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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an 14. 2018

중형견의 산책 이야기

골든 뿌꾸의 시골 산책

 무술년 황금 개의해라는데, 우리 뿌꾸야말로 금빛 털을 가진 강아지니까 2018년은 뿌꾸의 해가 아닌가 싶다. 우리 뿌꾸는 진도 믹스니까 용맹함, 충성심 같은 진돗개와 비슷한 습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뿌꾸와 살아보니 그런 습성 또한 개마다 다 다른 듯싶다. 오늘은 뿌꾸의 산책과 그녀의 취미생활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뿌꾸는 가족들이 마당에 나올 때 마당에서 뛰어놀고, 저녁에는 동네 산책을 다닌다. 겁이 많아서 처음에 집 밖 산책을 나갈 때는 안 나간다고 버티는 통에 어르고 달래서 산책견의 세계에 입문했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이후에는 산책을 즐기는 개가 되기는 했지만, 낯선 개를 보면 무서워서 내 뒤에 숨는다. 형제 없이 혼자 큰 터라 사회성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래도 컸다고 산책하다 몇 번 마주쳐 안면이 있는 개들한테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뿌꾸 주니어 같은 이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낸다

 특히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보더콜리 ‘봄이’는 뿌꾸보다 언니라서 우리 뿌꾸가 지나다닐 때마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해주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봄이가 출산을 해서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예민해져 뿌꾸를 보고 몇 번 짖었는데, 뿌꾸는 그게 또 마음의 상처로 남았는지 그 이후로 봄이 집 앞을 지날 때면 봄이 눈치를 슬슬 본다. 요즘 봄이와 뿌꾸를 보면 싸우고 나서 제대로 화해하지 못해 만나면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꼬마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뒷집 깜장 강아지, 엄청 활발한 친구라 뿌꾸가 부담스러워한다
봄이 언니 왜 이제 나한테 화내..? 나 안 반가워? ㅜㅜ

 동네만 돌아다니니 뿌꾸의 세계관이 너무 좁아지는 것 같아서 큰 맘먹고 온 가족이 뿌꾸를 데리고 집 근처 생태습지 쪽으로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소보다 먼 길이니까 빨간 하네스를 채우고, 물과 간식, 배변봉투까지 모두 챙기고 출발!


 평소 가던 길과 다른 길로 가는 걸 보고 뿌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또 신이 나서 날뛰기 시작한다. 정말이지 15kg이 넘는 이 강아지가 뛰어다니면, 차나 다른 사람에게 돌진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네스를 쥔 손에 불이 난다. 그래도 어떻게든 아직 내 선에서 통제가 되는데, 뿌꾸가 5kg만 더 나갔으면 나는 아마도 완전히 주도권을 상실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이 함께 지나다니는 산책길에서 주인이 강아지를 잘 통제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요새 뉴스로도 종종 나오는 강아지가 사람을 공격하는 사건은 전적으로 주인에게 책임이 있다.

신나는 산책이다 산책!

 날이 추워서 그런지 습지 공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원하게 쭉 뻗은 길을 걷고 있자니 나도 뿌꾸도 오랜만에 운동다운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걷다가 점점 속도를 높여 신나게 내달리기를 반복하니 오랜만에 땀이 났다. 공원 근처에는 기찻길이 있었는데, 그 길로 ktx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겁 많은 뿌꾸는 그 소리에 또 멈칫거렸다. ‘뿌꾸야, 이건 그냥 기차소리다, 저기 기차 오는 거 보이지? 우리는 가던 길 가자’하고 겨우 달래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나무길 싫다고!!!!

 콘크리트 길이 끝나고 나무 바닥으로 된 길이 나왔다. 제법 공원 분위기가 나는 듯해 잘됐구나 싶었는데, 뿌꾸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요지부동이다. '뿌꾸 씨, 왜 그러세요. 빨리 갑시다’하고 볼을 쓰담 쓰담해줘도 굳건히 버티고 앉아있다. 뭐지, 다리 아픈가, 아직 16개월밖에 안된 어린이가? 대충 뿌꾸 눈치를 보니 낯선 나무길이 무서워서 이 위를 안 걸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무슨 개가 길 소재가 맘에 안 든다고 안 걸으려고 하는 건지. 온 가족이 어이없어하는 와중에, 역시나 뿌꾸는 나무길이 싫은 거였는지 그 옆 흙길로 슬그머니 빠져버린다. 여기서부턴 나무길로만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흙길로 가면 아니되옵니다, 뿌꾸 어르신’하고 뿌꾸를 들어 올려 겨우 나무길로 올려놓았다. 그러니까 눈치를 보더니 우리 가족들이 눈을 돌리는 사이에 다시 흙길로 후다닥 내려와 버린다.

어떻게든 나무길로 올리려는 자와 흙길에서 버티는 자

 잔디나 흙길, 아스팔트 길만 걷다가 나무길을 보니 무서운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뿌꾸에게 그냥 빨리 뛰어서 지나가버리자고 신호를 보내니, 뿌꾸도 차라리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는지 같이 헥헥거리며 뛰어간다. 겨우 나무길이 끝난 지점에서 앉아 쉬고, 다시 걸음을 옮겼는데 이번에는 꽤 높은 나무 계단이 나온다. 아.... 계단.... 뿌꾸를 돌아보니 뿌꾸의 표정이 이번에는 아주 강경하다. ‘나는 저 계단 못 가겠다, 꿈도 꾸지 마라!’.


