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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Sep 11. 2021

물 흐르듯 살아가리라

보통의 날들에 대한 감사함

남편과 작은방에 함께 있다. 남편은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고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창밖에선 1층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필라테스를 다녀왔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간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아침에 못 가면 저녁에라도 꼭 간다. 살이 빠지고 이런 걸 떠나서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잠시나마 <엄마 생각>을 쉴 수 있어서 정신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매일 가다 보니 필라테스 선생님이 동작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엄마가 죽고 집에서 울며 칩거하느라 안 좋아진 건강을 찾기도 해야 했고 내년 겨울에 윗몸일으키기와 팔 굽혀 펴기를 비롯한 중요한 체력평가가 있어서 기초체력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열심히 하고 있다(올해 필라테스 끝나면 PT 받을 생각이다)


점심으로는 오랜만에 맥도널드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몇 달 만에 처음인 것 같다.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고 싶어서 맛있는 정크푸드가 생각이 났다. 내가 필라테스 가있는 사이 남편이 걸어가서 사 왔다.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나의 토요일은 이렇게 평범하게 흐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에 대한 슬픔에서 눈물은 많이 멎었고 나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게 되었다. 괴롭기는 여전히 괴롭지만 평범함, 그 평범함이라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살면서 특별한 이벤트가 많은 어찌 보면 화려한 삶에 감복했을 때가 있었다. 주말마다 어딘가 좋은 데를 가야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상 말이다. 당시엔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했었는데 엄마가 죽은 날 <나는 이렇게 슬픈데 환하게 웃으며 지나가는 고등학생들을 마주치고> 곧장 어플을 지워버렸다. 그 뒤로 인스타그램도 안 하고 주말마다 뭔가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는 의식도 버렸다.


평범한 삶. 아무 일 없이 흐르는 그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공부를 하려 해도 무슨 일이 없기 때문에 공부할 수 있는 날을 보낼 수 있는 것이고 남편이 대학원 강의를 듣고 있는 곁에 배를 깔고 누워 지금처럼 글도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평범한 나의 하루가 완전히 박살 나는 사건이었던 엄마의 죽음은 내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보통의 날을 감사할 교훈을 주었다.


오늘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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