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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Oct 19. 2019

시골에서 좋은 것, 싫은 것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시골 생활을 몇 달 정도 하고 나니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처음에는 낯설거나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던 이 곳 생활 속에서도 호불호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골 생활에 대해 느끼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고 동네마다 환경, 분위기와 이웃들이 다르기 때문에 도시보다 좋다 나쁘다 쉽게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 시골 생활이 전반적으로 꽤나 만족스러웠다. 그건 아마도 서울에서 지쳤던 내가 정신적인 여유로움과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며 시골집으로 도망치듯 내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의 시골집은 내 결핍을 여러 가지로 보듬으며 채워주었다. 그 속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과 기겁할 정도로 싫어하는 것들이 공존한다. 빗소리가 주룩주룩 시원하게 느껴지는 아침에, 좋은 것과 싫은 것을 써내려 가보기로 했다.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좋은 것


 풀 냄새 가득한 마당. 잔디를 깎고 나서 올라오는 그 파릇하고 시원한 풀냄새는 여름밤의 정취를 돋궈준다. 둘러보면 나무, 꽃, 목재로 만든 데크 밖에 없어서 눈 피곤할 일이 없고 날아다니는 나비며 잠자리들을 보면 생명력이 느껴진다. 여름과 가을 내내 이 곳에서 매연이나 미세먼지 걱정을 한 적이 언젠지. 얼마 전 햇살 좋은 날 마당에 나섰을 때 좋은 향기가 마당을 감싸고 있어서 동생이 향수를 뿌리고 나와있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금목서 향기였다. 자연 그대로의 꽃향기를 탁 트인 곳에서 맡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 무렵에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투명하고 보송한 바람을 쐬면 앓던 편두통도 날아갈 것만 같다. 서늘한 가을이 다가오는 것도 바람에 스민 건조해진 나무 냄새로 알 수 있다.

비 오는 날의 시골은 평소보다 더 고요해서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잘 들린다

 예쁜 하늘이 잘 보인다. 높은 건물이 없어 해질 무렵 옅은 푸른색에서부터 주황색까지 그러데이션 된 듯한 하늘이 잘 보이는데 어떤 물감으로도 그 순간의 광경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구름 한 조각 없는 낮이면 무슨 푸른색이라고 표현해야 저 하늘을 그릴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 시원한 색감 속에 내 속도 탁 트이는 것 같다. 달이 잘 보이는 밤하늘도 좋다. 도시와 다르게 우리 마을에는 휘황찬란한 조명 대신 오렌지 빛 가로등이 드문드문 서 있어,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남색 밤하늘 위에 달의 무늬까지 보이는 듯하다. 조용한 마을에 멀리 강아지 짖는 소리나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데 그 평화로움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넓고 선명한 도화지에 은은히 빛나는 둥그런 달과 산딸기 같은 별들을 떼어다 붙인 것처럼 예쁘다.

하늘색이 무슨 팬톤 컬러칩 마냥 산뜻하게 예쁘다

 마을을 걷다 보면 가끔 마주치는 여유로운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반갑다. 시골이라 개를 키우는 집이 많은데, 주인과 산책하는 개를 만나는 일도 자주 있고 때로는 목줄을 찬 채 혼자 종종거리며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마주치는 일도 있다. 그 녀석들은 혼자 유유자적 산책하는 게 익숙한 애들이라 나에게 쉽사리 다가오거나 짖지 않는다. 그렇지만 뿌꾸와 다닐 때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끔 호기심에 킁킁거리며 뿌꾸에게 다가오는 강아지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뿌꾸는 전혀 관심이 없고 나만 신나 하며 그 강아지에게 다가가려 애쓴다. 이제 꽤나 자주 마주쳐 지나갈 때마다 인사하는 강아지들도 있다. 특히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똑똑한 보더콜리 봄이나 북쪽 논 근처에 사는 작고 귀여운 얼룩덜룩이가 제일 반가운 친구다. 길고양이들도 많은데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아 누가 쳐다보든 아랑곳 않고 그루밍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나 혼자서 마주치면 멀찍이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를 지켜본다. 그러나 뿌꾸와 같이 산책할 때는 뿌꾸가 고양이를 보면 너무 흥분하기 때문에 못 본 척 돌아간다.

산책 길에서 만난 강아지 4 총사

 누군가와 필요 이상의 말들을 하며 지내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인데,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활발함을 장착한, 생존형 외향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서 이런저런 말을 조잘조잘하는 편인데,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원래 쾌활하고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안다.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들어온 온 날이면 기운이 쭉 빠지면서 이 말을 왜 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시골에서는 일단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내가 말을 먼저 꺼내면서 대화를 주도해야 할 부담이 없다. 사람을 만난다 해도 마음씨 좋은 동네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배추가 아주 잘 자라네요'라든지 '고구마 줄기 다듬으세요?' 같은 지극히 짧고 궁금한 이야기들만 건넬 뿐이다. 그분들도 마음씨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실 뿐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으신다. 마음이 편안하다.

