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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l 02. 2021

우리 가족 수난시대

아픈 생명들과 살아간다는 것

일찍 눈이 떠졌다. 남편은 오늘도 잠든 내 얼굴에 뽀뽀를 쪽 하고 한번 끌어안아주고 출근을 했다. 보통의 나는 그즈음에 잠에 취해 흐물흐물한 목소리로 잘 다녀와, 하고 말한다.


휴직한 후로 휴대폰에 급히 연락 올 일이 없다. 브런치를 잠시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잠시 들었다가 아빠한테서 카톡 온 게 있어서 보고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났다.

까르 오늘 피 토했다. 아무것도 먹이지 마라.
백병원 다녀와서 보자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 퇴원 수속하느라 백병원에 나가던 중 아빠가 급한 대로 휘갈겨놓고 나간 카카오톡 메시지.

까르가 아파요, 왼쪽은 피 토사물 오른 쪽은 위액 토사물

어제 뭘 먹었었는지 되짚어보며 까르가 어디가 있나 보니 아빠 침대 이불속에 제 몸을 파묻고는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 짐승은 아프다는 것을 결과물을 가지고 표현을 한다


할머니도 아프고 까르도 아프고. 아빠는 엄마일로 상심한 가운데서도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딸인 나는 옆에서 거들뿐, 물리적으로 함께 병원에 가거나 할 수는 있지만 노쇠해가는 아빠의 심경까지 포근하게 안아주는 건 엄마만 할 수 있던 일이었다.


이럴 때 난 아빠한테 참 미안하다. 자식으로 태어난 나를 아빠는 기대는 대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니까 내 딴에는 괜찮겠냐, 같은 질문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짜증만 낸다.


정작 아빠는 아픈 생명들을 안고 살아가면서 아빠의 아픈 영혼은 기댈 곳이 없다. 이런 복잡한 얘길 하면 또 짜증 낼 아빠라서 나는 그저 한발 물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활기차고 밝던 아빠가 그립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우리 가정의 화목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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