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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n 30. 2021

요리학원에 막상 간다고 했더니

더덕구이 배울 바엔 그냥 사다 먹자는 아빠

어젯밤 우리 집 저녁식사는 부대찌개였다. 아빠가 끼니에 워낙 진심이라 뭘 먹을지 매일 고민하지만 밀키트(Meal kit) 나마 차릴 것이 있을 땐 기세 등등한 내가 된다.


엄마가 떠나고 나는 밀 키트계의 우수 고객이 되었다. 각종 밀 키트를 쇼핑하고 한주마다 몇 개의 박스를 받는다. 어제는 세 가지 종류의 밀 키트가 배송되어왔는데 그중의 하나가 부대찌개였다.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아빠는 밤새 병원에 붙어 앉아 투석받는 것을 기다리며 간호하고 들어왔다. 피곤한 중에 대충 먹지 뭐, 하던 아빠는 푸짐하게 차린 부대찌개를 보더니 소맥을 콸콸 말았다. 한 그릇 너끈히 먹고 나선 배를 두드리며 그래, 식사란 이래야지, 하신다. 같이 웃었다.


엄마는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몫은 내가 채우고 싶다. 비록 모두의 성에 차게 매일의 식단이 어젯밤처럼 푸짐하진 않더라도 나는 내 몫을 열심히 해내고 있고 그게 내 효심이라는 것을 아빠도 알아주면 좋겠다.


엊그제 밤을 새우고 어제 병원에서 돌아온 아빠를 보며 엄마가 죽고 아빠가 했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부모는 자식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고 자식은 부모를 절대 배신하면 안 되는 거야

칠십이 다된 아빠가 구십이 넘는 할머니를 간호하는 그 정성을 본보기 삼아 요리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


뭐 배우냐고 묻기에 메뉴를 얘기했더니, 더덕구이를 집에서 늘 먹는 것도 아니고 됐다, 그냥 사먹자 하시네요.

(큰 결심하고 다니려고 했더니만...)


당분간은 밀 키트에 의존하며 어깨너머 배우는 요리처럼 식사를 준비해 보다가 밑반찬 정도 몇 가지는 요즘 유명하다는 백 주부 레시피나 김수미 레시피를 찾아서 도전해 봐야겠다.


아빠랑 남편, 걱정 말아요! 내가 분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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