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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Aug 25. 2021

마음이 평화롭던 오늘,

오랜만에 느껴지던 내 안의 에너지

간절기가 오긴 왔나 보다. 아침에 창문으로 들고나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졌다. 태풍의 영향으로 일시적인 것인지는 몰라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랜만에 개운함을 느끼며 깼다.


재택근무인 남편도 나와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엔 꼭 포옹해주고 세상에 이런 귀여운 것이 없다는 양 볼이며 이마며 눈이며 다정스레 뽀뽀를 해준다. 그러면 나는 잠결에 비몽사몽에도 따뜻하고 안온한 남편의 감촉을 느끼며 잠에서 깬다.


실로 오랜만에 아침에 눈 뜨며 커피 한잔 마시고 여유 부린 뒤에 독서실에 공부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의지 없이 기계적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 안에 잘 살아야지, 하는 에너지와 의욕이 남아있음에 감사했다.


어젯밤엔 독립을 원하는 아빠와 빽빽거렸다.


"불편한 게 없지만 불편한 게 그래도 있는 거지."  


아빠의 말도 안 되는 불편 타령에 질려서 나는 동의 못한다, 난 이 집에서 아빠랑 계속 같이 살아야겠다 눈물을 글썽이며 따박따박 떼를 썼다.


내가 떼쓰는데 놀란 건지 질린 건지 아빠는 강경하게 말하다가 조금 내려놓고 가까이 살면 되지 않겠느냐, 조곤조곤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남편, 이 자식, 갑자기 태세 전환하여 아빠 편을 들었다.


"네가 이기적인 거야. 아버님은 너랑 살기 싫은 게 아니야. 그냥 혼자 고독하게 지내보고 싶은 거야."


안방으로 남편을 끌고 들어가서 앞으로 내가 해주는 밥 안 얻어먹고 싶냐, 치사한 줄 알지만 밥으로 협박을 했다.


"내가 러시아에서 혼자 살 때 있잖아. 나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어. 너랑 사는 게 안 좋은 게 아니라, 남자들은 그런 게 있어. 가끔 혼자이고 싶은 때"


아빠에게 달려가서 협상을 했다.


"아빠, 그럼 나중에 아빠 독립하고 싶으면 집 근처 가까운 데로 얻어서 사는 걸로 약속해. 일산만 고려하지 말고 내가 직장 옮기면 거기에 맞춰서 이사 갈 거니까 아빠도 지역 고집하지 말고 가까운 데로 같이 이사 간다고 하면 아빠의 독립을 나도 고려해볼게."


"아. 알았어. 알았어."


오늘 내 마음에 찾아온 평화는 아마도 독립을 원하는 아빠와의 중간 타협점이 어느 정도 내가 수긍할 수 있는 선에서 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갈등을 수용할 수 없는 정신상태로 살고 있다가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아침에 맑은 기분으로 커피도 마시고 독서실도 다녀왔다. 저녁으로는 순두부찌개와 가자미 구이를 했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기분이 좋았다. 비록 세 식구가 같이 사는 건 이번 집 전세계약기간 만료 때까지라 할지라도 가까이 사는 아빠가 우리 집에 저녁 먹으러 오는 환경이라면 오늘의 세 식구는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변화에 천천히 적응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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