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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Apr 06. 2020

인형의 집 속의 8명의 여인들

여성성의 과장과 여성성의 재전유




8명의 여인들, 2002, 프랑소와 오종



진한 원색의 50년대 풍의 의상들, 연극무대 같이 꾸며진 세트 위에서 8명의 여인들이 노래하며 뱅글뱅글 돈다. 한 편의 미스터리 극인 동시에 코미디 극이기도 한 이 영화는 과장되고 신파적이지만 웃기다. 오히려 대놓고 웃기려는 것보다 그런 심각한 치정과 막장의 전개를 인형의 집 같은 의상과 무대로 감싸고 뜬금없다 싶어 이질적인 노래와 율동의 끼어듬으로 몰입하지 말고 관찰하게 만든다. 떨어진 마음의 거리로 보는 관찰은 화려한 여덟 여인들이 가장의 죽음과 함께 꼬삐 풀려 발산하는 고성과 욕망을 희극적인 몸짓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 여덟 여인들은 모두 한 남자, 이 집의 주인이자 살인의 피해자 한 사람을 바라본다.(가정부 샤넬은 예외로 보이지만 뭐, 결말에 가서는 그녀도 어떤 모종의 감정을 그에게 투영시키고 있었으니까) 초반의 수상쩍은 여인들의 행동은 서서히 비밀의 폭로로 이어지고 중반까지만 해도 한 남자와 얽힌 저마다 사연이 있는 가엾은 여인들처럼 비치게 한다. 하지만 마지막을 향해 치달을 쯤에 그녀들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했을 뿐이었고 이 집의 가장은 그들의 욕망을 위해 역이용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아내도 정부도 그를 짝사랑한 처제도 관대함을 베풀어 거둬준 장모도 여동생과 딸들도 그를 사랑해서 매달린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 쓰라린 진실과 파산뿐. 결국 이 여덟 여자에 의해 그는 자신의 머리를 쏴버린다. 범인은 여덟 명 모두인 살인 아닌 살인 사건이었다.


캐스팅만 보면 쟁쟁한 여배우들이 여덟이나 무더기로 등장해서 여성 간의 우정이나 여성주의적 시각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는 '사실 여자란 -다'라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담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포인트는 전복에 있는 것이 아닐까?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권력이 사실 환상이고 그의 밑에 있는 여인들이 얌전한 순응자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지닌 존재로서 오히려 권력구조를 역이용하고 있었다는 뒤집힘 말이다.  


오종의 작품들은 대체로 자극적이기만 한 듯싶다가도 그 밑에서 전복을 통해 제법 신랄하게 주제를 짚어내는 양상을 보인다. 메시지가 직접적이고 교육적인 풍미의 작품들에 비하면 일견 유치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특유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찾아보게 된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도덕적 균형감각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인형의 집을 연상시키는 컬러풀한 미장센과 노래를 통한 과장이 여성성과 가부장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감독이 단순히 여성차별에 반대의사를 던진다거나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의 고정된, 오래된 보수적 통념을 비틀어봄으로써 단순하고 1차원적인 개념에 틀어박히지 말자는 지적으로 읽는 편이 감독의 의도에 좀 더 부합하리라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예로부터 여성이 생존이나 권력행사를 위해 택하는 노선은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남성 우위의 체제에 순응하거나 그 규칙 안에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비공식적인 힘을 행사는 길과 직접 자신의 권리를 외치며 평등을 위해 동등해 지려 노력하는 길일 것이다. 후자의 방식은 보다 근래에 시작되었던 데 비해 전통적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전자의 길을 주로 택해 왔었다. 권리를 지닌 인간으로서 남성과 같다는 점을 강조하는 흐름이 현대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같다는 측면 만이 아니라 여성의 다른 특성, 여성성을 통해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근대성의 문제점에 대항하자는 갈래도 생겨났다.


그러한 방향은 여성만의 특성을  내세우는 점에서는 과거 여성들이 기존의 가부장제 아래에서 전략적 자세로서 이용되었던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그리는 20세기 전반기 풍의 여성성의 과장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실 오늘날의 흐름에서는 여성성의 대립항으로서 근대성을 세우고 비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런 가운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우리는 여성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여성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도 있고,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진화론적으로 필연적이니 인정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안에서 궁극적 제시는 당장의 결론이 아니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을 내놓으려는 게 아니다.결론을 미리 내려놓기보다 생각을 해보도록 지적함으로써 유도한다. 메시지를 찾고 답을 고민하는 일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진다. 해석에 상관없이 영화는 연극적인 무대의 막장 드라마로서도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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