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바르셀로나와 롯데 자이언츠 사이 그 어디쯤-
내가 본격적으로 해외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건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온 국민이 열광해 말 그대로 기적을 일구어 낸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불씨 한 번 당기고 , 대한의 아들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 입단해 심장 두 개 달고 뛴다며 찬사를 들을 때 제대로 불길이 확- 일었더랬다.
그리고 야구는 뭐, 그냥 내가 부산에서 태어났다고만 해두자. 반쯤은 농이 섞인 말이지만, 브라질애들은 아, 태어났으니 축구해야겠다고 한다지. 비슷하다 나도. 아, 부산에서 태어났으니 롯데 팬 해야지. 나는 날 때부터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거지, 뭐. (어머니 저를 왜 서울 곰돌이 밭에서 낳아주지 않으셨나요 엉엉)
맨유로 영국 축구를 알게 되다 보니 EPL을 주로 보곤 했는데, EPL 보다 보니 챔스도 보게 되고, 이 지구 축구 선진국들의 재미있는 경기들이 즐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등. 그중 내 마음을 샤샥 가져간 팀은 당시 티키타카라는 조직력 쩔어주는 전술을 구사하던 스페인 라 리가의 FC 바르셀로나(애칭 바르사).
나는 본래 파워풀한 치고 달리기보다 개인기와 숏패스 위주에 조직력이 겸비된 아기자기한(?) 축구 스타일을 선호한다. (야구도 홈런 빵빵 날리는 거포형보다 똑딱똑딱 안타 치며 출루하는 선수를 좋아함). 그 편이 더 스릴 있다.
나는 축구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선수들 발재간을 보면 너무나 신기한데, 바르사는 그런 신기를 부리는 선수들의 집합소 같았다. 지금은 선수들 간 세대교체가 있어서 오래 호흡을 맞춘 선수들 사이에서만 발현되는 끈끈함이 예전만 못하고, 리그 내에서 티키타카 전술 자체가 많이 읽혀서 상대팀에서도 대비를 잘하기도 하지만. 나는 알고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이 티키타카 전술을 아주 아름답게 구사하는 바르사에 마음을 뺏겼다.
어느 쪼꼬만 애가 두다다다 뛴다. 넘어질 듯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방향 전환을 하고, 수비수 서너 명 정도는 그냥 제친다. 가만, 저거 마라도나 정도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아니야, 손님, 이건 메시예요.
아르헨티나 가난한 집 출신. 170도 안 되는 키(프로필 키는 난 모르겠고 한 165 정도 되지 않을까?). 바르사는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던 이 어리고 조그만 아르헨티나 소년을 스페인으로 데려왔고, 성장호르몬 주사까지 맞혀줘 가며 유소년 클럽에서 키운다. 메시 다큐멘터리를 보면 메시와 유소년 클럽 동기(?)인 피케가 인터뷰하는 게 나온다, 유소년 클럽 시절에 메시는 작고 연약하니까 심한 태클 같은 건 하면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러나 그 소년은 훌륭히 자라, 발롱도르를 5번 타는 위인이 되는데...라고 말하기에 메시의 활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단순한 scorer를 넘어서서 약간 쳐진 포지션에서 경기 흐름 전체를 보는 key player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워낙에 막강한 MSN(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 공격진을 장착한 바르사인지라, 응 메시가 못 넣으면 수아레즈가 넣든가-가 가능한 팀이지만. 메시가 뛰면 상대 수비수 두세 명은 기본으로 따라붙으니 그 사이에 상대 수비 진영에 공백이 생기게 마련. 그러면 다른 선수들이 득점하는 기회가 높아진다. 이건 뭐 출전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존재.
언젠가 메시를 만나게 되면 사랑한다고! 내가 너의 팬이라고! 고백하려고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캄프 누 가서 부르려고 바르사 응원가(El Cant del Barca)를 외웠다. 우린 87년생 동갑내기 친구니까 반말해도 되겠지, 메시야?! 언젠가는 꼭 반드시 메시를 실제로 보고 말 테다!
