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봉은 후숙 과일이다.
수확 직후 바로 먹으면 신맛이 강하지만,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후숙 과정을 거치면 단맛이 살아난다. 박스에서 꺼내 겹치지 않게 펼쳐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서늘한 실온에서 3~5일 정도 보관한다.
더 오래 보관해야 한다면, 실온에서 충분히 후숙한 뒤 신문지나 키친타월로 1차 포장하고 지퍼백이나 비닐에 담아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둔다. 이중 포장을 하면 2주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포장 전에는 한라봉 표면의 물기를 닦아주고, 상처가 있거나 눌린 것은 따로 분리해 두는 것이 좋다.
한라봉 보관방법 정리
- 3~5일 서늘한 실온에서 후숙
- 후숙 후 신문지·키친타월로 감싸 개별 포장
- 냉장고 야채칸에서 2주 이상 보관 가능
명절이 가까워지면 집 안에 만감류 향이 먼저 돈다.
올해는 한라봉 한 박스를 선물받았다. 아이들 가볍게 먹을 수 있게 가정용 한라봉도 따로 주문했다. 거기에 천혜향까지 더해졌다.
작년 겨울, 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설 연휴 전부터 하나로마트에서 사다먹기 시작했으니 거의 한 달동안 집 안에 한라봉 향이 퍼지고 있는 셈이다. 조금씩 사 먹다가 지인의 한라봉 직거래 주문이 시작되자 가정용 한라봉을 아예 한 박스 주문했다. 크기는 작지만 가격은 덜 부담스럽다. 후숙만 잘 되면 충분히 달다. 어쩐지 올해는 가정용 한라봉이 더 달고 맛있다.
1번이 마트에서 산 것보다(같은 농장 한라봉) 가정용이 더 맛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한라봉이 비싼 과일이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맛있으면 그만이다. 앉은 자리에서 두세 개를 연달아 먹는다. 접시에 세 개쯤 까서 가지런히 쌓아 책상으로 가져갔다. 패드 속 만화책을 넘기며 한 조각씩 집어 먹었다.
접시에 놓인 오렌지빛 과육이 탐스럽다.
1번이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길래 의심없이 나도 먹었다.
"아오~~~~~~~~"
아직은 새콤한 맛이 먼저 온다. 입안이 살짝 찌릿하다. 얼굴 근육이 알아서 반응했다.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1번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마치 이 정도 신맛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또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조금 더 둬야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상자를 들여다봤지만, 가정용 한라봉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전에 1번이 다 먹어치울 기세다. 그래서 선물용으로 받은 박스는 뚜껑을 덮어 뒀다. 한라봉으로 딸과 기 싸움을 하는 기분이다. 나는 달콤한 걸 먹고 싶고, 아이는 지금 먹고 싶다. 먹지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후숙이라는 단어는 농사짓는 내게 익숙하다. 적당한 조건을 갖춰주면 맛이 바뀌는 매직이 펼쳐지는 단어다. 후숙 과일을 만나면 기다림을 배운다. 당장 먹고 싶어도 며칠은 참고 두어야 단맛이 오른다. 조급하면 신맛을 먼저 만나게 된다.
1번이 기다림을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그 아이의 입 안이 신비롭다. 새콤함에 인상이 절로 구겨지는데 어쩜 그리도 잘 먹는지.. 새콤해도 달지 않아도 그 자체로 특유의 맛이 있다며 맛있다고 한다.
가정용 한라봉이 한 두 개 남았을 때쯤 선물용으로 받은 큼지막한 한라봉을 하나씩 꺼내어 겹치지 않게 서늘한 곳에 며칠을 두었다. 며칠 지나 아침 샐러드 옆에 몇 개 까서 함께 식탁에 올렸다. 확실히 후숙을 하니 향이 먼저 다르다. 과육이 부드럽고 단맛이 올라왔다. 기다림의 맛이었다.
기다림이 필요한 한라봉이지만 새콤함을 즐긴다면 1번 처럼 단기간만 후숙한 뒤 바로 먹어도 상관없겠다. 하지만 그런 아이의 입맛을 채워주기엔 내 주머니는 너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