부엌 창 너머로 뒷집의 푸릇한 텃밭이 보인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의 좁은 서울 월세방에 비하면 시골의 부모님 댁이 훨씬 넓다. 비싼 서울 땅에서는 꿈도 못 꾸는, 뛰어다닐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아무리 쿵쾅거리며 걸어도 나 때문에 불편해할 사람이 없다. 서울 집은 창문을 열어도 밖에서 밀려오는 미세먼지에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고, 빨래를 하고 집 안에서 널 때는 새 빨래에도 먼지가 그대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주인이 바꿔주마 하고 약속했던 덜덜거리는 작은 세탁기도 영 시원치 않다. 낡아 여기저기 금이 간 건물 벽도 은근히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서울의 분리형 원룸에서는 침대가 집의 중심이라 거의 대부분 거기에 드러누워 휴대폰이나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시골집에서는 넓은 거실에 요가매트를 깔아놓고 혼자 꼼지락 대보기도 하고 소파에 앉아 발마사지기를 써보기도 하고 주방 식탁에 앉아 글을 쓰기도 한다. 좁은 서울 집에 있으면 생각도, 의욕도 좁아지는 것 같아 답답했다. 시골집에 오면 집 안에서 걷고 앉고 누울 수 있으니 마음도 탁 트이는 기분이다. 뭔가 생산적인 일들을 하고 싶게끔 만들어준다.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싫은 것

 

 우리 마을 끄트머리에는 돼지를 키우는 축사가 있다. 낮에는 환풍시설을 돌리는 것 같은데, 밤에는 그걸 꺼두는지 돼지 분변 냄새가 바람에 실려 우리 집까지 오는 경우가 있다. 밤에 동네 산책을 할 때 종종 그 시골 거름 같은 냄새가 난다. 시골임을 감안하더라도 썩 유쾌한 냄새는 아니다. 그래서 밤에는 거실이며 방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환기를 하다가도 그 냄새가 밀려오는 것 같으면 문을 휙 닫아버린다.

 

 마당에 꽃과 열매가 있으니 자연히 벌들도 따라붙는다. 조그만 꿀벌이면 덜 무섭지만 때로는 꽤나 큰, 말벌 같은 애들도 보여 질색한 적이 있다. 특히 마당 파고라 위에 심어둔 포도에 꼬이는 큰 벌들은 내게 공포의 대상이다. 윙윙 소리를 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나는 굳어버리는데,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게 파리채로 나를 위협하는 벌을 처단하신다. 부모님은 정말 대단하다.

마당의 석류나무에도 벌이 자주 꼬이지만, 고생 끝에 거둔 석류는 정말 맛있었다

 텃밭을 가꾸다 보면 본의 아니게 채소에 꼬인 해충들을 잡아야 할 때가 있다. 나는 벌레를 그다지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도시에서 평소에 보기 힘든, 지네나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는 벌레를 보면 기겁한다.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런 벌레들을 때려잡아야 하는 마음은 늘 좋지 않다. 그래서 몰래 마음속으로는 '미안해-'하고 외치곤 한다. 얼마 전 마주친, 내 중지 손가락보다 훨씬 큰 지네 앞에서는 놀라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단말마 소리만 지르고 덜덜거리는 내 앞에서 아빠가 또 파리채 하나 만으로 지네를 제압했다. 혼자서 마주쳤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거다.      


 아주 가끔은 맛있는 밀크티와 조각 케이크가 먹고 싶다. 마을에 하나 있는 카페에서는 커피를 내리기는 하지만 조각 케이크를 기대할 수 없다. 버스나 차를 타고 20분 이상은 가야 하는데 오직 그것만 먹고 오기 위해 먼 길을 나서기는 귀찮다. 배달앱으로 시켜보려고 해도 우리 동네까지는 배달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허브차 티백이나, 커피 원두, 밀크티 분말 등이 많다. 그렇지만 카페에 직접 가서 제조 음료와 함께 먹는 한 조각의 케이크의 즐거움에 비할 것은 못된다. 편의점도 없어 유행한다는 편의점 음식도 시도조차 할 수 없으니 강제로 MSG 섭취를 적게 하게 되었달까.

항상 가지고 있는 차 티백, 인스턴트커피들

 몸을 써야 하는 일들이 많아 가끔 고될 때가 있다. 특히 가을이 다가올수록 텃밭을 가꾸고 마당 나무들을 보살피는 일들이 늘어나는데, 오랫동안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땅을 고르고 마늘을 심고 있자니 무릎이 덜덜 거리고 하늘이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잔디 깎이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잔디를 다듬을 때면 어깨와 손목에 힘이 계속 들어가서 한동안 욱신거린다. 어린 시절부터 도시에서 살았던 나는 땀을 줄줄 흘리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다. 시골 일은 보고서나 글을 쓰는 것처럼 뭔가 단서를 잡으면 술술 진도가 나가는 게 아니고, 정확하게 내가 들인 힘만큼 결과가 나오니 꼼수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하지만 제 때 노동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힘을 끌어모아 일하는 수밖에 없다.

쪽파를 심기 위해 좋은 구근을 골라내고 껍질을 벗긴다
한 번 소독한 쪽파 구근을 비료를 뿌리고 잘 다져둔 텃밭에 심는다
쪽파가 금세 잘 자라주었다


 시골에서 생활하면서도 좋고 싫고의 기분이 하루에 몇 번씩 오고 가지만, 그 기분의 폭이 서울생활에서 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은 무던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좋으면 그 순간 '아, 좋다' 하고 느끼고, 싫은 건 '이것도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거지, 뭐' 하고 느낀다. 좋고 싫은 것들을 써내려 가다 보면 그 리스트가 무한정 길어질 것 같다. 하나의 바람이 불더라도 그게 내 기분에 따라서 좋은 날도 싫은 날도 있다. 그래도 싫은 것보다는 좋은 것들이 더 많은 시골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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