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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30. 2017

시골 개 뿌꾸와의 만남

막무가내 멍멍이 뿌꾸의 성장일지

"우리 시골에 집 지어서 살 거다. 내년 5월쯤 다 지어서 이사하려고."

"?!!!"

 

 2015년 가을, 김해의 아파트에 사시는 부모님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셨다. 전부터 은퇴할 즈음되면 아파트를 떠나 시골에서 집 짓고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해오시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빨리 다가올 줄이야! 땅 사고 아파트 팔고 집 짓는 타이밍을 요래조래 잡다 보니, 부모님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래 봤자 평소 살던 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더 들어간 곳이었지만.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안되고 스타벅스도 없으며, 옛날 드라마에서나 보던 이장님이 존재하시는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하는 데는 정말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사 간다 하는 소리를 듣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우리 부모님 집은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되었다. 그토록 갖고 싶어 하셨던 마당이 있는 주택. 텃밭에서는 배추가 자라고 마당에는 사과나무를 심은, 그런 잔디 마당이 있는 주택. 처음 시골 부모님의 댁에 내려갔을 땐 적응이 되지 않아, 잔디가 채 입기도 전인 흙마당을 보고 멍하니 서있었다.


"엄마엄마, 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게 딱 하나 있는데, 뭔 줄 알아?"

"뭔데?"

".... 강아지"

"뭐야, 강아지 같은 소리."

"아냐, 엄마, 원래 이런 마당 있는 집에는 강아지 한두 마리 정도 뛰어놀아야 하는 거야. 엄마 아빠만 있으면 적적하잖아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얼른 씻고 과일이나 먹어."


 부모님이 시골로 집을 옮기시면 서울에서 집으로 내려가는 교통편이 번거로워지고 그 시골에서 시내로 나오기도 힘들어지며(나는 면허가 없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아 져서 개인적으로 퍽 아쉬웠지만. 또 다른 마음으로 반가웠던 것은, 마당이 있는 집이니 강아지를 키우면 강아지랑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정말 좋아했고 부모님이 아파트에 사셨을 때도 쫑이라는 이름의 몰티즈를 한 마리 키웠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나는 아직도 쫑이와 충분히 놀아주고 산책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강아지를 다음에 또 만날 때는 반드시 맘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주리라 생각했던 터였다. 부모님도 동물을 적잖이 귀여워하시니, 나로서는 부모님의 시골 이사가 최적의 기회가 아닐까 싶었다. 나름 끈질기게 설득하다 보니 엄마 아빠도 강아지 한 마리를 들이기로 마음을 정하신 것 같았다.


"강아지 사진 보냈다, 봐봐라"

"응???"


 어느 날, 엄마 지인 중 한 분이 시골 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한 마리 주겠다 하셨단다. 엄마가 조그만 누렁이 사진을 보내오셨다. 동생과 나는 엄마 아빠가 강아지를 데려오시면 이름을 뭘로 할지 정말 오래 고민해왔다. 심지어 키울지 말지 결정이 안 났을 때부터.


 산들이(내 브런치 작가명은 사실 우리 강아지 이름으로 생각했던 거다), 체리, 초롱이, 쁘띠 등등 여러 앙증맞은 이름들을 생각해 리스트를 만들어 놨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노견과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편을 보고, 동생과 나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무조건 우리 강아지 오래 사는 이름으로 지어야겠다고 합의를 봤다. 뭘로 할까, 촌스러운 이름이나 먹을 거 이름으로 하면 오래 산다는데. 감자? 당근? 근데 먹을 거 이름으로 하면, 사람들이 그걸 먹는다고(예를 들어, 감자 삶아 먹는다라든지) 할 때마다 너무 슬퍼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정한 이름은, 뿌꾸. 뿌꾸. 뿌꾸. 우리 이쁜 막내 동생 뿌꾸로 하기로 했다.

 

우리 뿌꾸가 집에 온 첫날, 급히 오느라 흰 양말을 한 짝밖에 못 신었어요
호기심 가득, 귀를 쫑긋

 우리 뿌꾸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우리 집으로 왔다. 어린 나이에 엄마, 형제들과 헤어져서 얼마나 슬펐을까. 처음에 우리 집에 왔을 때 애가 너무나 얌전해서, 엄마 아빠는 뿌꾸가 겁이 엄청 많구나 싶으셨단다. 마당에서 집 지키라고 데려온 애인데, 짖지도 않고 그저 멀뚱멀뚱. 그래도 하루 이틀 지나 곧장 적응해서 엄마 아빠가 마당을 걸어 다니면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꼴이 애교 넘치고 귀여웠다. 안타깝게도 우리 뿌꾸의 이 꼬마 강아지 시절에 나는 집에 내려갈 시간이 없어서, 엄마 아빠가 보내주시는 사진과 동영상으로만 뿌꾸를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온 날은 박스에서 지낸 슬픈 뿌꾸
난생처음 목욕하고 심기가 불편한 뿌꾸

