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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11. 2021

아빠와의 화해

네 동생은 네가 많이 알려줘야 하는 아이란다

며칠간 아빠와 냉전이었다. 남동생과 다투는 게 싫은 아빠는 나에게 오만 짜증을 냈다. 평화도 좋은데 평화로우면 한쪽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느라 나는 울고불고 아빠와 말씨름을 했다.

너네 엄마가 너네 사이 안 좋은걸 가지고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는데 죽고 나니 사이가 좀 좋아지는 줄 알았더니 또 똑같구나

엄마의 죽음과 별개로 동생과 나는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고 각자의 직업 특성상 굳어진 말투가 있어서 서로 뭐가 잘못인지 모르고 다투는데 문제가 있다.


사건의 발달은 이랬다. 동생은 훈련이 있어서 엄마 생일을 당겨 제사 지내길 원했고 우린 그렇게 했다. 나는 남동생이 8월 7일로 날짜를 옮기고 나서도 몇 번씩이나 되묻기에 날짜를 인지 못한 것이라 여겼다. 행사가 다 끝난 뒤 엄마의 본 생일을 잊었을 것 같았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본인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까먹으니 내가 알려주기 일쑤였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다.

사실 엄마 생일은 8월 19일(음력 7월 12일)이니 당일에 엄마 생각을 한번 해주면 고맙겠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올케도 엄마 생일을 알리가 없을 터인 즉 남동생과 올케에게 똑같은 문자를 하나 남겼다.


밤늦은 시간에 카톡이 울렸다.

" OO(올케)한테 그런 카톡 보내지 마"


뭐지, 이 싹수없는 말투와 반응은. 기가 막혀서 잠이 확 달아나 남편에게 카톡을 보여줬다. 올케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는 걸 알려줬을 뿐이고 그간도 그렇게 알려줘 왔던 터라 황당하기 그지없는 저 문자의 본질에 대해 분노했다.

니 마누라 기분만 중해서 누나 기분 생각 안 하고 이런 카톡 보내지 마라. 걔(올케)도 할 말 있으면 직접 하라고 하고. 난 잘 거니까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본인 누나지 부하직원이 아닌데 내 동생은 직업상 누구를 지시하는 일이 많다 보니 누나한테 말을 함부로 툭툭하는 습관이 있다.


아빠는 내게 짜증을 냈다. 누나가 돼서 참을 거면 좀 끝까지 참지 집안 시끄럽게 왜 싸우냐는 것이었다. 나는 내 동생의 말투가 문제라 기분이 나쁘다 말했고 아빠는 너네 둘이 자꾸 이렇게 싸우면 같이 못 산다며 팽팽히 맞섰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집안의 어른인데 왜 잘못된 것을 교정하려고 하지 않지. 왜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내게만 참을 것을 요구하는 걸까.


며칠을 씩씩거리며 일상 대화만을 하다가도 관련 주제만 나오면 나는 울고불고 맞섰고 아빠는 걔네 살게 내버려 두지 왜 네가 이것저것 알려주다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냐며 화를 냈다. 그렇게 말할 거라면 내게 제발 남동생 이것 좀 알려줘라,  연락해서 알려줘라 그런 소릴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올케한테 뒤늦게 카톡이 왔다.

"저희도 OO(내 동생) 훈련 스케줄 나오면 어머님 생일 전후로 해서 가려고 했어요"


나는 엄마 납골당에 가라고 한 적도 없고 엄마한테 왜 안 가냐고 질책한 적도 없는데 받은 카톡의 내용이 너무나 황당했다. 올케 카톡 한 번에 갑자기 나는 시누질 하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있는 것이다. 내가 올케한테 그동안 부담을 줬나. 뭔가 얘기한 적도 요구한 적도 싫은 내색한 부분도 없는데 왜 저런 반응으로 대꾸를 하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빠는 어제저녁에 내게 말했다. 네 동생은 네가 하나씩 알려줘야 하는 아이라고. 잘 몰라서 저러겠지, 생각하고 천천히 알려줘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한다고. 네가  좀 더 잘 아니까 너더러 참으라고 하는 의도를 모르겠냐고.


올케에 대해서도 결혼해서 우리 집 식구 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날짜를 또 알려주는걸 그냥 알려주는구나 생각하기보단 <성의 없어 보였나 보다> 생각해서 변명하려고 했을 심산이 크다며 아빠의 의중을 설명해줬다. 잘 모르니까, 괜히 책 잡히는 것 같아서 불편했을 수 있다는 설명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와의 전쟁은 끝났고 나는 앞으로 집을 잘 추스르기 위해 어떻게 남동생 부부를 대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봤다. 동생에 대해서는 말투가 싹수없으면 대꾸하지 않으면 될 일이고 올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시집이라 불편하니 관여하지 않기로. 같이 엄마의 죽음이라는 힘든 시간을 거쳐왔는데 올케가 시누이 시집살이한다는 느낌은 주지 않고 싶고 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으니 괜한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알려줘야 할 것들은 아빠를 통해서 알려주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아빠가 나랑 동생일로 스트레스받아하고 우울해지는 것을 원치 않기에 이즈음에서 나도 아빠 화 풀어, 하고 다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빠도 한층 마음이 누그러졌고 저녁식사로는 내가 만든 맛있는 김치찌개를 먹었다. 식구들 중 누구도 더 이상 이번 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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