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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14. 2019

취미는 책 읽기

시골 생활의 활력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생일이 1월인 탓에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소심해서 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려 노는 아이가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편에서 삼삼오오 모여 공기놀이를 하는 친구들을 두고 자리에서 항상 책을 읽는 아이였다. 그 시절 교실 뒤 책장에는 어린이 잡지며 파브르 곤충기, 시턴 동물기 등이 꽂혀 있었는데 나는 그 모든 책을 다 읽어치우곤 했다. 특히 시턴 동물기에 나온 '이리 왕 로보'를 정말 좋아해서 동네의 암소를 잡아먹는 이 맹수를 무서워하면서도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매월 초에 발간되는 어린이 잡지의 고구려 역사를 그린 만화 코너도 좋아해서, 월 말이면 다음 달 잡지가 어서 들어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회사 강연 온 조승연 작가를 만나 그의 저서 ‘비즈니스 인문학’에 사인도 받았다!

 그랬던 나는 커서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 책을 자꾸 사다 읽으니 나중에는 보관할 데도 마땅치 않아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중고 책을 사서 읽고서는 다시 팔았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는 주말 중 꼭 하루는 카페에 가서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특히 스페인과 남미 대륙에 대한 동경으로 해당 국가들에 대한 에세이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복잡한 서울에서 누군가들의 자유롭고 찬란한 여행기는 회사 생활에 찌든 마음의 도피처였다.

여행책은 기분전환에 좋다 대리만족!
쿠바의 역사나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쓴 책은 처음이었다!

 시골에 내려오면서는 일이나 인간관계에 크게 신경 쓸 일이 없다 보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내 몸 하나 잘 보살피자는 생각으로 왔으니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중 으뜸은 역시 책 읽기다. 아침에 일어나 과일과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뿌꾸와 아침 산책을 다녀온 뒤 세수를 하며 잠 기운을 쫓는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부엌의 식탁에 앉아 밝은 전등을 켜 놓고 책 한 권을 펴 든다. 부모님은 독립해 나간 두 딸의 공부방이 이제 딱히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셔서 책상을 처분하셨지만, 부엌의 튼튼한 6인용 원목 식탁이 훌륭하게 책상 역할을 대신한다. 두세 시간을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독서대를 쓴다. 대학교 입학하면서 산 이 낡은 독서대는 이제 한쪽 지지대가 고장이 났지만 그럭저럭 쓸만하다. 아디다스 운동화 박스 위에 독서대를 올려놓는데 그러면 시선의 높이와 딱 맞는다.  

어느새 책상이 되어버린 부엌 식탁

 책을 읽을 때는 항상 좋아하는 마실거리도 함께 준비한다. 나는 계절에 관계없이 뜨거운 차를 좋아하는데, 요즘엔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있어서 주로 허브차를 마신다. 페퍼민트차를 가장 좋아하고, 레몬그라스, 루이보스, 사과 조각 등이 섞인 허브차도 좋아한다. 날이 쌀쌀하거나 목이 좀 아픈 것 같을 때는 언제나 유자차를 마신다. 상큼하고 달콤 씁쓸한 유자청 건져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항상 건더기도 듬뿍 넣는다. 배가 좀 출출할 때는 따끈하게 데운 흰 우유에 오레오를 같이 먹는다. 당이 들어오면서 머리 회전도 조금 더 빨리지는 느낌이다. 좋아하는 마실거리를 곁들이면 책 읽기의 즐거움도 한층 더해진다.

직접 말린 달달한 메리골드를 우려내 마셨다

 음악도 빠질 수 없다. 물론 한창 책 내용에 빠져 있으면 옆에서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도 모르게 되지만 생각의 공백이 생길 때 음악이 흐르고 있으면 기분을 더 돋궈준달까.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며 한국 노래를 들으면 괜히 머릿속에서 낱말들이 꼬이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읽을 때는 주로 외국 음악을 듣는 편이다. 그 플레이리스트 중 요즘 한창 자주 듣는 음악은 이탈리아 칸초네 'Caruso'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캐스트의 넘버들, 스페인 팝 종류가 많다.

 나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는 전혀 할 줄 모르지만 'Caruso'와 'Le Temps Des Cathedrales'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제법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비가 오는 날에는 콜드플레이의 'fix you'나 'gravity', 라이오넬 리치의 'hello', 누자베스의 'Luv sic.3'도 항상 리스트에 추가해둔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맑은 날이면 새소리가, 비 오는 날에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도시의 차 소음, 사람들의 정신없이 큰 말소리 대신 내가 좋아하는 자연 소리와 옅은 음악만이 깔리는 휴식의 시간이다. 이처럼 내게 책을 읽는다는 건, 입과 귀와 머리가 모두 즐거운 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몰입감이 정말 좋다!

 집에 내려와서는 책 읽는 취향도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해외 여행기나 철학서들을 좋아했다. 해외 여행기는 대리만족을 위한 거였고, 철학은 내가 흥미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자유론', '여성의 종속’을 반복해서 읽거나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탐독했다. 책 편식을 하느라 소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이제 나도 이런저런 일을 겪은 어른이 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프다. 그렇다고 너무 생활에 닿은 글보다는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장들을 좋아한다.

오야마 준코의 ‘고양이는 안는 것’ 가볍게 읽기 좋은 따뜻한 이야기

 소설의 매력을 다시금 제대로 느끼게 된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생일 선물 받은 책이었는데 몰입감이 좋고, 이야기가 따뜻하고,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서 앉은자리에서 세 시간에 걸쳐 완독 했다. 나중에서야 그가 일본의 독보적인 추리소설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어 뜨악했던 기억이 난다. 상처 받은 군중들의 사연을 보듬어 안아 치유해주는 그 문장들을 쓴 작가가, 무섭도록 창의적인 살인 방식과 범죄자의 뒤틀린 심리묘사 일인자였다니. 범인의 동기와 그 수법이 밝혀지는 순간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에 빠져 최근에는 추리소설 위주로 읽기 시작했다.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에 푹 빠졌던 대학교 3학년 때에 이어 두 번째 추리소설 붐이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모방범'과 '외딴집'을 정말 감명 깊게 읽었고, 이 영향으로 뱀이 나오는 무서운 꿈을 꾼 뒤 그 기억을 소재로 호러 소설을 끄적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볕 좋은 날 이불을 널어놓고 파라솔 그늘 아래서 책 읽는 것도 좋다

 쫓기는 것 없이 느긋하게 앉아 좋아하는 책을 쌓아놓고 읽는 것은 정말 좋다. 널따란 주방 식탁에 앉아서, 햇살이 부드러운 날이면 마당 데크에 파라솔을 펼쳐 놓고, 때로는 소파 위에 누워서. 좋은 문장은 천천히 몇 번이고 반복해 음미하며 읽으면서.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으면 선크림만 대충 바르고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낡은 마을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 걸리는 한적한 변두리 도서관에서 책을 여러 권 빌려 온다. 한시적인 귀촌 생활의 소소한 취미생활이지만 집에 그렇게 읽을거리들을 배낭 가득 짊어지고 오면 그 이야기들 만큼의 에너지가 쌓여가는 게 느껴진다. 이 시골은 내게 하나의 보루와 같아서, 이 곳에서의 책 읽기는 앞으로도 더 현명한 생각을 하게 하고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음의 도피처이자 비장의 무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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