 귀찮게 무슨 강아지를 키우냐며 처음에 핀잔을 주셨던 부모님은 서로 뿌꾸 밥그릇을 사 오셔서 뿌꾸는 큰 철제 밥그릇이 두 개나 있는, 동네에서 제일 부유한 강아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우리 뿌꾸는 잔디밭에서 맘껏 뛰놀 수 있다는 것. 아빠가 마당에서 일을 하실 때면 뿌꾸가 옆에서 어물쩡 거리면서 아빠를 따라다닌다.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종종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뿌꾸 사진과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얼른 뿌꾸를 보러 가고 싶었다. 박스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던 뿌꾸에게, 아빠가 직접 집을 만들어 선물했고, 뿌꾸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손수 주인이 지은, 창문 딸린 넓은 집을 선물 받은 부유한 개가 되었다.


요 조그만 게 신나서 뛰어다닌다
뛴다, 폴짝!
헤헤, 새 집이다!

 부모님은 뿌꾸 사진을 자주 보내주셨고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우리 뿌꾸는 진돗개에 정체모를 다른 견종의 피가 섞인 듯했는데, 유독 빨리 컸다. 처음 부모님 댁에 온 날 사진을 보면 "언니 언니 멍멍!" 할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집에 내려갈 날짜가 다가올수록 애가 키도 크고 얼굴도 길쭉해지면 "언니, 오셨어요. 기차 타고 오느라 고생하셨죠."라고 말할 법한 비주얼로 변해가는 거다. 물론 우리 뿌꾸 건강하게 크는 건 좋지만, 좀 천천히 커주면 안 되겠니.

보들보들한 뿌꾸의 뒤통수
언니 이거 뭐야?

  직접 만난 뿌꾸는 생각보다 순하고, 보드랍고, 식탐이 많은 강아지였다. 낯선 우리를 보아도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엔 우릴 반긴다 느껴서 정말 기뻤지만, 그냥 그때의 어린 뿌꾸는 사람이라면 다 좋아하는 애였던 것 같다. 날이 점점 추워지던 터라, 뿌꾸 입히려고 미디엄 사이즈와 라지 사이즈 옷을 각각 하나씩 챙겨갔는데 미디엄 사이즈는 작아서 못 입혔다는 건 비밀. 하네스를 사기 위해 애견용품 가게에 갔는데 우리 뿌꾸 동영상을 보더니 점원이 '아, 라지 사이즈 몸줄로 하셔야겠는데요, 얘는...' 하더라는 것도 비밀. 그래, 우리 뿌꾸 무럭무럭 쑥쑥 크면 좋지! 하지만 이때도 태어난 지 3개월 겨우 지난 참이었다.

 갓 아기 낳은 엄마들은 몸이 힘들고 피곤해도 아이가 곤히 잠든 모습을 보면 너무나 이뻐서. 조금만 천천히 크거라-하는 마음이 생긴다던데. 우리 뿌꾸를 본 내 마음도 그랬다. 조금만 천천히 커주렴-

그러나 어느 날 엄마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고야 마는데.

아, 3개월 안된 강아지가 40대 중년 남성의 눈빛을 하고 있네요

"응? 엄마, 얘 우리 뿌꾸 맞아?? 다른 집 얘랑 바뀐 거 아니야?"

"너네 닮아 키도 크고 쑥쑥 잘 큰다야"

"............."


 아. 내 동생이라 이렇게 폭풍 성장하는 것인가. 다음에 내려가 직접 봤을 때는 다행히도 이 정도 노안은 아니었지만. 철퍼덕하고 앉아있는 뿌꾸의 사진에서 나는 우리 회사에 애 둘 있는 남자 과장님이 회의 끝나고 지쳐서 담배 피울 때의 눈빛을 봤다고. 시골에서 맑은 공기 맡으며 크는 애가 무슨 그런 근심 걱정이 많은 얼굴이었을까, 성견이 되어 웃는 상이 된 지금도 그때의 일시적 노안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우리 뿌꾸는 비 온 후의 새싹처럼 잘 자랐고, 커 가면서 자연스럽게 사고뭉치가 되어갔다. 우리들에게 눈을 희번뜩하는 건 기본, 틈만 나면 두다다다 뜀박질을 구사했다. 잔디 물어뜯고, 아무 데나 실례하고. 아빠가 심어놓은 나무를 다 뜯어먹어서 흔적도 없이 만든 적도 있다. 그러면서 은근 겁이 많아서 집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한다. 이가 간지러운지, 장난감이며 옷이며 담요도 다 물어뜯어놔서 아빠한테 혼도 나고. 그래도 엄마 아빠가 출근하시는 길에 목줄이 닿는 한까지 따라와서 낑낑거리고, 퇴근해서 들어오시는 차 소리에 귀 쫑긋하며 꼬리를 흔드는 뿌꾸의 모습에 엄마 아빠도 내심 흐뭇하신 눈치였다.

