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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4. 2017

뿌꾸, 중성화 수술하다!

암컷 중형견의 중성화 수술 이야기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꽤나 고민했다. 강아지를 비롯한 반려 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그 주제. 바로 우리 강아지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다.


 강아지도 강아지 나름대로의 가족계획을 세우고 있을지 모르나, 새끼를 가지게 할 생각이 없다면 암컷이든 수컷이든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는 것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암컷 강아지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궁근종이나 유선종양 같은 질병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며, 발정이나 생리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에 강아지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한다.


 시골 특성상 길에 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은 데다, 우리 뿌꾸는 마당 생활을 한다. 뿌꾸가 임신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집은 부모님이 아직 두 분 다 일하고 계셔서 새로운 강아지들이 태어날 경우 제대로 보살피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은근히 맘 약한 우리 가족들의 특성상 강아지들을 어딘가로 입양을 보내더라도, 떠나서 잘 사는지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고 걱정할 것이 분명하고 뿌꾸가 새끼들을 보내면 너무 슬퍼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깊이 고민한 끝에, 수술을 잘한다고 알려진 24시간 운영하는 큰 동물 병원에서 뿌꾸의 중성화 수술 날짜를 잡았다.


 상담전화를 걸었을 때 "아기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하던 상담원의 말에 금방 신뢰가 갔다. 무엇보다 "아기"라고 부르며 뿌꾸가 우리 가족의 일원임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정하며 세심히 배려하는 듯한 음성이었기에. 뿌꾸의 건강 문제와 향후 삶의 방향을 생각했을 때 최선을 다한 결정이라는 이성적 판단은 들지만, 왠지 모르게 뿌꾸 본인의 의사 없이 강아지를 품을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계속 뜻 모를 죄책감이 남겨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언니, 지붕에 아빠가 간식 올려놨대, 빨리 내려줘

 암컷 강아지의 중성화 수술은 가급적 초경을 하기 전에 빨리 할수록 좋다고 하는데, 우리 뿌꾸는 여러 사정 상 초경하고 한 달 정도 뒤에 수술을 하게 되었다. 자, 가족들 간의 수술 결정은 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덩치 큰 아기를 병원으로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거였다.

좀만 더 크면 혼자 간식 꺼내 먹겠는데?

 뿌꾸가 폭풍성장을 한 터라 집에 있는 케이지는 이미 인형의 집으로 전락한 지 오래. 딱 봐도 케이지가 작아 보였지만 위 뚜껑을 열고 뿌꾸를 넣어주면서, '자, 앉아봐, 뿌꾸야!' 하니 '딱 봐도 몸의 절반도 겨우 구겨 들어가는데 앉으라고?' 하는 듯 우리를 쳐다보던 뿌꾸의 어이없는 표정에 케이지 이동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가뜩이나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뿌꾸 걱정에 엄마 혼자서 뿌꾸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은 무리였다.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안 나고. 답은 내가 5월 초 연휴를 이용해 집에 내려가서 엄마와 함께 뿌꾸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 차 뒷좌석에 나와 뿌꾸가 같이 타고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수술 전날 밤부터 금식을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신신당부한 덕에 뿌꾸는 저녁 이후로 물만 먹는 신세. 아침도 못 먹고 어리둥절하는 뿌꾸를 조심스레 안아 올려 차 뒷좌석에 태우니, 이 녀석 순순히 올라탄다. 아무래도 전날 적응시키느라고 간식을 들고 차 뒷좌석으로 유인하고, 몇십 분을 차 안에서 같이 놀아준 것이 차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차량 이동이 낯선 뿌꾸

 뿌꾸가 멀미하거나, 긴장해서 실수할 것에 대비해 차 안에는 비닐도 깔아 두었는데, 병원까지 가는 내내 뿌꾸는 조용했다. 이 정도 성장해서 차 타고 멀리 이동하는 것이 처음이라 어리둥절해서 그랬는지, 오늘따라 자기를 처량히 바라보며 미안함에 쉴 새 없이 머리를 쓰다듬는 언니의 손길에 얌전히 있어주기로 마음먹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사히 병원에 도착, 주차해놓고 뿌꾸를 앞세워 걸어가니 여기가 어딘지 알 턱이 없는 뿌꾸는 그저 신나서 나아간다. 흑흑, 가여운 녀석.

이보시오, 언니, 날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오?


 예약 시간에 맞춰서 동물병원 입구에 도착해서 접수하고 담당 의사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우리가 예약한 의사에게 진료받고 있는 하얗고 순하게 생긴 비숑프리제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보다. 척추 뼈 모형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듯한 의사와 그 말을 듣고 있는 보호자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남 일이 아닌 것 같아 계속 그들을 응시하며 뿌꾸만 쓰다듬고 있는데, 이 곳이 병원인지 알 리가 없는 뿌꾸는 그저 철없이 병원 여기저기를 신나게 킁킁대고 있었다.

그저 신난 뿌꾸
그저 해맑은 뿌꾸

 마침내 하얀 비숑이의 보호자가 비숑을 안고 나오는데, 아주머니 눈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따님으로 보이는 분도 눈물을 훔치느라 정신이 없다. 바로 앞에 생판 남들이 서있는데도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거 보니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강아지가 많이 아픈 것일까. 조금 진정되어 보였을 때, 무슨 일이 있는지 말을 걸었다. 하얀 비숑이의 이름은 대복이. 어느 날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기에 너무 놀라 애를 데리고 병원에 왔더니, 유전적으로 척추에 문제가 생긴 경우라고 했단다. 수술도 전문 mri 장비가 갖춰진 큰 병원에서 가능할 정도라, 연계된 대학병원으로 수술을 잡았다고 했다.


