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방영시기 : 2016년
*등장인물 : 아라가키 유이, 호시노 겐, 오타니 료헤이, 이시다 유리코, 후루다 아라타
*산들의 코멘트
‘계약 결혼'이라는 흔한 소재가 바탕이 되지만 이 드라마는 진부하지 않다. 심리학 대학원까지 나와서 열심히 구직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거절당해온 25세 '미쿠리'와 스스로를 프로 독신이라 칭하며 35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시스템 엔지니어 '히라마사'. 미쿠리가 히라마사의 집에 가사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직 활동에서 연거푸 거부당하며 상처 입은 미쿠리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열등감이 심한 히라마사가 서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마음을 열어가는 이 드라마는 사랑 이야기이자 두 사람의 성장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미쿠리가 청소, 요리 같은 가사 노동에 능한 설정인데,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시하는 '가사'라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힘들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가사 노동을 급여로 환산해보는 장면도 왕왕 나온다. 히라마사는 퇴근 후 돌아온 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사 대행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최근 들어 바쁜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다양한 가사 지원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는 점을 잘 활용한 설정인 것 같아서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시노 겐이 숙맥 남자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보다 보면 '어휴 저 답답이 찌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갈수록 히라마사의 일 잘하고 올곧고 순수한 매력에 빠져 응원하게 되었고, 히라마사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려 노력하는 귀엽고 야무진 미쿠리를 보면서 절로 헤벌쭉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둘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바람에 광대가 춤을 춘다. 참고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말은 헝가리의 속담이라고 한다. 일드 특유의 국위선양, 장인 정신 같은 획일적인 교훈을 주려는 시도가 없으며, 자극적인 장면 연출도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대형견 같은 매력의 미쿠리와 소형견 같은 매력의 히라마사의 케미스트리가 있을 뿐. 그리고 매 화 끝날 때마다 드라마 주제가 '愛(코이)'가 흘러나오고 주인공들이 그 노래의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노래와 춤 또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니 주목해 볼 만하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 졸업하면 취업하고, 몇 년 돈 벌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 낳기. 뭔가 나이가 들수록 해내야 하는 미션이 정해져 있든 것처럼 느껴진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한 그 끝에는 결국 좋은 직장을 찾아 돈 많이 벌고 결혼하고 애 낳고 잘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그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 쉬고 있으면 뭔가 나만 뒤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한국 사회는 '평범한 삶' 이라든지 '인생의 성공'을 정의하는 방식이 획일화되어있다. 지치지만 뭔가를 계속 바쁘게 하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사람들. 엄마는 아이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을 다 쓰지 못한 채 아이를 시부모나 친정부모 혹은 베이비 시터에게 맡기고 급하게 직장에 복귀하고, 아빠는 제도로 있는 육아휴직은 남의 이야기 일 뿐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열심히 살아서 아이 낳았는데, 그러면 또 그 아이에게 훌륭하게 교육을 시켜야 하고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말 이 빡빡한 미션은 언제쯤 끝나나 싶다.
최근에는 육아의 단계까지 가기도 전에, 회사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바빠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집이 지방이라 홀로 서울살이를 하게 된 사람의 경우, 기존에 가족들과 공동 부담하던 생활의 영역을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하면서 어려움을 느낀다. 아침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출근하고 저녁에 복잡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밥은 먹어야지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 없으면 요리하기 귀찮으니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편의점 도시락을 사 온다. 밥 먹으면서 TV 보다 보면 어느새 밤 10시. 주중에 청소나 빨래를 할 시간은 없다.
가사 노동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돈을 버는 회사일은 중요하다 하면서 삶을 쾌적하게 만드는 청소나 빨래, 요리 같은 가사 노동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생각한다.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 주중에 너무 바빠서 집이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먹는 것도 부실해지고 집 환경도 지저분해지고 생활이 정리되지 않으니, 잠자리도 불편해지고 결국 출근해서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최근에는 '어른이면 청소나 빨래 정도는 직접 할 줄 알아야지' 하는 부모님 세대의 말이 무색하게도, 바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 편의 서비스들이 많이 생겼다. 가사 대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하기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이용해 보는 것도 내 삶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주는 방법일 수 있다.
A는 출근길에 옆집에 왠 커다란 짐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택배라기엔 박스 형태가 아니라 이상하다 싶어, 가까이 가보니 튼튼한 천으로 만들어진 옷장이었다. 옷장에는 브랜드 이름 같은 게 붙어있었다. 검색해보니 옷장 브랜드가 아니라 세탁 서비스 이름임을 알게 되었다. 앱으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이동식 옷장이 배달되고, 옷이나 수건, 이불, 러그 등 세탁이 필요한 것들을 옷장에 넣고 앱으로 세탁 신청을 하면 2일 내 깨끗해진 세탁물들이 배송되는 시스템이었다.
A는 주중에는 시간이 별로 없어 빨래를 주말에 몰아하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주 후반으로 갈수록 회사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난감하곤 했다. 집에 건조기가 없어서 습한 여름이나 해가 안 드는 밤에 빨래를 하는 경우,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것도 고민이었다. A의 자취방에 있는 작은 세탁기로는 이불 빨래는 할 수도 없었다. 퇴근한 저녁이면 동네 세탁소 찾아가기도 귀찮고 주말에는 세탁소가 쉬기도 해서 드라이클리닝 하라고 나와있는 외투나 패딩 종류는 제대로 세탁한 지도 오래된 상황이었다. 세탁 서비스를 집에서 신청하고 집으로 배송 온다니, 이 얼마나 편한 서비스인가. A도 큰 고민 없이 해당 세탁 서비스를 신청했다.
앱을 다운로드하고 서비스 신청을 한 다음 날 이동식 옷장이 배달되었다. 내 앱과 이동식 옷장이 블루투스로 연동되어, 앱 화면에서 오픈 버튼을 눌러야만 옷장 열쇠가 가동되는 방식이었다. 옷장은 현관문에 연결해 고정할 수 있는 로프가 제공되어서 누가 내 세탁물을 훔쳐갈 위험은 없어 보였다. 날이 쌀쌀해지고 있어 코트와 패딩 종류를 옷장에 넣고 앱으로 수거 신청을 했다. A가 자고 있는 사이 세탁물이 수거되었다고 안내하는 문자가 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A가 맡긴 옷이 사진과 함께 세탁 완료 문자가 왔고, 이틀 만에 깨끗해진 겉옷들을 받을 수 있었다. 코트에 달린 벨트나 패딩에 부착된 모자 같은 파트도 분리해서 깨끗이 세탁한 듯했다. 환절기에 기온이 갑자기 내려간 시점이라, 당장 내일 입을 겉옷이 필요했는데 깨끗한 코트를 입고 출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세탁물을 구분해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고 잘 꺼내 건조하는 노력을 비용만 지불하면 이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니, 그리고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외투나 이불 같은 큰 빨래까지 간단히 할 수 있다니 생활이 한결 쾌적해진 듯 해 A는 만족했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려 하지 말자. 도움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도움받고, 약간의 돈을 써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돈을 쓰는 게 낫다. 스트레스 가득한 회사 일을 해내고, 퇴근해 와서 집안일까지 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우리는 알고 있다. 특히 야근이 많은 직군이나 아이가 있는데 부부가 맞벌이하는 경우는 더 그렇다. 다행히 발전하는 기술만큼이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편의 서비스가 늘어나고 체험 기간을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많으니, 필요하다 싶은 서비스들은 직접 사용해보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