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May 06. 2022

우리 집의 따끈한 가지 튀김

 부엌에 서서 통통한 가지를 성둥성둥 썬다. 아직 익숙지 않은 칼질이라 삐뚤빼뚤하지만 목표는 두께가 0.5cm가 될 정도. 키친타월을 깔고 그 위에 썰어 둔 가지를 올려 물기를 뺀다. 그릇에 튀김가루와 부침가루, 물을 적당히 넣고 덩어리 지지 않게 잘 저어준 후 가지 조각들을 담가 둔다. 팬에 올리브유를 자작하게 두르고 불을 올려 열기가 생기면 얇게 튀김옷을 입힌 가지를 하나씩 튀겨낸다. 튀긴 가지의 기름기를 빼는 사이에 양조간장에 식초를 조금 타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양념장을 만든다. 나의 얼렁뚱땅 가지 튀김이다. 


 나에게는 동생이 있다. 나보다 8살 어린 여동생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지방의 부모님 품을 떠나 홀로 서울에 독립해 살고 있던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내가 대학생일 때 동생은 아직 초등학생이었으니, 내 기억 속 동생은 언제나 꼬맹이였다. 그런데 어느새 직장인이 된 나와 대학 새내기가 된 동생이 금요일이면 함께 치킨에 맥주를 마시게 되다니. 시간의 흐름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함께 살며 나름대로의 결속이 생겼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힘이 없어 보이는 날에는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나눠 먹는 정도의 의리가 있는 자매였다. 때로는 설거지 방식이나 빨래를 너는 것 같은 사소한 걸로 다투기도 했다. 그러나 동거하는 자매의 연이라는 것은 의외로 질기고 튼튼해서, 아침에 말다툼을 하고서도 저녁에는 함께 웃으며 밥을 먹었다.  


 시간이 흘러 동생은 대학 졸업반이 되었고, 나는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었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주말이면 영화를 보러 가거나 공원에 가서 예쁜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던 우리 자매에게도, 2020년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는 강적이었다. 주변 지인들과 만나는 일정을 확 줄이면서 인간관계의 부질없음을 느껴버린 나보다 더 타격을 입은 건 동생 쪽이었다. 동생은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뽑혀서 헝가리로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출국이 취소되었다. 몇 달간 열심히 준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의 동생은 실망감을 속으로 삭힐 뿐이었다. 그러나 많은 국내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면서 문과 전공의 동생의 취업전선이 새벽이 없는 밤 마냥 캄캄해졌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고생하면서 입맛을 잃고 야위어 가는 동생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뭐든지 많이 잘 먹으면 다 해결된다’는 엄마 말씀이 떠올라, 맛있는 요리를 해다 먹이기로 했다. 마침 회사는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었고, 우리 자매는 외부 접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외식을 자제하고 있었기에 한동안 집에서 정성 들여 밥을 지어먹자고 다짐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입이 짧았다. 편식이 심한 나를 닮은 건지 날음식이나 해산물 종류를 싫어했다. 그런 동생을 위해 고기와 채소라도 다양하게 먹이고 싶었다. 어느 날은 문득 가지가 먹고 싶어졌다. 초여름 시골 부모님 댁에 내려갈 때면 우리 텃밭에 주렁주렁 탐스럽게 달렸던 보랏빛 가지. 나는 그 가지를 대충 한 입 크기로 썰어다가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간장 양념장을 끼얹어 먹는 우리 엄마의 가지 요리를 좋아했다. 작열하는 더위에 내가 입맛을 잃어 고생했을 때도, 이 가지 반찬만은 맛있기도 하고 소화도 잘 돼서 여름 내 즐겨 먹었다. 여름이면 늘 떠오르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내 기운을 북돋워 주는 반찬. 하지만 동생은 가지가 싫다고 했다. 가지의 물컹거리는 식감도, 예쁘지 않은 모양새도 싫다는 거다. 묘하게 도전 정신이 생겼다. 가지를 맛있게 요리해서 동생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거부감 없이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예전에 친구들이랑 양꼬치 집에서 먹었던 가지 탕수는 채소 싫어하는 애들도 다들 좋아하던데, 그거랑 비슷한 맛이 나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6시, 근무 마감을 하고 부엌에 서서 통통통 칼질을 하고 있으니,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던 동생이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나를 들여다보았다. 가지를 썰고 있는 나를 보고 질색하면서도 ‘언니가 먹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하며 찬장에서 조미김을 꺼낸다. ‘나 계란 프라이도 하나 해주면 안 돼?’ 하고. 온몸으로 가지를 거부하는 공기를 뿜어내는 동생에게 기필코 이 가지 튀김을 먹이고 말리라 하는 묘한 승부욕이 생겼다.  


 현미밥에 가지 튀김, 감자볶음, 계란 프라이, 김. 휘리릭 차려낸 소박한 저녁 밥상에 둘이 나란히 앉았다. ‘가지를 튀겼네, 볶을 줄 알았더니’ 하며 입 안 가득 감자볶음을 씹고 있는 동생에게 ‘너도 한 입 먹어보든가’ 하며 슬며시 접시를 들이밀었다. 아직 뜨끈한 가지 튀김은 겉은 바삭, 속은 녹아내리는 듯 말랑했고 양념장에 찍으니 짭조름하니 꽤나 먹을 만했다. ‘그래? 그럼 튀긴 거니까’ 하며 동생도 젓가락을 들었고, 동생이 가지 튀김을 한입 베어 무는 아삭 하는 소리에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때? 어때? 하며 독촉하는 듯한 내 눈빛에 동생은 ‘음, 먹을만하네’ 하고 우물우물 식사를 이어 나갔다.  


 식사 때가 되면 어김없이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한다. 동네 채소가게에서 산 싱싱하고 두툼한 가지를 깨끗이 씻어 도마에 올렸다. 동생이 옆에 서서 훈수를 둔다


 “언니 조금만 더 얇게 썰어주면 안 돼?”

 “왜?”

 “얇게 썬 게 바삭바삭해서 더 맛있더라.” 


 녀석, 이제 가지 튀김에 취향까지 생겨버렸나. 나는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느새 균일한 두께로 얇게 가지를 썰어 내기 위해 집중했다. 가지는 색깔로 보나 모양새로 보나 수수하고 식감이 물컹거려 기분 나쁘다고 오해받기 쉽지만, 알고 보면 건강에 좋은 영양소를 고루 갖춘 데다 조리법에 따라 매력 있는 식감으로 변한다. 가지가 결국은 동생의 사랑을 받게 된 것처럼, 단단하게 내공을 쌓고 있는 내 동생이 언젠가 나아가고 싶었던 무대에서 맘껏 도전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오늘도 가지를 튀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셜록 홈스와 함께한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