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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Mar 13. 2020

말이 지나갈 때

단상08

말이 몰려온다. 붐비는 시각 지하철을 타면 사람이 아닌 말이 몰려온다. 그것은 규칙적인 기계적 진동과 함께 토막토막 잘려 포장된 염가 매대의 생선처럼 쌓인다.


말이 몰려오는 전조, 그건 어릴 적 들었던 이제는 희미한 대숲의 댓바람 소리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오래, 깊이, 10년 된 레인지 화구의 그을음처럼 달라붙는다. 어쩔 수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사람들이나 어쩔 수 없이 말이 배제되어야만 하는 장소의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소리는 보이는 형태도 무게감도 없이 빈 곳을 채워주기에 성긴 그물코 사이를 보이지 않게 지탱한다. 정숙의 요구는 행과 행을 잇느라 금세 인내의 잔이 간당 거리는 도서관 안의 사람들처럼 과도한 감각과 사고의 쏠림현상을 지탱하기 위함이다.


책을 읽는 동안의 쏠림은 일시적 현상이라 친다 해도 그 밖의 어떤 특정한 것들이 너무 잔뜩 차오르면-산소결핍으로 자꾸 입이 쩍쩍 벌어지는 훈화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가발에 눈이 붙박여 손이 자꾸 움찔거린다든지 따위의 강박이- 역류와 함께 아주 사실적인, 실질적 피해가 스스로에게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균형을 맞추려 입을 열거나 다문다. 누가 약속을 한 게 아니라도 너나들이.


나는 가끔은 말이 없는 세상을 꿈꾼다. 어느 글에서  물질하던 해녀 어머니의 태에서 바로 바다로 떨어졌던 기억을 떠올리던  대목이 생각난다. 푸른 물속에 깊이 잠기는 그 묘한 느낌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손짓 말을 날리고 입술에서 말을 읽는 사람들의 세계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침묵의 세계는 고된 현실이기도 할 것이다. 불편 부당함의 한 형태이기도 하고.


내가 지어낸 말은 침침한 소극장의 반원형 무대 위에 올려졌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무대에 조명이 켜지자 젊은 남자가 홀로 일어난다.'말이 몰려온다 '라고 젊은 남자인 해설자가 책을 들고 나타나 읊는다. 곧이어 가면을 쓴 7명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어느 밤, 잠깐 졸았다 일어나 보니 버스가 외진 곳에 멈춰 선다. 낙석 때문이라고 기사가 말한다. 인근 산장에 도착한 일곱 사람이 수다를 떤다. 그러다 산장에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말을 빼앗기게 된다. 공포에 질린 이들은 한 사람씩  지목해 가면을 벗겨버린다. 범인이라고 오해하고 가면을 벗기자 젊은 아가씨 가면 속에 늙고 추한 남자가 있다. 그런 식으로 우왕좌왕하다 드디어 범인을 잡아내 가면과 외투를 벗기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놀란 사람들 앞에 해설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들은 관객 하나를 무대 위로 올려 입 물리게가 달린 가면을 씌우고 해설자의 말에 따라 움직이게 한다. 해설자가 무대로 나오자 그의 입을 통해 관객의 목소리로 해설자가 아닌 말을 빼앗은 목소리가 나타나 관객을 희롱한다.


"어때 이 연극은 말이 안 되지 않나?"    ​


이 대사를 끝으로 막이 내려간다. 말은 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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