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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10. 2021

내가 쓴 글을 내가 정주행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봤어요

근 4개월에 걸쳐 쓴 글들은 어느덧 백개를 훌쩍 넘겼다. 그 글들에 끊임없이 위로의 말들이 달린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몇몇 읽지 않았던 그 글들이 사장되지 않고 누군가에게 공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나로서는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침대에 누워 엄마의 죽음부터 내가 오늘을 살기까지의 글들을 쭉 읽어봤다. 혹자는 이렇게 시리즈물처럼 읽어보는 것을 <정주행>했다고 표현하던데 내가 내 글을 정주행 하는 것은 나를 내가 제삼자로서 바라보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먼저 나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보았다. 엄마가 뜬금없이 죽었고 그 죽음의 끔찍함에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았다.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던 몇 달 전의 나는 살려달라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다음으로는 댓글을 봤다. 나 추스르는데 바빠 미처 보지 못했던 누군가의 경험담과 격려를 보며 이제라도 답글을 달아볼까 하다가 말고는 다음 글 또 다음 글을 읽으며 나를 들여다봤다.


처음의 심정이 황당함, 참담함이었다면 그다음은 분노였다. 안쓰러운 엄마와 엄마를 죽게 한 슬픔의 대상들에 대해 미친 듯이 퍼부으며 분개했다. 그 대상이 핏줄들이라는 사실은 씁쓸했다. 내 가슴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내치면서 엄마를 위해 그들을 고치지 못했던 나를 탓하기도 했다. 시간을 돌린다 해도 그들의 태도와 엄마의 미련을 고치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엄마를 지킬 수 있었을까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는 나의 사투를 보았다. 별일 아닌데 화도 났었고 별것 아닌 것에 소소한 기쁨을 느끼기도 하면서 몇 달을 버텨냈다.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은 조금씩 거두고 '엄마가 없어도 잘 사는' 내가 되려고 가족들의 심경변화를 살피며 딴에는 어른스러워지려고 노력은 했는데 오늘날까지 내 삶의 의미하나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매는 나는 여전히 미숙하다. 


분명 내게 벌어져 그때그때 휘갈겨 쓴 일기 같은 내 글들이 내가 쓴 게 맞는 건가 싶게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겪은 일들이 맞나, 내 일상이 맞나, 내가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게 맞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데 나인지 모를 내가 남긴 흔적들이 생경하여 나라는 인간은 어떤 사람인지 숙고하게 되는. 내 글 속엔 내가 평가하는 나와 다른 내가 존재하는 것 같아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 글 속에는 지르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잡초처럼 일상의 틀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내가 있고, 감정적으로 무너져도 가족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따뜻한 내가 있었다. 부족하지만 한 걸음씩 철들려고 애쓰는 서른다섯의 내가 있어서 조금 놀랐다. 한편으로는 아직 홀로 설만큼 강인하지 못하지만 유약한 내 내면의 소리에 솔직한 내가 있어서 기뻤다.


나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지만 반듯하게 잘 자란 사람인 것도 같다. 내가 내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엄마가 나를 그렇게 키워준 게 고마워서 한 번쯤은 나도 날 칭찬해 보고 싶다. 앞으로도 나는 흔들리는 촛불 같을 것이고 위태롭게 무너져내리기도 하겠지만 이만큼 견뎌온 나를 대견스럽게 여기며 한 발 한 발 나아갈 것이다. 글로 만나는 사람들, 또 현실 속에 나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격려가 허공에 메아리치는 공허한 말들로 떠돌지 않도록 나는 나를 다독이며 좀 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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