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대파 모종을 자르는 이유

by 농부아내


대파 모종을 키우다 보면 파종 후 한 달쯤 되었을 때 한 번쯤 해주면 좋은 작업이 있다. 바로 대파 모종 잎 자르기(대파 모종 관리)다. 필수 작업은 아니지만 모종을 조금 더 튼튼하게 키우고 싶다면 가위질을 한 번 해주는 것을 추천한다.


대파 모종 잎 자르기를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웃자람 방지다. 텃밭에 심으려고 내가 키우는 모종은 전문 육묘장처럼 정확한 환경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웃자람을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이때 잎을 한 번 잘라주면 웃자람을 어느 정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줄기를 굵고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잎이 너무 길게 자라면 영양분이 잎 성장에 많이 쓰이게 된다. 이때 잎을 잘라주면 에너지가 줄기 쪽으로 분산되어 모종이 보다 단단하게 자랄 수 있다.


세 번째는 통풍 개선과 병해충 예방이다. 대파 모종은 잎이 길어지면서 서로 엉키는 경우가 많다. 잎 길이를 비슷하게 정리해 주면 모종 사이에 공기가 조금 더 잘 통하게 되고 병해충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한 번 정리해 준 대파 모종은 이후 한 달 정도 더 키운 뒤 밭에 옮겨 심는다.



2월 11일에 파종한 대파는 어느새 파종 후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호박 모종 옆에서 열선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파종 후 열흘쯤 지나자 하나둘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겉흙이 마를 때마다 물 주는 것만 해줬는데 올라온 싹들이 대견했다.


처음 대파 씨앗을 파종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암발아’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꽤 긴장했었다. 파종 후에도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하우스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나름대로의 파종 방법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조급한 마음으로 들여다봐도 녀석들이 깨어날 마음이 없으면 고개를 내밀지 않을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싹이 올라오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반갑다. 짙은 상토 사이로 연두빛 대파싹이 보이면 보물찾기에서 번호가 적힌 종이를 발견한 마음이다. 파종 후 15일쯤 지나자 40구 트레이에 연둣빛이 가득 찼다. 길쭉길쭉 올라온 싹들이 마치 연둣빛 아지랑이처럼 보였다. 가느다란 실처럼 보이던 싹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키를 키웠다. 쭉쭉 자라나는 모습이 제법 씩씩했다.



직접 대파 모종을 키우다 보면 구입하는 대파 모종에선 보기 힘든 걸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잎 끝 모양이다. 대파 싹이 올라와 조금 자라면 끝이 살짝 구부러진 걸 볼 수 있다. 마치 급하게 써 내려간 ‘ㄱ’자 모양 같다. 어떤 녀석들은 씨앗 껍질을 머리에 쓴 채 올라오기도 한다. 작은 모자를 쓴 것 같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면 대파 모종 잎이 꽤 길어진다. 내가 나설 차례다. 뜨거운 물에 소독한 가위를 찬물에 담가 열기를 식힌 뒤 대파 모종이 자라고 있는 하우스로 갔다.


3월 11일, 대파 모종 잎 자르기


매년 반복하는 일이지만 가위를 손에 들고 모종 앞에 서면 잠깐 망설이게 된다. 얇고 가녀린 잎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작은 잎을 내가 잘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손이 잠깐 부들부들 떨린다. 잎을 자르는 행위가 마치 내가 신이 된 듯, 대파 모종에게 작은 시련을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가위를 들고 비장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내 발걸음에 녀석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결국 가위를 움직인다.


싹둑.

그리고 또 싹둑.


너무 길게 자란 잎을 정리하듯 비슷한 높이로 맞춰 준다. 키를 맞춰 준다는 느낌으로 조금씩 잘라내면 된다. 서로 엉켜 있던 잎들이 하나둘 정리되면 훨씬 단정해진다. 원예사나 재래시장에서 보이는 대파 모종보다 사이즈는 작지만 이제서야 조금은 비슷한 모양새를 갖춰간다.



단정하게 이발을 마치고 며칠 뒤, 자리를 잡은 모종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시련을 만난다. 이 작은 대파 모종이 내가 내린 시련을 이겨내고 더 튼튼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내 삶도 떠올랐다. 내게 일어나는 어려움과 마음의 갈등도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미적거리는 날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로 손실이 생기는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 한다. 지금 시련이라 여겨지는 일들도 내가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대파 모종들이 가위질을 견디고 다시 잎을 키워내듯이 말이다.


이제 대파 모종은 한 달 정도 더 자란 뒤 밭으로 옮겨 심게 된다. 트레이 속 작은 모종들이 밭으로 나가 단단하게 자리 잡는 날을 떠올리며, 오늘도 하우스 문을 조용히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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