 우유는 달지 않은 두유로 바꿨으며 단 음료수 대신 물을 마셨다. 요리 레시피를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고, 소화가 안되거나 속이 쓰린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전에는 식사도 급하게 하곤 했는데 이제는 천천히 요리하고 음식을 즐기듯이 먹는다. 식비가 절약되는 것도 기쁜 일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들고 자존감이 높아진 점이 가장 행복했다.
가계 예산에 맞춰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해 먹으면 내가 나를 잘 다스린다는 생각이 들고, 절약을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몰이 생기면 할인 쿠폰이 매 월 발급되기도 하고, 내가 구매했던 항목 리스트를 볼 수 있어 최근에 뭘 자주 먹었고 뭐가 부족한지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요리라는 것은 내가 선택한 재료로 내가 원하는 대로 조리해서 완성하는 것으로, 모두 내 마음대로 하면서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활동이다. 물론 요리에 익숙지 않은 경우에는 맛을 보장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일종의 성취감마저 느껴진다. 좀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만 만들어 갈 수 없는 회사일이나 인간관계 사이에서 나의 선택으로 이렇게 쉽게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1인 가구를 위한 식재료 쇼핑몰도 많아진 지금, 이걸 충분히 활용하며 건강과 통장을 챙기는 식사를 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