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Aug 07. 2019

사회성 부족한 진돗개의 친구 사귀기

내 새끼가 이렇게 소심할 줄이야!

 우리 뿌꾸는 태어난 지 3개월 겨우 넘어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 친구분의 개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한 마리 분양해 주시겠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직접 그 집으로 가서 우리 가족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아이로 데려오셨다. 곧 뿌꾸라는 이름이 붙은 조그만 우리 강아지는 집에 온 첫날 겁에 질린 것처럼 소심하게 집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튼튼한 진돗개답게 금세 적응해 마당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며 사고를 치면서 지금은 16킬로그램이 넘는 든든한 여동생이 되어주었다. 형제자매 없이 홀로 큰 탓에 다른 강아지들보다 오히려 사람에게 관심이 더 많은 뿌꾸의 모습에 개 친구를 좀 만들어 주면 좋겠다 싶어서 최근에 생겼다는 반려견 놀이터에 뿌꾸를 데려가 보기로 했다  

나름 나들이 간다고 목욕도 했다!
털 말릴 때 심기 불편한 뿌꾸

 뿌꾸가 그동안 차에 타 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지만, 한 시간 가까이 차 뒷좌석에서 뿌꾸는 멀미는 물론 실례를 하지 않았다. 다만 호기심에 여기저기 움직이려고 해서 우리 자매는 뒷좌석 가운데 뿌꾸를 태우고 양 옆에 앉아 뿌꾸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밀폐된 차 안에서 뿌꾸의 헥헥거리는 입냄새를 코 앞에서 맡고 있자니 속이 메슥거리려고 할 무렵, 우리 가족은 강아지 놀이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형견과 중 대형견용 놀이터가 분리되어있고 수영장도 딸린 넓은 곳이었다.

언니 우리 어디 가는 거야?

 강아지라면 다 좋아하는 나는 놀이터 입구에서부터 두근두근거렸다. 이 반려견 놀이터는 부지가 넓어 특히 중 대형견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성격 좋아 보이는 강아지들도 한가득 있었다. 문제는 우리 뿌꾸가 낯선 장소에서, 더 낯선 처음 보는 강아지들을 보고 겁을 잔뜩 먹었다는 것. 발걸음도 잘 안 떨어지는지 주춤거리는 뿌꾸를 어르고 달래서 안으로 입장하니 골든 레트리버, 사모예드, 포메라니안 등 넉살 좋은 상주견들이 뿌꾸를 반겼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개들의 환대에 뿌꾸는 꼬리를 내리고 내 옆에 착 붙어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런 걸 거야 하고 적응시켜주기 위해 강아지 놀이터에 마련된 카페 안으로 뿌꾸를 데리고 갔다.

덩치 크고 순둥 했던 녀석

 순하고 애교 많은 상주견들이 뿌꾸한테 인사를 시도했지만 뿌꾸는 눈꼬리가 잔뜩 쳐진 채로 '쟤들 좀 나가라고 해줘'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행히 놀이터 주인분께서 뿌꾸를 배려해 상주견들을 밖으로 내보내 주셨지만 뿌꾸는 우리 가족들 품 사이에서 나가려고 하지를 않았다. 가지고 온 간식과 우유도 거부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뿌꾸가 정말 많이 긴장했구나 싶어 안쓰러워졌다.

이 푸들 친구는 우리 가족 테이블 아래 자리를 잡아버렸다

 뿌꾸를 쓰다듬어 주면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는데 조그만 갈색 푸들이 놀러 왔다. 이 작은 친구는 사회성이 어찌나 좋은지 뿌꾸를 보니 반가워하면서 냄새를 맡으려 했는데, 뿌꾸는 화들짝 놀라며 도망가기 바빴다. 본인 덩치의 절반도 안 되는 푸들에게 놀라는 진돗개라니. 뿌꾸도 우리도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시바견 아빠가 불도그라는 작은 강아지가 뿌꾸 리드 줄을 물고 늘어질 때조차 그 강아지 눈치만 보면서 한 마디도 못하는 뿌꾸를 보고서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달까.

이 성격 좋은 녀석은 우리 엄마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언니 쟤 좀 저리 가라고 해 내 리드 줄 자꾸 물잖아

 밖을 보니 지금은 강아지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중대형견 놀이터로 한 번 나가볼까 싶었다. 레트리버 한 마리, 시바견 한 마리 그리고 멋지게 생긴 그레이하운드 까지 세 마리가 사이좋게 뛰놀고 있었다. 뿌꾸가 입장하자마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냄새를 맡으러 오는 친구들을 피해 뿌꾸 또 도망자 신세다. 다행히 쿨한 강아지들은 뿌꾸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각자 할 일을 하러 가버렸고 결국에는 머쓱해진 나와 뿌꾸 둘이 뛰어다니며 놀았다. 다른 견주분들이 보시기엔 누가 누구와 놀아주는 건지 모를 이상한 풍경이었을 거다. 그 더위에 사람 하나와 소심한 진돗개 한 마리가 헥헥거리면서 각자 뛰고 싶은 대로 뛰고 있었으니.


