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Part 3. 나와 나 사이의 틈을 들여다보며
미소 띤 평온이 영혼을 깨워 분노와 불안의 표시는 하나도 남지 마라
-모차르트의 가곡 「고요함은 미소 짓고」 중에서-
짙은 파란색 어둠이 불 꺼진 방안에 가득 차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방안을 돈다. 갑자기 그 선율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이어 웜이다. 오디오를 틀지도 않았는데 뇌 속에서 계속 음악의 한 부분이 재생되는 현상. 금관악기가 소리를 높였다가 사그라들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중간중간 음을 길게 끌더니 현악기가 밑바닥에서 떨면서 올라와 다 같이 크게 치솟았다 멈추는 여운이 뿌연 새벽안갯 속에 도사린 암시 같다. 암시는 비극적이다. 이건 어디에 나오는 음악이었지? 맞아, 리골레토. 리골레토 서곡이다. 서둘러 휴대폰을 찾는다. 그리고 리골레토의 서곡을 튼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음악은 휴대폰으로 재생되는 음악에 부딪혀 사그라든다. 음악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리골레토는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다. 만토바 공작의 궁정 광대 리골레토는 바람둥이인 공작이 여자를 유혹할 때마다 여자의 아버지와 남편들을 광대라는 위치를 이용해 조롱한다. 감히 공작에게 맞서기 어려웠던 귀족들은 리골레토를 멸시하며 그를 골려줄 기회만 찾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백작이 만토바 공작이 딸을 유혹한 것에 항의하러 왔다가 쫓겨난다. 백작은 공작과 리골레토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공작과 달리 리골레토는 저주가 이뤄질까 염려한다. 리골레토에게는 질다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는 공작이 딸에게 손을 뻗칠까 두려워 자신의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고 교회 외에는 외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작과 딸은 교회에서 만나게 되고 질다는 공작에게 반하게 된다. 공작은 신분을 숨긴 채 몰래 질다를 찾아와 만난다.
그리고 그날 질다를 리골레토의 애인으로 오해한 귀족들이 그녀를 납치해 만토바 공작의 궁에 데려간다. 리골레토는 질다를 찾아 궁으로 가 찾아다니다니 끝에 질다를 되찾지만 딸이 공작에게 겁탈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심을 품고 백작의 저주가 공작에게 전부 돌아가도록 하기로 다짐한다.
리골레토는 전에 만났던 청부 살인업자의 집에 찾아가고 그때 마침 그 집에 만토바 공작이 와있었다. 공작은 청부 살인 업자의 여동생을 유혹한다. 그 광경을 질다도 숨어서 본다. 공작이 자러 간 후 리골레토와 청부살인 업자의 거래가 성사된다. 그러나 청부살인업자는 여동생의 간청으로 자정 전까지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대신 죽이기로 약속한다. 이 말을 엿들은 질다가 공작을 구하기 위해 집으로 들어가 죽는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리골레토는 청부 살인업자가 건넨 자루를 던지기 위해 강가로 가지만 만토바 공작의 노랫소리를 듣고 놀라 자루를 열어보고는 절규한다. ‘아, 저주다’하고.
서곡이 끝나고도 음악은 계속해서 재생된다. 리골레토가 딸을 찾아다니는 부분을 찾아 듣는다. 처음 귀족들과 마주친 리골레토는 태연한 척 라랄라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니고 귀족들에게 비아냥대다가 저주하고 그러다 애원하며 딸의 행방을 묻는다. 그 변화가 절절한 느낌을 준다.
리골레토는 병들고 기형에 불구 인대다 고통스러워도 늘 익살을 떨어야 하고 그러면서 비웃음 받는 광대라는 데서 오는 비참함으로 비틀려 세상에 적의를 품고 있다. 그런 리골레토기에 오히려 단순하게 선한 인물보다 더 그의 불행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 노래를 들으니 막혀 있던 것이 풀리는 것 같다. 유쾌하지 않은 비극인데 어째서일까.
이 오페라의 극적인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아래로 가라앉는 묵직함을 신경으로 느낀다. 그 묵직한 알 수 없는 덩어리는 내 안에서 와서는 뒷목과 가슴 사이에 얹힌다. 뒷목에서부터 시작되어 서서히 가라앉는가 싶더니 목 중간에 걸린다. 그러다가 쿵하고 가슴에 안착하고 다시 아래로 중력을 따르듯 끌어당겨지는 감각이 든다. 그리고......
“아직도 안 자고 있니”
불이 켜지고. 어머니가 내 뒤에 서 있다. 어머니는 잠이 덜 깨어 부스스한 모습에 갑자기 켜진 불빛에 찌푸린 눈이다
“ 안 주무셨어요?”
어머니는 대답이 없이 찌푸림을 풀고 나를 뚫어져라 본다.
“요새 무슨 일 있니?’
“아니요.”
어머니가 내 앞으로 걸어온다. 손을 내밀어서 내 턱을 쥔다. 어머니의 눈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 너머를 샅샅이 들여다보려는 듯이. 나는 어머니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눈은 갈색이다. 검은 눈은 사실 갈색이다. 사람의 홍채는 까만색이 없다. 어머니 눈에도 내 홍채가 갈색인 게 똑똑히 보일까. 어머니가 손을 내려놓는다. 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는다.
“ 엄마가 널 사랑하는 거 알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나도 사랑해요? 그게 정답인가? 어머니는 무언가 감지한 것인가. 무엇을 감지한 거지. 어머니의 손바닥이 내 등을 쓸어내린다.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 어머니의 냄새가 콧속에 들어온다. 어릴 때 내 어떤 동요든 가라 앉혀주던 그 냄새다. 냄새를 담은 숨이 가슴에 찬다.