 엄마 아빠는 간식으로 어떻게든 뿌꾸가 계단을 밟게 하려고 하셨지만, 뿌꾸는 머리만 쭉 뻗어 혀를 날름거릴 뿐 저 무거운 엉덩이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그럼 방법이 없지, 안고 내려가는 수밖에 하며 으랏차 하고 뿌꾸를 안고서 계단을 내려왔다. 엄마 아빠는 물론 주위 사람들이 ‘어머 저 강아지 좀 봐, 계단도 혼자 못 걷는 겁쟁이야!’ 하는 듯해 뒤통수가 뜨끈뜨끈했지만, 뿌꾸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편안히 안겨 있는 꼴은 또 정말 웃겼다. 이쯤 되니 이게 뿌꾸를 위한 산책인지, 뿌꾸의 인간 훈련인지 콘셉트가 모호해진다.

결국 이렇게 모셔 드려야 했다

 그렇게 체면을 구기고 아스팔트 길로 접어드니 뿌꾸가 언제 내가 겁쟁이였냐는 듯 위풍당당하게 뛰어다녔다. 그러다 수풀을 응시하더니 갑자기 수풀 쪽으로 후다닥 간다. 어어, 왜 그래, 뿌꾸야 하며 수풀에 뭐가 있나 싶어 봤더니, 조그만 참새 떼가 뿌꾸 발걸음에 놀라서 날아간다. 우리 집 겁쟁이 개는 약자 앞에서만 강하다. 뻔뻔하게 앉아있는 뿌꾸와 그런 뿌꾸를 나무라는 나의 대치 상황에 엄마 아빠는 포복절도. ‘어때 나 용감하지’ 하고 나를 쳐다보는 뿌꾸의 표정에 정말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것도 재롱인가 싶었다. 지금까지 ‘흐에엑 나무길 무서워!! 계단 무서워!!! 나 좀 안고 가라!!’했으면서. 이 귀여운 말썽쟁이야. 새로운 곳으로 산책 좀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아주 도전적인 산책길이었다.

그래도 산책이라 (콘크리트 길 위에서는) 기분 좋단다


 산책을 갈 때면 가끔 챙겨가는 뿌꾸가 좋아하는 장난감이 몇 개 있는데 그중 제일은 닭 인형이다. 한쪽에는 테니스공이 달리고 다른 한쪽은 밧줄 매듭이 달린 터그 놀이 장난감도 있는데, 이걸로 뿌꾸랑 줄다리기를 하고 놀 때면 애가 너무 눈을 까뒤집고 흰자가 많이 보여서 솔직히 좀 무섭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터그 놀이는 하지 않는다.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서 누를 때마다 꾸에엑 하는 소리가 나는 닭 장난감은 뿌꾸 어린 시절에는 뿌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지고 놀라고 줬더니, 그 닭이 무서워서 집 밖을 못 나오곤 했다.

어머 언니, 저거 뭐야 무서워

 그런데 이제는 닭에 원수 졌는지 맨날 닭만 물어뜯고 집어던지며 집착 증세를 보인다. 급기야 한 마리를 부숴버려서 새 닭을 공수해 왔다. 사람이 아이 시절에 무서워하던걸 어른되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은 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빠가 농담 삼아 집에 닭을 몇 마리 키워볼까 하셨는데, 지금 우리 뿌꾸 기세를 보아하니 닭의 안전을 보장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아 포기했다.

닭잡기
닭이랑 노는 게 재밌다고
언니 내 닭 어서 돌려줘
닭 때리기
언니 닭 좀 주워줘
닭이 추울까 봐 담요 덮어줬다고

 부모님이 계신 집은 남쪽이라 좀처럼 눈 내리는 것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김해에도 눈이 펑펑 내려, 뿌꾸는 견생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눈을 보게 되었다. 아빠가 동영상을 하나 보내셨는데 거기는 소복소복 마당에 눈이 쌓이는 와중에, 웬 미사일 같은 애가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고요 속의 정신없음이란. 강아지들이 눈 오면 그렇게 폴짝거리며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게 발이 시려서 그런 건지, 하늘에서 조그만 솜사탕 같은 게 내려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눈이 예쁘게도 쌓였다
호에 이게 뭐지?
먹는 건가?
신기하다고
앞발에 묻은 거 먹어보고
오예 신나개

 뿌꾸는 평소보다 1.5배는 되는 에너지로 마당을 신나게 헤집고 있었다. 덩치가 크니 그 들썩거림도 배가 된다. 마당 여기저기 찍힌 뿌꾸의 발자국을 보아하니 애가 얼마나 지금 신났는지 짐작이 가서 슬쩍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날 하루 종일 그 동영상만 100번은 넘게 돌려본 것 같다. 정말이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우리 막내라니깐 하고.   

이쁜 우리 뿌꾸 (하트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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