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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Jul 23. 2020

우리에게 일상 에세이, 감성 에세이가 필요한 이유

스스로의 감정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쉼표

얼마 전부터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일에 집중할 때 빼고는 별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시야가 좁아지며 생각도 감정도 부정적으로 흐르고 행동은 둔해졌다. 그래도 쓰지 못하면 읽기라도 하려고 안간힘은 써봤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집중해 읽기가  어려웠고 평소 즐겨 읽던 소설들은 몰입을 위해 오븐을 예열하듯이 시간을 필요로 해서 에너지가 더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못 보았던 브런치 에세이들을 추천을 타고 들어가 읽었다. 다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잔잔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아서 "맞아 그렇지"하고 속으로 맞장구를 치고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생생한 대리 체험을 하기도 하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글들을 나는 쓸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신의 내면에 솔직해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게 열등감이나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그런 글을 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내 자신의 감정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쓴 픽션을 보면 짜증이나 화 같은 강하고 부정적인 느낌만을 세밀하게 짚어낼 뿐 평범한 일상 속에 수 없이 스치는 자잘한 감정은 얼버무리듯이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새삼 돌아보니 그랬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날 쓴 일기를 봐도 대부분이 사건에 대한 분석과 마찬가지로 행동 역시 분석하면서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분석에 1인칭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부분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언제나 강박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렇게 가도록 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가 되어있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완벽히 아는 사람은 없고 타인에게 공개된 장에 자신의 감정을 아무 때나 내놓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암묵의 예절이 있지만 적어도 자신만 보는 일기장에는 달라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건지 감정을 인지하는 지능이 낮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잘 와닿는 에세이들을 읽은 후에 근자의 소진 상태의 원인에 이것이 관련 있다는 점만을 어렴풋이 느 수 있었다.


그래서 든 생각은 감성 에세이의 범람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수필에 가까운 일상 에세이 역시 읽어봐야 할 이유 중 하나에 대해서였다. 바로 스스로의 감정에 서툴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내면의 자리를, 일상의 쉼표를 마련해 줄 계기가 되어 준다는 점  말이다.


나는 그런 에세이들을 읽으며 나의 무시해버리고 넘어간 순간들과 감정을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고 인정해주어야만 번아웃 상태로 고갈된 에너지를 되살릴 열쇠를 얻게 될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공감을 불러오는 에세이를 쓰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만큼은 조금 더 건강해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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