내일 출근하려면 주무셔야 할 텐데. 어머니는 계속 깨어 있었던 걸까. 깨어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지. 나는 무슨 생각을 했지.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지금이 몇 시 일까. 자정이 넘었으니 이미 새 하루가 시작된 거겠지. 어렸을 적에는 새벽을 본 적이 없었는데. 베개에 머리를 붙이자마자 잠들기 바빴다. 생각이 많지도 않았고. 어릴 적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엄마도 어릴 적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우리 모두 한 때는 아이였는데.
“엄마.”
“응”
불러놓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아무 말이나 해.
“ 이어 웜이라는 게 뭔지 알아요?”
“아니. 뭔데?”
“영어 표현인데. 왜 그 있잖아요, 음악을 틀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특정 음악이 반복되는 현상이요.”
“그래.”
“엄마도 최근에 그런 적 있어요?”
“응”
“어떤 노래요?”
“장사익 노래.”
“맞춰볼까요? 찔레꽃이죠?”
“ 어떻게 알았니?”
“차 안에서 그것만 반복해서 틀잖아요. 그 정도면 인이 박힐 만하지 않나.”
“그렇구나.”
엄마가 말할 때마다 어깨가 울린다.
“ 엄마.......”
다음 말은, 미안하다인데. 잘 안 나온다.
“팥빵 맛있었어.”
“다행이네요.”
시골 생활, 시장에서 만든 팥빵, 장사익의 노래, 뭔가 일관성 있네. 어머니답다. 내가 아는 한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지만 나는 내가 아는 어머니가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아는 부분만큼의 나를 나로 생각하겠지. 그 나는 과연 내가 아는 나와 얼마나 다를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는지 어머니는 모른다. 나 역시 어머니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과 내 말의 뒤에 말 그대로의 의미 이외의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말로 명시되지 않은 그 무언가를 감지한다. 이건 착각일까? 나는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암울하다는 느끼고 있지 않았나. 나는 감성 적여지는 것을 경계하려면서도 알지 못함으로써 오는 부정적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아니, 정말 문제는 알지 못함에서 왔을까?
“엄마”
“응”
“ 난.......”
말하지 않아도 될까? 아니, 때로는 말을 멈춰야 할 때가 있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 찰나의 생각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피와 살을 지녔다.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다. 나는 제자이고 친구이고 연인이었고 이웃이고 손님이고 시민이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산채로 통속에 외로이 담긴 하나의 뇌가 아니다. 어머니의 팔 안에서 나를 당기는 중력은 그대로다. 내 몸의 무게. 살아 있는 한 나는 이것을 져야 한다. 그래서 그 무게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유혹적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머릿속의 말이 그치겠지. 침묵. 침묵은 끝이고 단절일까.
“ 노래가 멈추면 노래는 사라지는 걸까요?”
“무슨 말이니?”
“ 예상치 못한 때에 이어 웜이 되어서 다시 나타나는 걸 보면 노래는 침묵으로 들어가 있을 때도 여전히 존재하는 거 같아요.”
“ 기억 속에 남아있지. 네 외할머니가 부르시던 노래를 엄마는 아직도 기억해. “
“ 아직도 엄마 머릿속에서 안 사라지다니 대단하네요.”
“얼마 전에 이모랑 강변 산책로를 걷는데 웬 할아버지가 그 노래를 크게 틀고 지나가는 거야. 그때 둘이서 마주 보고 웃었지.”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머니의 입가도 움직인다. 왜 이러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훗날의 어느 날 불쑥 찔레꽃이 울려 퍼지고 나는 웃는다. 그때 어머니는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 침묵 속에서 되살아난다. 어머니와 나를 잇는 흔적이. 이어져 있다. 나 역시 이어져 있다. 침묵 속에서도 생각은 이어진다. 생각은 외부와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세상과 나는 이어져 있다. 그 이어짐의 끝에는 미소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미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 통 속의 뇌가 나을까 살과 피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나을까. 다시 미소 짓는 순간이 오는 한 미소는 사라진 게 아니다. 왜인지 알지 못해도 미소는 지어진다. 문제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 아닐까. 몰라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아직 미소 짓는 법을 잊지 않았구나.
“이제 그만 눕자.”
“응”
어머니가 포옹을 푼다. 어머니에게 이끌려 나는 자리에 눕는다. 어머니가 스위치로 걸어간다. 불이 꺼진다. 어머니는 내 옆에 몸을 뉘인다. 어쩌면 이제 그만 잠이 들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고르게 흘러나온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다시 들이쉬고 내쉬고. 내 숨소리가 거기에 서서히 맞춰진다.
날개가 달린 머리에 양귀비를 꽂은 잠의 신 히프노스. 히프노스가 잠드는 동굴 입구에 양귀비가 자란다. 사라진 딸을 찾느라 잠을 자지 못해 지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히프노스는 양귀비 열매를 내민다. 열매를 씹은 여신은 그제야 잠이 든다. 양귀비꽃은 붉다. 붉은 양귀비꽃들이 한가득 핀 꽃밭이 펼쳐진다. 저 너머로 머리에 날개가 돋은 남자가 서 있다. 저기로 걸어가면 쉴 수 있을까. 보라 빛 하늘 아래 양귀비꽃들이 한들한들 바람에 움직인다. 저 붉은 꽃밭 너머는 꿈인가. 만약 그렇다면 무슨 꿈을 꾸게 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