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쩜 그렇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도 찬찬한 구석이 없니?"
"넌 어쩜 그렇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도 찬찬한 구석이 없니. 그렇게 엉성하게 마무리 지으니까 첫인상부터가 나빠서 일을 그르치는 거야."
어른들한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반박할 수 없었다. 언제나 꼼꼼하지 못해서 문제였다. 아마 그 원인의 대부분은 미루는 버릇 때문일 것이다. 공식적인 일이 아닌 개인적으로 하기로 한 일 조차도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다가 전력 질주해서 아슬아슬하게 결과물을 내놓다 보니 오류를 검토하고 완성도 있게 다듬는 일은 꿈도 못 꿨다.
이왕 닥치면 몰아치는 대로라면 내가 즉흥적인 흥이라도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나는 정말 내향인 중에 내향인이었기 때문에 그렇지도 못했다. 내향적이면 더 섬세하고 꼼꼼해야 할 거 같아서 그렇지 못한 내가 더 도더라지는 것 같았다. 인간적으로 살갑게 다가오지도 않으면서 일도 거칠게 마무리 짓는다고 더 미움 사고 있는지는 않는지 예민해질 때도 많았다. 그래서 이런 병적인 미루기를 고쳐 보려고 이런저런 책들을 사서 읽어 보고 이런저런 방법을 도입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구나하는 생각에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다. 급기야는 일하면서 엉엉 울기도 했다. 잘못을 반복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 커서였다. 친구나 연인이 나의 모자란 점을 살피며 내대신 챙겨주는 부분이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법이고 온전히 스스로와 마주해야 하는 일에서는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미루는 행동의 원인에는 감정적인 부분이 생각보다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좋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 인 것 같았다. 언제나 최악을 예측하는 버릇 덕에 별거 아닌 일조차 반사적으로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도록 만들어버리고는 했다. 이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나서도 딱히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감정의 작용에 대해서라면 의지만으로 조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더 찬찬히, 꼼꼼하게 다듬고 나서 마무리 짓는 버릇을 가지기 위해서는 미루는 버릇을 고쳐야 하고, 미루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시작도 하기 전의 일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에 따라 자극과 강화를 이용하라는 취지의 대중 심리학 책의 충고를 따라야 할 듯 보였다. 아니면 임상에서 널리 쓰인다는 인지 행동치료나. 그러나 왜인지 이러한 치료를 받기 전에 따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지 않나 싶었다. 어디서부터가 문제 행동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의 개성을 이루는 성격인지.
개인적으로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정말 고쳐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이걸 고친다는 게 근본적인 부분을 180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화시키고 특정 상황에 있어서 덜 고생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문제 해결에 임하면 그 결과가 그만큼에 미치지 못했을 때 부정적인 감정으로 학습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역시 중요한 것은 너무 문제를 크게 생각하거나 작게 생각하지 않는 정도의 조절이 아닐까 싶었다. 어떤 일이든 너무 크게 여긴다면 부정적 감정이 커질 수 있고 작게 여긴다면 문제를 진지하게 임하지 못해 큰 코 다치는 바람에 역시 부정적 감정이 커질 것이다.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하기에 앞서 위와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게 세상의 끝은 아니다. 내가 무언가 실수하고 잘하지 못하게 하는 버릇은 분명 문제지만 그런 버릇이 생기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는 나라는 사람의 고유의 성격이 있다. 하지만 그 성격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나 말살해야 할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된 과정을 이해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작게나마 행동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지.
누가 되었든 문제를 너무 크거나 작게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를 아는 게 현실감각이 아닐까? 주위의 어른들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삶에서 그분들이 겪은 크고 작은 어려움들 마다 저울 눈금을 왔다 갔다 하는 균형감각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계실 수없었을 것이다. 아마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실의 균형감각을 위해서는 손에 든 봉을 움직이는 줄타기 광대처럼 끊임없이 무게 중심이 살아 움직여야 하니까. 물론 그렇다고 내가 찬찬한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본래 성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냥 실수를 상대적으로 덜하게 된다면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