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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Feb 05. 2020

데이비드 호크니, 시선과 세계 사이의 나이테

호크니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데이비드 호크니는 생존해 있는 작가다. 나는 이제껏 단독 전시로는 살아있는 미술가의 그림을 보러 간 적이 없었다. 작은 갤러리에서 하는 개인전 같은 곳은 가지 않았다. 아, 사실 있었다. 한 번.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의 전시였다. 제자로서 예의상 간 자리였다. 그분은 추상화를 그리셨고 나는 제목 빼고 읽어 낼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사실 내가 살아 있는, 오늘날의 작가의 개인전을 피하는 것은 제목 빼고는 이해할 단서를 얻기가 어려운 경우에 부딪히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미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익숙하고 자료를 얻기도 쉬운 작품만 관심을 가져왔다. 미술사적 의의에 대한 설명이라면 학교 강의나 책으로 접할 수 있지만 현존하는 오늘날의 작가의 이력과 작품세계를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어려웠다. 미술사란 모든 작가와 작품을 다루지 않으며 핵심적이라고 생각되는 기준으로 해석되어 정리된 흐름을 기록함으로 더더욱 그랬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미술사적 위치를 평론가도 학자도 아닌 내가 지금 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단순한 기준을 적용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 전시가 좋았는가? 개인적으로 좋았다. 무엇 때문에 좋았는가. 일단 전시 구성이 좋았다. 사실 구성 방식은 단순하게 학생시절부터 최근까지 시간에 따른  작품세계의 변화에 따라 이어져 있었다. 이 방식은 다채로운 작품을 감상 하면서 한 사람의 변화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첫 번째 섹션인'추상표현주의에대한 반기'는 음산한 그래피티 같은 분방한 느낌이었다. 그는 그 안에 성과 사랑을 녹여놓았다.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크게 미친 것 같았다. 중년이나 노년에 이를 때보다 경험이 적어서 일까 청년 시절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날을 세워 의식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섹션까지 보면 노년에 이른 최근의 작품에서는 성정체성에 대한 의식은 표면에서 사라져 있었다. 여하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난봉꾼의 행각'과 '첫번째 결혼','두번째 결혼'이었다. '난봉꾼의 행각'은 나도 인상적으로 보고 기억하던 호가스의  동명의 연작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어서 더 눈이 갔다. 이 연작은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이런 작품을 호크니는 현대 뉴욕에 도착한 동성애자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해석해 내었는데 원작의 꽉찬 구도의 유채 그림과 달리 단순한 구도에 상징적인 표현의 판화가 주는 느낌이 신선했다. '첫번째 결혼'과 '두번째 결혼'이 눈에 뛴 것은 동성애자 남성인 젊은 호크니의 눈에 비친 결혼과 여성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결혼'에서 신랑의 두상이 현실적인 피부색으로 채색된 반면 옆의  신부는 벌건 피부색에 여러 원색으로 원시적인 느낌으로 신체가 묘사된 것은 어째서 였을까. 그는 결혼을 비롯한 제도권에 자신이 뿌리 박혀 있지 못한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섹션의 제목은 '로스앤젤레스'였다. 화가가 그곳으로 이주하면서 받은 환경의 영향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수영장과 스프링쿨러가 즐비한 동네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 시기의 그림에는 그 인상들이 담겨있었다. 여기서 인상에 남는 작품은 '더 큰 첨벙' 이었다. 크기가 이 섹션 안에서 가장 크기도 했고 이전과 달리 밝아진 색감과 평면적이고 단순한 형태가 가장 잘 드러나 보였다. 사람에게 환경이라는 요소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그 중에서 기후와 자연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았다. 따뜻한 기후 일수록 느긋하고 밝은 색상을 선호할 것 같다. 이전 시기의 어두운 느낌과 확연히 달라진 것도 기후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 시기에도 그는 판화 시리즈를 만들었다. '카바피의 시 1편을 위한 삽화' 라는 제목이었는데 분명한 선으로 두 남자의 애정관계를 그린 이 작품들은 '난봉꾼의 행각' 과 달리 분명한 묘사를 하고 있어서 해석하는 재미가 없었다.