사람 따로 개 따로 뛰는 모습

 땡볕에서 뛰자니 둘 다 금세 지쳐서 파라솔 아래로 갔는데 아까 잠깐 봤던 한 살짜리 시바견이 뿌꾸에게 다시 다가왔다. 이젠 적응 좀 했으려나 싶어 잠자코 봤더니 그래도 뿌꾸는 여전히 친구를 질색하는 표정. 죄 없는 시바견은 머쓱해져 본인의 주인에게 돌아가버렸다. 날이 더운 데다 기분도 언짢고 긴장을 많이 했는지 거품 섞인 침을 줄줄 흘리는 뿌꾸를 보니 더위라도 먹을까 걱정되어 우리 가족은 반려견 놀이터 입장 한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어이구 불쌍한 내 새끼, 그래 친구 없어도 돼! 사회성 그게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걸! 오히려 다른 강아지한테 공격적으로 굴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놀이터 오기 전에는 뿌꾸가 다른 개들을 물거나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우리 뿌꾸는 구석의 쭈구리였다.  

언니 나 이 친구 무서워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어리둥절 뿌꾸

 수영장에는 더위를 피해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는 강아지들이 한가득이었지만 그 사이에 뿌꾸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의지도 전혀 없었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강아지 놀이터에서 나오니 뿌꾸가 긴장이 풀렸는지 우리 차 근처에 있던 코카 스파니엘에게 종종걸음으로 인사를 하러 갔는데 그 아이는 뿌꾸에게 버럭 성질을 내버렸다. 뿌꾸가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다른 개에게 인사를 건넨 거였는데. 놀라서 깨갱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뿌꾸의 귀 쳐진 모습이 너무 짠했다. 그 코카 스파니엘은 나름대로 또 덩치 큰 뿌꾸가 다가서서 놀란 게 아닐까. 뿌꾸는 서운함만 가득 안은 채 차에 올라탔고, 우리 가족은 그런 뿌꾸가 안쓰러워 뿌꾸를 쓰다듬어만 줄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흐에엑 그만 쫓아와

 집으로 돌아오자 뿌꾸는 기운을 차리고 밥도 물도 한가득 먹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어 뿌꾸랑 산책에 나섰다. 거의 모든 개들이 그렇겠지만 뿌꾸는 내가 리드 줄만 잡아도 산책인걸 눈치채고 신나서 방방 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에서 시바견처럼 생긴 누렁이 친구를 만났다. 목줄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동네에 사는 강아지 같았다. 뿌꾸에게 관심을 보이며 조심조심 다가오는데 웬걸, 뿌꾸도 그 강아지 냄새를 킁킁 맡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오늘 종일 다른 강아지들로부터 도망 다니던 뿌꾸, 장족의 발전이다. 물론 10초도 안 되는 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뿌꾸가 사람 아닌 다른 강아지와도 인사할 줄은 아는구나 싶어서 내심 어찌나 기쁘던지.

뿌꾸는 이 친구가 맘에 들었나 보다
알룩덜룩이는 뿌꾸를 참 좋아한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늘 뿌꾸가 산책할 때 주위를 알짱거리던 얼룩덜룩이 강아지와 마주쳤다. 오늘은 더 적극적으로 뿌꾸를 쫓아오는데 평소에는 무관심하던 뿌꾸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얼룩덜룩이를 받아준다. 거주하는 동네에서 그래도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니 뿌꾸도 한결 마음이 편한가 싶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우유를 한 팩 먹어치운 뿌꾸는 마당에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친구와 사이좋게 냄새도 맡았다

 그래, 사람이든 강아지든 꼭 친구가 많을 필요가 있을까, 내가 행복한대로 살면 되지. 오늘 뿌꾸를 온갖 외향적인 강아지들이 가득한 놀이터로 데려간 것은, 내성적인 사람을 칵테일파티에 무작정 집어넣고 사람들이랑 친해져보라고 한 꼴과 다름없었을 것 같아 미안해졌다. 우리 뿌꾸는 시설 좋은 강아지 놀이터에서 관리 잘 받고 자란 친구들보다는 익숙한 우리 동네에서 조금 꾀죄죄해도 조심조심 다가오는 친구들이 더 좋은가보다. 웃는 표정으로 잠든 뿌꾸를 보며 앞으로는 산책 시간을 더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보면 되게 재밌게 생겼다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라주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