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Nov 17. 2019

틈만 나면 떠나고 싶어요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네 가족과 함께 했던 일본 오사카였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전공하며 외국어 공부에 푹 빠져있었던  나는 내가 일본어를 꽤나 잘한다는 착각 속에 살았고, 어떻게든 지금까지 배운 일본어를 현지에서 써먹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 아버지가 외교 관련 일에 종사하셔서 온 가족이 일본을 다녀오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같이 가면 안되냐며 억지를 써 본 것이 기회였다. 친구는 생각보다 쉽게 나를 그 가족 여행에 끼워주겠다고 했다. 본인도 부모님이랑 다니면 별로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미성년자 딸이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주장하자 우리 부모님은 퍽 당황한 눈치셨지만 친구 부모님까지 같이 가는 데다, 내가 외고에 진학하고 공부한 걸 직접 현지에서 체감해보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로 매달리자 더 말릴 수 없겠다며 나를 보내주셨다. 오사카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면서 기대와 전혀 다르게 건조한 바다와 철강회사들만 즐비한 그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며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나 곧 라면이며 타코야키에 환호하고, 신칸센을 타고 나라에 가서 사슴들과 놀았던 기억은 지금도 가끔 생각날 정도로 강렬하게 남아있다. 


 어릴 적부터 일본어에 능통했던 내 친구는 현지인에게 뭔가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든 일본어 말 한마디 더 해보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나에게 대화를 양보했고, 옆에 서서 가만히 들어주었다. 용기 내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그 간 열심히 외웠던 표현을 써가며 길을 물어봤을 때, 그 사람이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해 주는 것을 보고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게 허튼 일은 아니었구나 하며 내심 뿌듯했다. 


 그러나 일본어로 질문하면 돌아오는 것은 일본어 대답이었으니, 질문만 할 줄 알고 답변을 알아들을 실력은 되지 못했던 나는 현지인의 빠르고 콧소리 잔뜩 실린 일본어에 어버버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때면 내 친구는 네가 일본어로 유창하게 물어봐서 저 사람은 네가 일본인인 줄 알고 저렇게 빠르게 대답을 해준 거야, 너 정말 잘했어하며 나를 토닥였다. 여행 내내 계속되었던 친구의 배려심은 나와 다른 말을 쓰고 다른 생활을 하는 타국에 대한 내 두려움을 사르르 녹여버렸다. 어쩌면 이때의 경험은 내 자신감을 키워주어 어른이 된 후 혼자서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용기의 자양분이 된 건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나는 그 흔한 직장인이 되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늘 타던 전철을 타고 출근해서 저녁까지 일했다. 때로는 야근을 했고, 정시퇴근을 하는 날이면 특별히 약속도 없으면서 괜히 신이 났다. 월급 받으니까 열심히 일해야지 하며 없는 에너지를 쥐어짜고 살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고갈된 에너지와 호기심을 충전하기 위해 여행을 갔다.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기회가 되면 최대한 많이 다른 나라에서 다른 것들을 보고 싶었고, 여행을 떠나 감탄하고 슬퍼하고 놀라고 사랑에 빠지며 삶의 풍유한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사진과 글로 그 감정을 남겼다. 신입사원 때는 상사들이 '너 또 올해는 어디 놀러 갈 생각하는 거니!' 하며 은근히 눈치를 줬지만, 꿋꿋이 매 년 어디론가 떠나니까 어느새 나는 '원래 어디 멀리 가는 애', '여행 갔다 글 쓰는 애'가 되어있었다. 회사에서 그런 포지션으로 있다 보니 이제는 올해 내 여행 계획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톱니바퀴처럼 흘러가는 서울에서의 내 재미없는 삶에서 가끔 찾아오는 이 즐거운 자극은 너무도 달콤하다. 나는 그래서 계속 여행을 한다. 누가 뭐래도.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베이에서 집 구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