 얼마나 애지중지 이쁘게 키웠을지. 첫눈에 보기에도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는 이쁜 강아지인데. 대복이가 어떤 자세로 있어도 고통이 느껴져서 낑낑거리고 있는 모습에 보호자들은 그저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는 마음 아픈 상황. 주책없이 나도 눈물이 나는 걸, 애꿎은 뿌꾸만 어루만졌다. 우리 애도 우리 애지만, 대복이도 수술이 잘 되어서 고통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한다.


 곧 뿌꾸의 진료 차례가 돌아오고.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뿌꾸를 데리고 상담을 받았다. 외견상 수술에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피검사 등을 통해 수술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하고 수액을 놓고 수술 준비에 들어간다고 했다. '체중이 얼마 정도 나가나요?' 하고 물어보시는데, 한 번도 뿌꾸의 체중을 재본적이 없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그럼 여기서 한 번 재볼까요?' 하고 의사 선생님이 뿌꾸를 안고 체중을 재셨다. 으쌰, 하는 소리와 함께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아, 14 키로구나. 우리 뿌꾸, 14킬로 나가는구나. 어쩐지, 묵직하다 했어. 뿌꾸가 걱정돼 죽겠는 와중에도, 이 무게를 들으니 '아이코 어쩐지!'하고 피식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뿌꾸는 좀처럼 짖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눈만 멀뚱히 뜬 채 간호사 분께 안겨 갔다. 검사를 위해 목에 깔때기를 씌우는데 그 모습을 보니 또 주책없이 눈물이 막 났다. 더 건강해지려고 수술하는 건데, 수술이라니 일단 걱정이 되는 건 언니로서 어쩔 수 없는 감정인가 보다. 수술 전 검사하고, 수액 맞고, 수술하고, 마취 깨고 회복시간까지 고려하면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보호자가 앉아서 지켜볼 수는 없는 상황이니 나가 있다가 6시간 후쯤 전화드리면 그때 데리러 오라는 하셨다. 눈물 콧물을 닦고 나오니 점심 무렵인데도 배가 별로 안고팠다. 그저 전화가 올 엄마 핸드폰만 계속 응시할 뿐. 수술이 잘 못 되는 최악의 상황이 막 머릿속에 지나가고, 걱정에 난생처음 손톱까지 물어뜯게 되는 상황.(나는 일이 닥치면 최악의 상황을 먼저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사람이면 말이라도 하지, 말 못 하는 우리 뿌꾸 얼마나 불쌍해하며 우울의 저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간 기분이었다.


 6시간 가까이 시간이 지나갔을 때, 병원으로 먼저 전화를 했다. '저기, 우리 뿌꾸 수술은 끝났나요? 얘는 깨어났나요?' 걱정이 잔뜩 붙은 나의 목소리에, 친절한 상담 데스크 언니의 따스한 햇살 같은 답변. '네, 뿌꾸 수술 잘 끝났고요, 곧 마취에서도 완전히 깨어날 거예요. 20분쯤 뒤 도착해주시면 되겠네요.'


어이쿠, 겁먹은 뿌꾸
그래도 엄마랑 언니 오니 좋다고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 회복실에서 나온 뿌꾸는 뭐랄까, 우주견 같았다. 덩치가 크니까 깔때기도 거대했다. 의사 선생님이 뿌꾸 수술 잘 끝났다며 약 처방해 줄 테니 매일 하루 두 번씩 먹이고 10일 뒤에 실밥 풀러 방문하면 된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다고 손을 붙잡으며 굽신굽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너무 극성 견주 같고 모양 빠지는 것 같아 참았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소리에 나도 긴장이 탁 풀리면서 뿌꾸를 보며 슬슬 웃을 줄도 알게 되었다. 뿌꾸가 눈을 꿈뻑꿈뻑하면서 마취에 헤롱대는 모습이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이 간을 하지 않은 소고기나 닭고기를 먹이면 체력이 붙는데 효과가 있다고 말씀하신 덕에 엄마는 그 병원의 비싼 소고기 간식을 몇 개나 사셨다. 엄마는 수술이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나에게 뿌꾸가 더 건강해지려고 하는 중성화 수술에 부산 떨 거 없다며 내 앞에서는 쿨한 척하셨지만, 그래도 우리 막내가 걱정되는 마음은 매한가지였나 보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신호만 걸렸다 하면 운전석에서 뒤돌아 보며 뿌꾸를 쓰다듬고 우쭈쭈 하시는 걸 말리느라 어찌나 힘들었던지. '엄마 우리 안전하게 집에 가려면 운전하실 때 앞을 보셔야 할 것 같아요!'하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정신없는 뿌꾸

 집으로 돌아온 뿌꾸는 다행히 크게 아파 보이지도, 졸려 보이지도 않았고, 난생처음 써보는 깔때기가 불편한지 계속 깔때기 벗겨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뿌꾸야, 하지만 깔때기 없으면 네가 수술부위를 자꾸 핥아서 덧나게 될 거야, 깔때기는 쓰고 있으렴!

  아침저녁으로 약 챙겨 먹이고 수술부위 소독하고, 적당량 채울 정도로 운동하고. 어느덧 깔때기 쓰는 나날들에 뿌꾸도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모쪼록 이 중성화 수술이 뿌꾸 삶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뿌꾸야, 고생했어!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깔때기 쓰고, 링거 맞았던 자리는 붕대를 칭칭 감았다
깔때기에 적응했는지, 저러고 쉬고 있다
... 깔때기에 너무 적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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