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쇼핑과 전통 시장 사이
오늘 시키면 내일 온다. 주문을 한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받아 볼 수 있다는 건데, 이 시골에 살면서도 그렇게 빠른 택배를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은 설레게 만들었다. 늘 챙겨 먹는 영양제나 내 머리에 잘 맞는 영양감 있는 트리트먼트, 우리 뿌꾸를 위한 반려동물 우유나 가끔 먹고 싶은 스테이크 같은 요리 재료들이 주문하면 다음 날 도착했다. 텃밭 채소와 동네 마트에서 파는 우유, 계란, 고기로 시골의 건강한 식단을 만들 수 있고, 2주일에 한번 정도 방문하는 대형 마트에서 우리 4인 가족에 필요한 것들을 사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 시내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뭔가를 급히 사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모바일 쇼핑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는 배송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 온라인 쇼핑을 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기다림의 시간이 하루도 안되고 발품 팔 필요도 없으니 깜빡하고 잊은 것들을 사기에 모바일 쇼핑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품질이 일관적으로 보장돼서 직접 보고 사지 않아도 되는 늘 쓰던 공산품의 경우 모바일 쇼핑이 가격적인 이점도 크다. 시골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되어 모바일 쇼핑에 지출하는 돈이 확 늘어버린 것을 알게 된 이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가끔 호떡이 너무 먹고 싶거나, 갑자기 건조해진 손에 바를 내가 좋아하는 향의 핸드크림이 너무 간절한 경우 예외 없이 모바일 앱에 손을 댔다. 월 일정 금액을 내면 배송비도 없다. 휴대폰에 지문을 한 번 대는 것 만으로 결제 완료, 배송 시작이다. 돈쓰기 참 쉽게 해 놨다.
특히 요리하기 편하게 손질된 신선식품이 아침이면 도착하는 새벽 배송은 내게 신세계였다. 역시 우리 민족은 배달의 민족이야 하고 좋아하던 나의 새벽 배송 예찬은 의외의 복병으로 인해 끝이 났다. 복병은 바로 우리 강아지 뿌꾸. 평소에는 말이 없는 우리 뿌꾸는 스스로 우리 집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해서 낯선 사람이 집 앞에 차를 대거나 지나가기만 해도 맹렬히 짖는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뿌꾸가 짖으면 누가 오나 싶어 창 밖을 주시한다. 진도 믹스라서 울림통이 남다른지 그 소리만 들으면 덩치 큰 늑대가 위협하는 것처럼 들린다. 택배 배달 오시는 분들은 처음엔 뿌꾸가 크게 짖는 소리에 많이 놀라셨다. 그러다 내가 시킨 택배 개수만큼 택배 기사님이 우리 집을 자주 오가게 되면서 뿌꾸와도 안면을 트게 되었고, 사람을 좋아하는 뿌꾸와 죽이 잘 맞았던 택배 기사분은 급기야 뿌꾸와 함께 노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새벽에 배송되는 택배의 경우 기사님이 자주 바뀌는지 매번 뿌꾸가 짖는데 얼마 전에는 새벽 세시 반에 택배가 와서 뿌꾸가 요란스럽게 짖어댔다. 쿨쿨 자고 있던 우리 가족도 놀랐고 뒷집 수탉도 놀라 같이 꼬끼오- 울고 난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둑한 가로등 사이로 덩치가 꽤 큰 개가 자신을 향해 맹렬히 짖는 것을 보고 그 조용한 새벽에 택배 기사님이 얼마나 놀랐을지. 혹시라도 동네 주민들이 이 소리를 듣고 잠을 깼다면 이 얼마나 민폐인지. 이후 새벽 배달은 정중히 사양이다.
모바일 쇼핑이 이렇게 편하지만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과일, 채소를 살 때 최고의 쇼핑 채널은 바로 시장이다. 키위와 복숭아를 온라인 쇼핑으로 시켰다가 그 설익은 밍밍한 단맛에 잔뜩 실망한 우리 가족은 과일만은 반드시 직접 보고 사자는 원칙을 만들었다. 마트에서도 좋은 과일들이 많이 보이지만, 우리 가족이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마트에서 산 알이 큼지막했던 복숭아는 꼭지가 아래를 향한 채 포장되어 있었는데, 집에 와 포장을 까 보니 여러 개가 꼭지 부분이 많이 상해 있어서 잔뜩 불편한 마음으로 환불받았었다. 마트에서는 박스를 열어 볼 수 없으니 과일을 살 때 종종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다.
그에 비해 전통시장에서는 상자를 열어서 과일 상태를 다 보여주시기도 한다. 복숭아 박스 앞에 서성이며, '이거 어디 복숭아예요? 얼마예요? 무른 편인가요 저는 말랑한 게 좋은데' 하며 종알거리고 있으면 인심 좋은 할머니는 옆에 있던 복숭아 하나를 깎아다 직접 한 번 먹어보라며 건넨다. 딱 내가 좋아하는 물렁함에 넘치는 과즙의 단맛과 신맛의 아름다운 조화에 정신을 잃었다 다시 차렸을 때쯤 나는 엄마 차에 복숭아 상자를 싣고 있었다. 할머니가 천 원 싸게 주셨다며 호들갑을 떨면서. 그날 시장에서 사 온 복숭아는 우리 가족이 저녁마다 신나게 먹어치우는 바람에 금방 동이 났다. 여름 과일이라 날이 차가워지면서 이제 복숭아를 구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내년 여름에도 우리 가족은 그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다 먹을 거다.
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고속도로 휴게소만큼이나 맛난 걸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갓 삶아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찰옥수수는 정말 최고다. 커다란 옥수수를 반으로 뚝 잘라 동생과 한쪽씩 나누고, 단맛이 나는 옥수수를 줄 맞춰서 알알이 뜯어먹고 있으면 주변 구경도 잊게 된다. 따끈한 술빵도 맛있고, 시원한 단호박 식혜도 별미다. 천가방에 커다란 술빵이랑 먹다 남은 찰옥수수를 넣고 어깨에 맨다. 그 음식들의 열기를 한쪽 팔로 느끼면서 다른 한쪽 손에는 시원한 식혜를 들이켠다. 단호박 식혜는 일반 식혜보다 단 맛이 깊고 깊은 호박 향이 느껴져 훨씬 맛있다. 사놓고 쌓아 놓는 게 아닌, 진짜 우리 가족이 먹을 것을 구한 나는 시장에서 배도 든든하고 기분도 좋아졌다.
서울은 출퇴근 길에서 쇼핑의 유혹이 넘쳐났다. 어디든 반짝이는 식당, 옷가게, 편의점, 화장품 가게들이 즐비했고 지나가다 심심하면 들러서 쓸데도 없는 물건들을 사면서 습관적인 쇼핑을 했다. 주기적으로 쓰지 않는 물건, 제 때 먹지 않아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들을 버려야 했다. 시골에서는 필요에 따라서 쇼핑을 한다. 이걸 먹어야겠다든지, 우리 가족한테 필요한 생활용품이 다 떨어졌다든지 하면 뭔가를 산다. 사람 냄새나는 전통 시장 구경과 편리함의 극치인 모바일 쇼핑을 적절히 잘 조화시켜 가면서. 하지만 모바일 쇼핑은 거기에 잠깐 몰입했던 시기, 순간적인 충동을 해결해주는 편리함에 기대 살다가 월급을 다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교훈을 얻어서 자중하고 있다. 시골의 건강한 공기가 나의 대책 없는 물욕을 정화해 준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