 세 번째 섹션 '자연주의를 향하여' 에서는 보다 사실적인 화풍으로 변했다. 이 섹션에는 인물을 그린 스케치와 유화가 많았다. 큰 캔버스에 그려진 2인 초상화들 속에 그의 지인과 가족의 모습 앞에 섰을 때  움직이는 동영상이나 구체적인 언어가 아닌 하나의 정지된 화면에 인물의 개성을 나타낸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될 한 점을 위해 여러 장의 스케치들이 있는 걸 보면 그가 많은 고민을 거듭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인물의 표정, 의상, 소품, 공간 배경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인상을 뜯어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 내 마음에 든 작품은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이였다. 이 작품은 미완임에도 묘하게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해서  호기심이 일었다. 너무나 달라 보이는 스타일의 두 남자가 화면 왼편에 있고 오른편에 빈 벽이 있는 그림은 문가에 기댄 젊은 남자의 사선이 된 자세와 한 쪽으로 쏠린 구도 탓에 균형감이 깨져서 정적이고 차분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이 느껴졌다. 설명을 읽기 전 안 어울리는 듯 다르면서도 긴장감을 형성하는 두 남자의 관계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둘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납득이 갔다. 화가 자신의 부모님을 그린'나의 부모님'역시 흥미로웠다. 단정한 자세로 앉은 어머니 옆에 놓인 단순한 디자인의 흰 화병에 꽃인 튤립들이 주는 깔끔한 인상이 선명했고 그 옆에 몸을 구부리고 미술 책을 보고 있는 아버지와 중앙에 놓인 거울에 비친 명화의 이미지가 아버지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 같아 그가 관자에게 부모님을 직접 소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묘사와함께 화가만의 느낌이 녹아있어서 더 기억에 남았다. 이 2인 초상 시리즈가 테이트 갤러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브로슈어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섹션은 '푸른 기타' 로 피카소에 대한 경외심과 탐구의 시도가 담긴 작품들이 있었다. 푸른 기타는 피카소가 젊은 시절 그린 청색시대의 작품 중 하나인 '기타 치는 눈먼 노인'에서 가져온 이미지이다. 미국의 시인 월러스 스티븐스는 이 그림을 보고 '푸른 기타를 든 남자'라는 시를 쓴 바가 있었다. 호크니 역시 이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어 푸른 기타를 모티브로 푸른색이 들어간 일련의 판화들을 만들었다. 거기다 한 그림에서는 피카소와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자신을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려 겸손과 존경을 드러내 놓았다. 그런 행동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요즘말로 '빠돌이' 의 심취를 보는 것 같았다. 락 스타와 같은 피카소라.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은 딱히 없었지만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며 한 분야에서 그 이름만으로 대명사처럼 된다는 건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피카소처럼 호크니도 다양한 시기를 거쳤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다양한 시도가 모두 높이 평가를 받을 만한 걸까. 어느 한 시기를 기점으로 유명해지면  어릴 적 스케치까지도 조명 받게 되는 걸 보면 이름의 가치가 크게 작용하는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뛰어난 화가라고 모든 작품이 높은 가치를 지닌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도 피카소의 것이라면 낙서도 값비싼 작품이 되겠지만 말이다.


 다음 섹션인'움직이는 초점'과'추상' 에서도 작풍은 변해있었다. 전자에서 그는 사진, 연극무대 디자인, 중국의 두루마리 회화 등을 연구하며 입체파를 떠올리게 하는 다시점의 초상화와 강렬한 색의 정물화와 실내풍경을 그렸다. 이 중에서 자신이 묵었던 멕시코 아카틀란 호텔의 중정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디자인을 위한 이미지 같기도 하고 무대 배경 같기도 한 느낌은 다채로운 색 탓에 더 튀어 보였다. 그런 시기 후 그는 완전한 추상으로 갔다. 그는 추상화에서 단순한 색과 면뿐 아니라 공간감을 나타냈다. 완전한 2차원만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그러나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내가 느끼는 그의 그림의 매력은 이지적인 느낌이나 완결성도 아니고 전위성도 아니고 회화의 순수성도 아니었다. '현대 미술 치고는 쉽다, 빈틈없이 매끈한 관념이 아닌 관자가 들어갈 느슨한 틈이 있다'가 나의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추상보다 로스엔젤레스 시절과 자연주의 시절 그림이 더 나에게 와 닿았다.


 마지막 섹션 '호크니가 본 세계'에는 노년이 된 근래의 호크니의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요크셔 교외로 온 그는 그곳의 자연을 50여점의 캔버스를 모아 한 화면으로 그렸다. 디지털 사진기술을 이용해서 그린 이 작품을 실물로 보았을 때 그 압도적 규모가  한눈에 들어오게 하기위해 뒤로 한참 물러나야 했다. 그보다 앞쪽에 역시 많은 캔버스를 이어 그린 거대한 그랜드 캐니언 그림도 있었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요크셔 교외의 나무들을 그린 이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였다. 겨울의 헐벗은 나무, 그 중에서도 중앙의 가장 큰 나무는 노인이 된 화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는 자신이 본 세계를 화폭 위에 옮기며 이 전시의 섹션들이 보여주듯이  나이테를 불려 온 것이다. 그런  호크니는 전시 서문에서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인물을 바라볼 때 그곳에는 천개의 시점이 존재한다."

라고 말한다. 대상에 대한 그의 움직이는 시선들이 구현한 그림들은 쭉 돌아보고 나서 생각해 본다. 보는 것으로 대상은 고정되지 않고 실은 변화하는 것이라면 내가 본 그의 그림들도 변화한 것이겠구나. 그가 죽더라도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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