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리석은 청년의 넋두리
사춘기에 나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 어떤 역사와도 문화와도 연결되지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여겼다. 나라는 문양이 지나간 역사와 문화로 직조된 작은 일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게 나 같은 인터넷 세계에 익숙한 mz세대들은 많은 정보를 즉각적으로 찾는데 능하다. 그들의 가성비를 따지는 꼼꼼한 소비 습관 등의 바탕에는 뛰어난 정보검색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때문에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쉽게 믿어버린다는 게 문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항상 똑똑할 수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여기에 경쟁위주의 남과 비교하는 문화와 경제적으로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으나 가난한 유년과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와 폭력의 문화로 인해 정서적으로 스스로에게 무지한 부모의 영향 아래서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수용하며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양극화 사회 속에서 부모의 보이지 않는 유산에 괴로워한다. 그런 이들의 아픔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이들이 늘어난다. 무조건 괜찮다는 진부한 문구의 힐링 열풍부터 원자화된 사회 속의 인간관계에 대한 결핍을 파고들어 모든 것을 착취하는 사이비 종교까지. 그 세대의 일원으로서 객관성을 잃을까 봐 함부로 자신을 위로할 수도 없고 쓰러질 것 같아도 함부로 어디에도 기댈 수 없고 비교하지 않으려 애쓰느라 진취성을 잃는 게 아닌지 고민한다.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 자신의 감정에 무지해서 사소하게 정서적 가해를 가했던 가족, 외모지상주의, 클릭 장사를 부추기고 마는 무심한 충동들, 인터넷 중독. 나와 내 또래를 이루는 요소가 전부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는 너무나 구조가 복잡해져서 부조리의 폭력을 낳으면서도 책임을 분산시키고 만다. 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서 사회의 일원이 된다. 정제 탄수화물, 술, 당분, 카페인, 디지털 스크린 중독으로부터 사소한 위안이 내 일상을 지탱한다. 더욱 교묘해진 광고는 끊임없이 결핍을 자극하고, 소비에 존재의 희망을 걸어본다. 어쨌거나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이상할 건 없다. 공허할 때마다 뭔가를 사고 싶어지는 건 순전히 우연이다. 나는 그냥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만을 인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