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아니라, 색 때문에 심는다

래디시 파종부터 수확까지

by 농부아내


래디시(적환무)는 봄과 가을에 재배하기 좋은 작물이다. 재배기간이 짧고 키우기 수월해 텃밭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추천할 수 있다. 파종 시기는 기온만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너무 춥거나 더운 시기만 피하면 3월부터 파종이 가능하다.


파종 방법은 줄뿌림과 점뿌림 모두 가능하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중요한 것은 간격이다. 작물 간 간격이 약 15~20cm 정도 유지되도록 솎아준다. 초기에는 촘촘하게 올라오기 때문에 솎음 작업이 필요하고, 이후에는 특별한 관리 없이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란다.


파종 후 약 30~35일이 지나면 흙 위로 빨간 어깨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수확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지름이 2~3cm 정도 되었을 때 수확하면 식감이 좋다.


2026년 래디시 재배일지
- 3월 12일 파종
- 4월 1일 솎음
- 4월 16일 1차 수확 (파종 후 36일째)
- 4월 22일 2차 수확 (파종 후 42일째)






텃밭 작물을 선택기준은 식구들이나 내 입맛 위주이다. 유일하게 조금 다른 이유로 매년 심게 되는 작물이 래디시이다. 래디시의 또다른 이름이 적환무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맛은 '무' 맛이다. 자체의 맛은 강하지 않고, 거의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 맛 때문에 심는 것이 아니라 '색'때문에 파종한다.


초록으로 가득한 텃밭 한가운데서 혼자 또렷하게 드러나는 빨간색. 그 존재감 하나로 텃밭 한 구석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가지고 있는 씨앗을 다 쓰면 그만 심게 될지도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결국은 또 손이 간다.



발아율이 좋아서 작년까지는 한 구멍에 하나씩만 심었다. 그런데 올해는 텃밭 위치를 옮기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흙이 생각보다 질었다. 물을 머금으면 진흙처럼 변하는 땅이라, 씨앗이 제대로 올라올지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 구멍에 씨앗을 여러 개 넣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싹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촘촘하게 자리를 채워나갔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래디시를 보며 '조만간 솎아야겠네' 라며 계속 미루고 있었다. 밤호박 하우스 일이 조금 빨리 끝난 날, 텃밭에서 솎아야 할 작물들을 솎으며 래디시도 함께 작업했다.


래디시는 텃밭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솎음이 늦어지면 동그랗게 자라지 못하고 길쭉하게 자랄 수도 있다. 늦지 않게 작업해 주는 것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미루다가 이제는 안되겠다~싶을 때가 되어서야 솎았다.


4월 1일, 한 구멍당 하나씩 남기고 솎아냈다. 너무 많이 심었나 싶어 혼자 중얼거리면서, 하나씩 남겨둔 래디시 주변에 흙을 북돋아 주었다. 손끝으로 흙을 모으며 얼른 자라주길 바래본다.



이후는 방치. 가끔 텃밭을 지나며 비닐멀칭 아래로 들어간 잎이 있으면 꺼내주는 게 다였다. 비가 몇 번 지나갔고, 텃밭이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다른 작물 모종을 심으려고 텃밭에 갔다가 살짝 살펴보니, 래디시의 붉은 어깨가 올라와 있었다.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워보이던지..


사랑스러움은 잠깐이고, 그때부터는 마음이 또 바빠진다. 잘 키워놓고, 제때 뽑지 못할까 봐.


이제 뽑아야 할까.

조금 더 기다릴까.


달력을 보니 파종 후 32일째였다. 날짜만 보면 수확해도 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막상 눈앞의 래디시는 아직 작았다. 작은 사이즈는 손질하기도 힘들어서 조금만 더 키워서 수확하기로 했다.



4월 16일, 파종 후 36일째.

며칠 뒤, 비 예보가 잡혔고, 더 미루면 안되겠다 싶어서 수확하기로 했다. 칼과 바구니를 들고 텃밭으로 갔다. 하나씩 뽑아보니, 흙 밖으로 보이던 빨간 어깨보다 실제 크기는 조금 작았다. 잎줄기와 잔뿌리를 정리하고 하나씩 바구니에 담았다. 수확하기 애매한 것들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그 녀석들은 조금 더 키워서 뽑기로 했다.


수확한 래디시는 깨끗이 씻어 오이와 함께 피클로 담았다. 투명한 병 안에서 서서히 번져가는 분홍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작물을 심은 이유가 설명된다. 특별한 맛이 없어도 괜찮다. 눈으로 먼저 즐겁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1차 수확을 하고, 비가 온 뒤 남겨 두었던 래디시를 모두 수확했다. 1차 수확을 했던 래디시보다 훨씬 크고 이쁘게 잘 자랐다. 겨우 일주일차이인데 크기 차이가 나니 내년엔 조금 더 늦게 수확을 해야할까보다. 2차 수확한 래디시는 열무와 함께 김치를 담았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건데 맛이 어떨지, 김치가 익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땅의 상태가 좋지 않아 작물의 자람새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잘 자라주어 수확까지 무사히 마쳤다. 수확하고 나니 빈 자리가 생겼고, 또다시 뭘 심어볼까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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