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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May 02. 2021

너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

#24. 사별한 아빠를 대하는 딸의 자세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남편은 골프모임이 있어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더니 나갔다. 나는 만사가 귀찮아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자는 것도 아닌 채로 누워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당연히 들려야 할 거실 티브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아빠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심장이 내려앉아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때 마침 현관문 비밀번호 패드 누르는 소리가 났다.  띠띠띠띠. 아빠가 까르(강아지)한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까르 아빠 왔다."


엄마가 졸지에 죽어버리고 난 멀쩡한 아빠마저 혹시 잘못될까 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집에 인기척이 없으면 혹시 아빠가 숨을 안 쉬는 게 아닌가, 어딜 나갔는데 연락이 안 되면 혹시 사고라도 난 건 아닌가. 아침에 아빠가 혈압약을 까먹고 안 먹을까 봐 네임펜으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순서를 한 달치 매겨두었다. 뭔가 평소와 조금 다른 행동을 하거나 안색이 좋지 않으면 왜 그런지 어디가 불편한지 대답해 줄 때까지 캐물었다. 이런 것을 정신과에서는 증상으로 진단하고 불안증에 따른 처방을 해주었다. 처방약을 복용한지는 3주째. 아직은 내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아빠가 걱정스럽고 아빠는 이런 내가 걱정스럽고. 그래도 같이 사니까 서로 보살핌을 가장한 감시를 하며 엉겨 붙어 버티고 있다.


어제 아빠와 가구공단과 아웃렛을 다니며 침대를 좀 알아봤다. 까사미아, 에이스, 실리, 시몬스 등등 많이도 다녔다. 비가 와서였을까. 아빠도 나도 감상에 젖어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마다 우리 얘기 같고 엄마가 그리워서 말없이 앞만 보고 목적지를 향했다가 내렸다가 그렇게 종일 침대를 보러 다녔다. 휘트니 휴스턴 노래가 흘러나왔다. 슬픔에 젖어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 와이퍼에 슥슥 닦이는 모습을 보며 한참 노래를 듣다가 노래가 끝날 때 즈음, 휘트니 휴스턴도 죽었지, 마치 대단한 것이 떠오른 듯 감탄했다. 통 내 머릿속에 가득한 <죽음>에 대한 상념 때문이겠지. 


"나는 최○○(나의 외할머니)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내뱉었다. 아빠는 엄마를 연상시키는 무엇도 듣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엄마를 괴롭히던 모든 것을 증오했다. 렇지만 나는 내 안의 분노가 괴로웠고 내뱉었다. 그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죽기 며칠까지도 혈연이라는 이유로 희생만을 강요하그 사람을.


"이모한테 연락 왔었어" 또 내뱉었다.

아빠는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아, 5월 10일이 엄마 49제네>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앞만 본 채 건조한 목소리로 이모에게서 온 문자 내용을 읽어줬다.


"지가 언제부터 언니를 언니 대접했다고. 차단해버려"


나는 이모의 문자가 어리둥절했다. 엄마 49제라서 뭘 어쩐다는 거지. 우리 집에서 할 건지 묻는 건가. 49제가 그날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던 건가. 내가 우리 엄마 49제가 언제인지를 모를까 봐? 나는 이모가 원하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모는 큰언니 딸과 아들인 우리 남매의 결혼식에 받을 건 받고도 나타나지도 축의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엄마와 그 당시에 뭔지 모를 대단한 이유로 "기분이 상했기" 때문이라는데 갑자기 새삼 왜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건지 그 의도가 뭐가되었든 어리둥절하고도 불쾌했다.


오늘 아침이 되어서 아빠는 내게 별 사소한 걸 가지고 오만가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미 아침부터 아빠의 부재로 덜컥 놀랐던 가슴에 아빠의 짜증은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다. 아빠가 무사하면 그걸로 됐어.


"일찍 일어나서 니 서방 커피라도 내주면 얼마나 좋으냐"

"제발 머리말리고나서 니 머리카락 좀 치워."

"너는 기본적으로 청결하지가 않아"


오늘 갑자기 왜 저러나 싶으면서도 속으로 내심 본론이 있겠구나 싶어서 아침부터 뭐에 이렇게 짜증이 나셨을까,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나 이제 상담센터 안가. 가면 리마인드 돼서 괴로우니까"


나는 아빠가 어떤지 걱정스러워서 내가 받는 상담센터에 아빠도 등록시켜놓고 딱 5회 차만 받아달라고 사정사정하던 중이었다. 오랜 세월 가장으로 살아왔으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딸에게 약한 모습 보일 사람이 아닌 아빠에게 대나무 숲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서였다. 오늘은 네 번째 상담일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경감할 즉효약을 원했다. 그러나 상담센터를 한 번이라도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담은 아픈 곳을 수술시켜주는 게 아니다. 연고를 살살 발라 아물게 도와주는 곳이지. 그런데 아빠는 가서 상담 선생님에게 엄마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 것부터가 자꾸만 기억을 상기시켜 싫다는 이유로 갈 때마다  심통을 냈다. 


더군다나 어제는 나 때문에 한 숨도 잠을 못 잤다며 평소보다 더 격한 독을 부렸다. 내가 "그들(외갓집 식구들)"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빠는 내 얘기를 들으면 지난 36년간의 그들의 미친 행적이 떠올라 괴롭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또 아빠와 엄마 사이의 (나는 모르는) 그들의 행적들이 하나하나 생생하여 그지 같은 집구석에 더러운 부모를 만난 죄로 불쌍한 아내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열 받아서 한 숨도 못 자고 뒤척이다 새벽에 일어나 버렸다고 했다.


나는 아빠를 어려서부터 참 좋아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하고 물으면 아빠가 더 좋아서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을 만큼 아빠를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다.


엄마는 수시로 내게 말 해주곤 했다

"그런데 말이야. 넌 꼭 알아야 해. 아빠가 너를 무지하게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야"


죽기 두어 달 전에도 휴직 문제로 꽤나 고심이 깊었던 내게 엄마는 안방 문 앞에서 생긋 웃으면 아빠도 엄마도  많이 사랑하고 있노라고,  얘기해 줬었다. 나는 주중에 회사일로 소진한 에너지를 든든하게 충전하고 인천으로 돌아가 힘차게 월요일 출근을 했다. 참 좋은 시절이었네. 불과 두 어달전 일인데도 무지 옛날 일 같다.


지금은 글쎄, 엄마 잃은 아빠는 어렵고 낯설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불안정해 보이는 아빠의 모습과 어딘가 쓸쓸한 아빠의 뒷모습, 모든 곳에서 엄마의 부재가 보인다. 어떤 얘길 꺼내면 엄마가 연상되는지는 살면서 맞춰본 적이 없었던 딸과 아빠는 참 서로가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린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 아빠를 믿고 사랑하니까. 나는 좀 더 어른의 시각에서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장성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에겐 내가 사랑하는 어린 딸이니, 우린 서로에게 화내고 짜증을 내는 어느 날도 함께 하겠지만 삶의 기쁨과 축복도 함께하며 보살핌을 가장한 감시 속에서 엉겨 붙어 살아갈 것이다. 어쩌다 보니 유언처럼 엄마가 내게 남긴 말처럼,


"엄마 죽으면, 아빠 잘 모셔라"


응 엄마. 걱정하지마. 아빠도. 나도.

엄마가 지금부터 가는 길엔 엄마 좋은 것만 생각하면서

기분좋게 걸어갈 수 있길 딸이 많이 바라.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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