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직도 오락실 소년이다

by 농부아내


잦은 봄비 덕분에 휴식이 길어지고 있다. 밭은 여전히 촉촉해 텃밭 조성이 늦어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집 안 한편을 차지한 작은 오락실 이야기를 꺼내본다.



어릴 적 모범생처럼 살았다는 말이 지금 와선 조금 우습다. 그렇다고 대단히 반듯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오락실 게임기 앞에서 동전을 넣어본 기억은 없다. 내가 게임의 세계에 발을 들인 건 농부님을 만난 뒤부터다. 그 전의 나에게 게임이란 컴퓨터에 기본으로 깔려 있던 폭탄 찾기나 카드놀이가 전부였다. 스무 살이 넘어서 처음 오락실에 갔다. 한창 펌프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불빛과 요란한 음악, 리듬에 맞춰 바닥을 구르던 발소리. 나는 구경꾼이었고, 농부님은 가끔 현란한 발짓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농부님과 함께 가본 그곳은 ‘오락실’이라기보다 ‘게임존’에 가까웠다. 대형 게임기들이 줄지어 서 있고, 화면은 크고 소리는 더 컸다. 그곳에서 테트리스를 처음 해봤다. 단순한 블록 쌓기라는데, 왜 그리 손에 땀이 나던지. 블록은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마음은 급한데 손은 느렸다. 몇 판 지고 나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게임도 해봤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승리의 쾌감을 맛보지 못하니 내 자리는 역시 구경꾼인가 싶었다.


그러다 PC방을 알게 됐다. 온라인 게임은 또 다른 세계였다. 오락실 게임과는 달리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고, 방향치인 나는 게임 안에서도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주어지는 미션을 성공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이 좋았다. 하루 종일 밥도 잊고 한 자리에 앉아 있던 날도 있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어깨가 으쓱해졌고, 결국 만렙을 찍고 나서야 그 게임을 접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게임을 시작하면 끝을 보려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더 조심해야겠다고. 나의 게임 역사는 그렇게 짧고 굵게 끝났다.



하지만 농부님의 이야기는 다르다.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형아들 게임하는 모습을 뒤에서 구경하며 기술을 익혔던 일, 학교에 가는 대신 가방을 미끄럼틀 밑에 숨겨두고 오락실로 향했던 일, 용돈을 모아 게임기를 샀던 일. 그 시절의 냄새와 소리를 마음속 서랍에 고이 넣어 둔 어린이 농부는 어른 농부가 되어서도 그 서랍을 닫지 못했다.


우리 집에 가정용 오락실 게임기가 농부님의 방 한편을 차지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이름도 거창한 “월광보합(판타스틱)”. 글을 쓰려고 검색해 보고서야 그 이름을 정확히 알았다. 한창 바쁠 때 농부님이 어딘가에서 들여왔고 가자미 같은 눈으로 흘겨봤던 기억이 있다. 오락실에서나 보던 큼직한 화면과 큰 사이즈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딸들도 어린이 농부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손에 쥐는 작은 게임기에 더 익숙하다. 그래서 그 커다란 게임기를 자주 켜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특히 2번과 농부님이 마주 앉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둘이 즐겨하는 게임은 “포켓파이터”. 파이터면 파이터지, 포켓은 또 뭔가 싶었지만, 나는 설명을 듣다가 이내 포기했다. 기술 이름이 어떻고, 타이밍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2번이 가끔 아빠를 이긴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손은 요란하지 않다. 고사리 같은 손이 스틱을 잡고, 타이밍에 맞춰 버튼을 누른다. 화면 속 캐릭터가 번쩍이며 기술을 쓰면, 농부님이 “얍삽하다!” 하고 웃는다. 그래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간다. 결정적인 한 방이 들어가면 얼굴이 환해진다. 그게 뭐라고, 저렇게 좋아할까 싶다가도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된다. 아마 농부님은 지금 이 순간을 또 하나의 추억으로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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