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dion Feb 04. 2020

문고리를 더듬는 장님처럼

피카소와 큐비즘 전시 감상문

 보는 것이 온전한 기쁨일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인가. 보인다고 다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인가. 부끄럽지만 나는 그림을 볼 줄 모른다. 그런 내가 왜 입체파 전시를 택했느냐, 부끄럽게도 그건 포스트모던 이후의 다단함보다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사조 하나를 택하는 게 더 참조할 내용이 많고 그나마 쉬울 것 같아서라는 얄팍한 속셈에서였다. 그런 꿍꿍이로 전시장에 도착했고 막상 그림들과 대면하자 어떻게, 무엇을 봐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잠시 후 많은 관람객들이 모인 가운데 도슨트의 해설이 시작되었을 때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의 혼란이 가라앉혀지고 무언가가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희망이 인파 속을 버티게 했다. 

 

 큐비즘은 20세기 초반 후기 인상파 화가 세잔과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미술 사조이다. 대표적인 화가는 브라크와 피카소가 있다. 특히 이 사조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꼽히는 피카소의 1907년 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이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기성작가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브라크와 피카소가 의기투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입체파가 시작되었다. 그들 이후에 입체파를 자청하는 다른 작가들 역시 등장한다. 섹시옹 도르라고 불리는 이 작가들은 구상적 표현과 장식적인 표현 등 피카소와 브라크와는 다른 각자의 개성이 담기 스타일로 큐비즘을 소화해 냈다. 이들 중 일부는 더 나아가 오르피즘이라 불리는 경향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큐비즘의 시대 자체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는 변화하였고 더 이상 이전의 방법론은 시대에 맞는 해결책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도슨트는 기운차게 설명을 풀어나갔다.

 

 그러나 설명을 듣지 않을 때 미술작품 앞에서 당장 무엇을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개운한 해답을 찾은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사실 들어도 그랬다. 오디오 가이드 에서는 화폭 위의 구도와 색채 사용과 같은 형태와 그 효과, 그림이 그려진 연도에 대한 설명이 흘러 나왔지만 그 음성을 따라 작품을 훑어보면서도 그 시선은 쉽게 휘발 되어버리는 조각조각의 감각과 그것이 시간에 걸러지고 남는 찌꺼기 같은 불완전한 인상만이 남을 뿐 어떤 감동도 정리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림을 향한 시선은 표면에서 미끄러져버리는 듯 했다. 

 

 그 동안 나는 이미지란 어떤 기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푸른색이 성모의 색이고 해골이 죽음을 뜻하고 하는 식의 도상학적인 측면이 곧잘 떠올랐기도 했고 그 태생이 되는 사회와 작가에 대한 뒷이야기가 따라온다는 면에서 다층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서 이야기로 접근하는 인터페이스처럼 느껴졌기도 했다. 나는 기호를 해석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문자를 읽고 내용을 엮듯이 알아내면 이야기가 흐르고 있으리라 여겼지만 어느 시점에서인가 해독법을 알 수 없는 암호를 마주한 것 같은 경우가 생겼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는 큐비즘에 영향을 준 세잔의 작품이 있었다. 그 안에는 세잔이 방문한 지방의 풍경이 나무와 집들이라는 알아볼 수 있는 형체로 그려져 있었다. 그 안에 담긴 풍경은 핍진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집은 집이고 나무는 나무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그림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시골의 정경이었다. 그 바로 옆의 그림들은 입체파와 같이 그 영향을 받았고 보다 간결화 된 묘사와 대담한 색채였지만 무엇을 그렸는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보였고 과일은 과일로 보였다. 물론 이 그림들은 르네상스나 신고전주의 작품처럼 신화나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리지 않았기에 보편적으로 알려진 서사적 이야기를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정물화들 쪽으로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형태는 해체 뒤 재구성되어 있었고 시선은 이 수수께기 같은 파편더미 위로 바쁘게 오가게 되었지만 많은 경우 제목을 보고서야 그 선과 색이 가리키는 사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더 끌려올라오는 이야기는 없었다. 만약 바니타스 정물이라면 각각의 사물들이 상징을 이루며 세속의 부귀영화는 덧없다는 메시지를 읽었겠지만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어디에 있는 걸까. 하다못해 아쉽게도 이 전시에 없는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라면 그림 속 여자들이 아비뇽 사창가의 매춘부들이라는 사실이나 아프리카 가면에서 따온 여자들의 괴이한 두상의 튀튀한 색상이 매독에 걸려서라는 추측 등을 떠올렸겠지만 이 그림들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는 그 이미지를 보는 즉시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지 자체 외에 부가적인 정보가 수반되어야 가능해지는 걸까. 그림도 기호라면 해독을 위한 규칙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규칙이라는 것이 늘 한결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라고 했다. 또한 기호의 의미란 전체의 체계와 관계에 의해 결정되기에 체계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의미 역시 변화한다고도 했다. 그림이 주는 의미가 절대적이지 않다면 더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순수한 조형적 요소 너머의 맥락이 될 텐데 그렇다면 대체 화면을 어떻게 보아야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는 걸까?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섹시옹 도르 섹션으로 가면서 발견한 다른 입체파화가들 중 페르낭 레제나 로베르 들로네 등의 뚜렷한 개성에서 직관적인 미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서 의미를 읽을 수 있느냐는 의문은 떨쳐지지 않았다. 해석이 나의 몫이 맞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오르피즘 섹션의 대형 그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규모의 그림은 이제 기하학적인 형태와 원색적인 색으로 완연히 추상화되어 있었다. 이것의 기의는 무엇인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강렬한 색채의 선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원이 주는 율동감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결국 그림들 그 각각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는 의문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그려졌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은 알 듯도 같았다. 20세기로 접어든 시점에서 이전시대로부터 인식의 전환을 이루어 냈다는 큐비즘의 의의로 볼 때 시대의 흐름 속에서 미술의 추구점이 변화해 왔음에서 기호의 체계, 그림과 그 기의 사이의 관계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한 조형적 요소, 표현기법이 담아내는 내용은 점점 사실감 있는 재현을 버리고 표현과 밀접해지며 더 직접적으로 의미관계를 연결시켰기에 나의 이전 시대 회화에 익숙한 독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면 대체 현대 미술을 볼 때, 시각이 포착한 작품의 물적 실체로 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의문이 남는 전시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뻔해진 소재에서 신선도 유지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