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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02. 2021

내게 Stevie라는 사람이란

제2의 엄마

나는 미국에 엄마가 한분 계신다. Stevie metoyer. 열여덟 살 때부터의 인연이니 처음 만난 이래 벌써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홈스테이 하던 당시 당신 자식들과 대등하게 대해주던 그분의 인품에 내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영어를 전혀 못하던 시절 학교에서 드라마 수업을 들었다. 연극을 하는 수업이었다. 연극 연습을 해서 학부모를 초청하여 연극을 해야 했다. 말을 못 하는 내 배역은 나무 3 정도가 주어졌다. 극 중 배경으로 나무 모형을 들고 쪼그려 앉아있는 역할이었다. 대사는 없었다. 


연극을 보러 올 부모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게 나았다. 돈 들여 유학 보내 놓았더니 초라한 역할을 맡고 무대에 종인 쪼그려 앉아있는 나를 보여주기 창피했다. 극이 끝나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식이나 친구 이름을 부르며 축하했다. 고요한 가운데 내 이름이 어디선가 들렸다. 영어 이름을 쓰지 않아 외국인 티가 팍팍 나는 내 이름을 목청 높여 불러주던 그 사람이 스티비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나무든 꽃이든 극 중에 어떤 초라한 입장이었든 간에 스티비는 연극을 포기하지 않은 내가 대견하다 말했다. 그때 느꼈던 가슴의 온기가 잊히지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우린 오 년에 한 번 정도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편지와 이메일, 전화 등을 이용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엄마나 아빠에게 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나눴고 스티비는 한국생활로 점점 녹슬어가는 나의 영어실력에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늘 진지한 자세로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해왔기에 내 언어가 어눌해졌어도 스티비는 내 말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스티비는 6년 전 내 결혼식에도 흔쾌히 와주었다. 비행기 두 번 갈아타고 무려 이십 시간 가까운 길을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내 결혼식만큼은 꼭 와서 축하해 주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내가 신혼여행에 가있는 동안 인천의 내 집에 기거하며 아빠 엄마와 서울이나 인천 송도, 서해바다를 관광했다. 우리가 돌아와서는 함께 전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한복을 입은 스티비가 고와서 사진을 많이 찍어줬다. 모델이 된 것 같은 기분인데 이런 경험이 많지 않다며 부끄러워했다.


스티비는 엄마를 잃은 나를 안타깝게 여겼다. 엄마의 병세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나는 엄마가 정신병원에 다녀온 얘기며 이런저런 괴로움을 스티비와 그간 다 나눠왔기 때문에 부연설명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담백한 대화가 오가고 스티비는 <너는 내 딸이나 다름이 없다>며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집으로 돌아오라 말했다. 특히 아이를 낳을 때 친정엄마가 없이 어쩔줄 모를 내가 걱정이 되었던지 당신이 한국에오든 내가 미국에 가든 방법을 찾아보자 말했다. 고마웠다.


살면서 누군가 핏줄이 아니어도 핏줄처럼 두터운 애정을 느낀다는건 감사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스티비와 나의 인연같은 것이 누구나에게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십대때 나는 지금보다 겁이 많은 사람이었고 스티비는 간호사라는 본인의 직업에 걸맞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겁 많은 나를 당시에 내가 처한 환경에서 우뚝설수있도록 도와준 스티비. 이후에도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겪을 때마다 나의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기뻐하고 슬퍼해준 사람.


어젯밤에도 스티비는 카톡을 하나 보내왔다.

"Oh Y, you are as dear to me as my own daughter, because of who you are, you will NOT BOTHER me, I will love having you hear w me again, AND to help you with your first baby! What a joy for me and Tony both(너는 내 딸이나 다름없어. 너라는 이유 그자체로 나에게 부담되는건 없단다. 니가 여기 다시와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니. 니가 낳는걸 돕는것도 나나 토니한테는 즐거운 일일거야) "

스티비, 토니, 그리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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