바르셀로나, 카탈루나 지역에서 바르사는 사실 단순히 사랑받는 축구 구단 수준이 아니다. 과거부터 항구 도시 바르셀로나는 무역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해 힘을 길렀고, 스페인 밖의 급변하는 사상과 문화들을 받아들이면서 스페인 왕당파에 지속적으로 저항하는 도시로 성장해왔다. 1930년대 일시적으로 공화정이 수립되고 카탈루냐 지역이 자치 및 카탈루냐 어를 공식 사용할 수 있었으나, 프랑코 독재정권의 박해를 받으면서 카탈루냐어와 카탈루냐 국기 사용을 금지당했고, 축구 클럽 이름도 CF바르셀로나로 강제 개명당했으며 엠블럼 내 카탈루냐 자치국기도 삭제당했던 역사가 있다. 700만의 인구와 스페인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카탈루냐는 지금도 독립을 위해 다양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다. 바르사는 이러한 스페인 내 카탈루냐 지역이 가지는 특유의 저항성 및 특수성과 함께 하며, 카탈루냐 인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엘 클라시코(라이벌 구단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는 엘 클라시코라 불린다)가 열릴 때면 바르사 팬들은 캄프 누에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라는 거대한 현수막을 내걸고, 큰 경기가 있을 때면 팀 수뇌부들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파블로 카잘스는 평생 프랑코 독재에 저항했던 카탈루냐 출신의 음악가다. 이밖에도 스페인 내전 때 바르사의 수뇰 회장이 프랑코 총통에 의해 살해당한 것과, 프랑코 총통이 레알 마드리드의 열혈팬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엘 클라시코는 과거부터 격렬하지 않으래야 그럴 수가 없는 전쟁이다.
(참고 칼럼: 정윤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01&contents_id=24978&leafId=)
퇴사 후 여행을 계획하면서, 망설임 없이 떠난 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 누에 너무나 가보고 싶었다. 바르사 팬들이 블라우그라나(짙은 네이비색과 붉은색 줄무늬가 교차하는 바르사 특유의 유니폼 색깔 및 팬을 지칭) 깃발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저 속에 함께 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2014년 퇴사하고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는 월드컵 시즌이라 경기를 보지 못했지만, 사전 성지 순례했다고 생각한다. 내 반드시 엘 클라시코를 직관하고 말리라!
캄프 누 박물관에 들어서서 바르사의 수많은 트럼피와 레전드들의 기록을 보면 바르사에 대한 신앙심은 더욱 높아진다. 구장 잔디까지 직접 밟아보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선수들이 지나는 계단 통로에 오르니, 바르사 선수들이 여기를 거쳐 경기장으로 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또 한 번 신성함을 느끼고 메신-
그러니 기념품샵에서 그간 지켜왔던 지갑을 탈탈 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 구장 잔디까지 뜯어서 파는 것을 보고 잠시 어이가 없었으나, 그래도 그것까지 갖고 싶은 것이 팬의 마음. 그저 이런 팬들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너그러운 구단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참고로 유니폼을 사니 축구할 때 신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사은품으로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구단이다.
박물관, 경기장, 기념품샵을 거쳐 캄프 누 투어를 마치게 된다. Mes que un club, 클럽 그 이상의 클럽 바르사를 향한 나의 사랑은 아마 평생 계속될 것 같다. 그것은 어떤 한 스포츠 구단에 대한 열광이라기보다는, 마치 트와일라잇 시리즈 보면 나오는 늑대인간이 운명의 상대를 보면 평생 각인되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엘 클라시코가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 중 하나이고, 새벽녘에 유니폼을 정갈하게 챙겨 입고 응원하며, 그 결과에 따라 울고 웃는-
캄프 누를 나가는 문에는 Hasta pronto라고 적혀있었다. 그래, Hasta pronto-, 곧 또 봐!
다음 글에는, 애증의 그 이름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나의 마음을 써볼까 한다.
부디, 욕으로 도배된 글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