아 빨리 공 던지라고!!!
우리 가족 아닌 사람이 놀러 오면 순진무구한척하는 눈빛을 날린다, 눈치 백 단이다
제법 어른 강아지 태가 나기 시작했던 때

 뿌꾸의 덩치가 점점 더 커지고 에너지도 넘치게 되면서, 가끔은 스스로도 자기 힘을 주체 못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반갑다고 달려와서 다짜고짜 몸을 부딪히는데 힘이 너무 좋아서 내 몸이 저절로 밀렸다. 우리 자매가 요령이 없을 때는 뿌꾸의 반가움에 몸서리치는 인사를 받아내느라 툭하면 마당에서 넘어지곤 했다. 얘는 우리와 부딪혀도 아프지 않은 지 계속 예뻐해 달라며 혀를 날름거리며 달려드는데 가끔은 무서울 지경이었다. 눈을 희번뜩 뒤집고 마당에 자기 냄새를 묻히겠다며 바둥바둥거릴 때면 빨리 광견병 주사를 맞혀야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 근데 생각해 보면 우리 뿌꾸는 아직 6개월도 안 된 아기였으니까,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구는 게 당연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메롱-

 하루가 다르게 다리가 길어지고 머리가 커지고 근육질 몸매가 되어가는 우리 뿌꾸를 보니, 나중에는 정말 송아지만 해지지 않을까 싶다. 어느 날은 엄마가 뿌꾸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옷을 안 입고 있길래 날도 추운데 왜 뿌꾸가 옷을 안 입고 있냐 했더니, 살쪄서 옷이 터졌단다. 에이 설마 했는데 설 연휴에 집에 내려가서 보니 우리 뿌꾸 몸이 토실토실, 꼬리에도 살이 쪘다. 엄마 아빠가 우리 뿌꾸 엄청 잘 먹이나 보다. 뿐만 아니다, 이제 정말 집 지키는 개 태가 난다. 자기가 늑대라도 되는 양 위엄 있는 척 마당에 우뚝 서 주변을 정찰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능청스러움도 점점 늘어간다. 얼마 전에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오시는 길에, 뿌꾸가 늘 그렇듯 집 앞에 얌전히 앉아 꼬리를 흔들고 있어서 머리 한번 쓰다듬어 준 뒤 집으로 들어오시는데 마당이 엉망이라 이상하다 싶으셨단다. 알고 보니 뿌꾸가 목줄을 풀고서 낮에 내내 마당에서 신나게 놀다가, 아빠가 들어오시니까 혼날까 봐 집 앞에서 목줄 맨 척하고 있었던 것. 아빠는 뿌꾸의 능청스러움에 어이가 없으셨다고. 아무튼 우리 막내 덕분에 우리 집에 는 더 활기가 돌게 되었다. 내가 제일 만만한 지 항상 거칠게 들이대는데 때론 그게 버겁기는 하지만 말이다.

포켓몬 고 돌풍에 함께하며, 이상해 씨를 잡고(?) 있는 뿌꾸
헤헤, 뿌꾸 살쪄서 옷이 안 맞는다


 우리는 뿌꾸 생일을 9월 9일로 정했다. 2016년 9월 9일. 9월 초 태생으로 추정은 되는데,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생일 파티는 해주고 싶고. 뿌꾸- 이름이 왠지 생일이 9월 9일일 것 같아서, 우리 가족끼리 정한 거지만 뿌꾸도 맘에 들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덩치는 더 커지고 힘도 더 세지겠지, 언니를 닮았다면 고집도 엄청 셀 거고.

그래도 좋으니, 우리 이쁜 뿌꾸,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 (나이가 들면 조금은 얌전해지겠지, 그렇지, 뿌꾸야?)

쭉쭉이 하는 뿌꾸, 목살이 접혀..... 그래도 귀엽다 우리 뿌꾸


PS. 우리 뿌꾸는 암컷이다.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남자애라고 해서,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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