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씨앗을 뿌리는 날, 텃밭의 봄이 시작됐다

by 농부아내


봄 텃밭에 빠지지 않는 작물이 바로 상추 같은 쌈채소다. 비교적 키우기 쉬워 텃밭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상추를 텃밭에 바로 파종하는 경우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춘분(3월 20일 전후) 무렵에 파종하면 무난하다.


상추 파종 방법은 줄뿌림, 흩어뿌림, 점뿌림, 모두 가능하다. 텃밭에서는 보통 줄뿌림이나 점뿌림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줄뿌림은 두둑 위에 얕게 골을 파고 씨앗을 뿌리는 방법으로 줄 간격을 20~25cm 정도 두면 관리하기 좋다. 흩어뿌림은 씨앗을 넓게 뿌리는 방식으로, 마을 어르신들 텃밭에서 자주 목격되는 방법이다. 씨앗을 손에 쥐고 살살 흩어 뿌리면 된다. 점뿌림은 20cm 정도 간격으로 2~3알씩 심는 방법이다.


상추 씨앗은 작기 때문에 깊게 심지 않고 흙을 살짝만 덮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싹이 올라온 뒤에는 솎아 주면서 최종 포기 간격을 15~20cm 정도로 맞춰 주면 잎이 넓게 자란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풀떼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상추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올해도 어김없이 쌈채소 씨앗들을 꺼냈다. 적치마, 청치마, 로메인, 적로메인. 매년 같은 씨앗을 파종하고 있다. 종자회사에서 좀 더 다양한 무게의 씨앗을 판매해 주면 좋겠다. 아직도 많이 남았지만 다 먹기 전까지 다른 씨앗을 구매하긴 힘들 것 같다.


파종 계획은 3월 2일이었다. 조금 이른 시기에 파종하면 벌레들의 습격을 피해 풍성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파종 날짜를 이르게 계획했었다. 하지만 올해 봄은 생각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른 3월 초순에는 매주 한 번씩 비가 내렸다. 올해부터 새롭게 조성한 텃밭은 물이 쉽게 빠지는 땅이 아니었기 때문에 흙이 마를 틈이 없었다. 게다가 3월이 시작됐는데도 아침마다 밭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흙이 조금 말랐다 싶을 때 농부님이 시간을 쪼개 텃밭 준비를 해 주었다. 살균제, 살충제도 뿌리고 비료도 넣었다. 내가 작물들 파종하고 녀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땅이 별로라는 둥, 텃밭이 물에 잠겼는데 물이 안 빠진다는 둥 쏟아낼 궁시렁거림이 듣기 싫었을까. 올해는 바이오차까지 넣어 흙을 한 번 더 살렸다.



트랙터로 여러 번 땅을 갈아엎고, 두둑도 높게 만들어 주었다. 물이 고이지 않도록 삽질도 꽤 했다. 다른 일도 많은데 틈틈이 만들어 준 텃밭을 보고 있자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농부님 덕분에 텃밭은 조금씩 모양을 갖춰 갔다.


마지막으로 트랙터로 땅을 갈던 날, 그냥 갑자기 타보고 싶었다. 뒤에서부터 전진해 오던 농부님을 큰 소리로 불러 손짓으로 뒤에 타도 되냐고 물었다. 흔쾌히 웃으면서 태워 주었다. 해남으로 귀농한 지 10년 차지만 트랙터가 일을 해야 하는 날에는 늘 바빠 한번 태워달라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역시 그날도 바빴지만, 에잇~하는 마음에 트랙터에 올라탔다. 텃밭을 천천히 가르는 트랙터 위에 앉아 있으니 덜커덩 거리며 전진할 때마다 무섭긴 했지만 묘했다. 손과 발이 바쁘게 움직이고 앞뒤를 계속 살피는 농부님에게 괜히 민폐인 것 같아 적당히 타다가 내려왔다.



내가 뿌린 상추 씨앗보다 잡초가 더 빨리 자랄 수 있기 때문에 두둑 위에 멀칭 비닐을 덮고, 제초매트도 깔았다. 작물 이름표도 만들어 하나씩 꽂아 두었다. 적치마, 청치마, 로메인, 적로메인. 계획해 둔 자리대로 이름표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벌써 텃밭이 채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3월 12일. 내가 계획했던 날보다는 늦어졌지만 낮 기온이 올라 파종하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씨앗 봉투를 하나씩 열어 텃밭으로 나갔다. 그런데 막상 파종을 하려고 보니 예상했던 문제가 바로 나타났다. 비가 잦았던 탓인지 흙이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손으로 부숴 보려 해도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모종삽으로 툭툭 쳐 보았지만 돌처럼 단단한 덩어리도 있었다.



상추 씨앗은 작고 납작하다. 그래서 깊이 심지 않고 얕게 뿌려야 한다. 그런데 흙 덩어리 사이로 씨앗이 굴러 들어가 버리니 깊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 뭉친 흙을 잘게 부수려고 하다가 결국 마음을 내려놓았다.


어차피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상추씨앗, 남아돌아 다른 상추 종류는 사보지 못하고 있으니 최대한 한 구멍마다 많이 파종했다. 녀석들 중 하나는 고개를 내밀지 않겠는가. 상추가 한창 자라는 시기에는 하우스 일이 바빠 수확이 제 때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파종간격도 30cm로 여유롭게 하려다가 흙 상태를 보아하니 싹이 올라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15cm 간격으로 기존 계획보다 더 많은 양의 구멍에 파종했다.


텃밭을 꾸리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자주 온다. 처음에는 뭐든 계획한 대로 정확하게 해 보려고 애쓴다. 씨앗 간격도 맞추고 깊이도 맞추고, 흙도 곱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융통성 부족한 나를 시험하려는 듯 전진을 하다가도 후진했다 다시 전진해야 할 상황들이 찾아온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하게 된다.

‘주는 만큼만 먹자.’


씨앗이 원하는 자리에서 싹을 틔우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마음이다. 많이 올라오면 많이 먹고, 조금 올라오면 조금 먹으면 된다. 내가 어찌 바꿔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파종 후 49재가 있어 하루는 물을 주지 못했다. 뒷날 아침에 바지런히 물을 줬지만 아직 씨앗들은 잠잠하다. 그래도 며칠 기다리면 흙 사이에서 연둣빛 싹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고, 그때부터 또 다른 봄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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