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제외한 수학이나 다른 과목들은 엄마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 영어는 초등학교 입학 후 시작했다가 하다말다를 반복했다. 초 3, 4학년의 다른 과목들은 내가 도와줄 수 있겠는데 영어는 영~ 자신이 없었다. 올해 새 학기가 시작되면 벌써 초5가 되는 1번은 늦은 감이 있어 학원을 수소문했다. 기초부터 해야 해서 많은 아이들을 앉혀 놓고 똑같은 수업을 하는 것보다 레벨에 따라 한 명씩 지도가 가능한 곳을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았다. 하교 후 아이들끼리 학원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커리큘럼 설명은 들었으나 일단은 다녀보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아이들이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첫날은 선생님도, 아이들도 서로 적응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선생님과 통화하니 약간은 기본이 되어 있어 속도를 빠르게 진행해도 되겠다고 하셨다.
사건은 화요일에 터졌다. 눈이 내려 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없으니 안방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1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2번이 안 와요.
1번이 전화한 시간은 오후 1시 35분이었다. 학교 수업은 1시 10분에 마치니 시간이 꽤 흘렀다. 40분까지 기다려보고 안 오면 다시 전화해 달라고 했다. 1번의 전화를 끊고 2번에게 연락했다. 전원이 꺼져 있다.
1번 : 엄마, 핸드폰도 꺼져 있고 안 와요.
엄 : 교실에 가봤어?
1번 : 아까 가봤는데 불 꺼져 있었어요.
엄 : 혹시 모르니까 도서관에 가볼래?
1번 : 네~
화요일 아침밥을 먹으며 하교 후 동생을 기다리는 것에 대해 불평했던 1번. 겨울이라 밖에서 기다리면 추우니까 2번 교실 옆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서 가라고 했더니 그것도 싫다는 듯 뾰로통해졌다. 엄마 아빠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둘이서 이야기해서 만나 함께 학원으로 가라고 했다.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는지 모른 채 나는 1번의 전화를 계속 받았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보라고 한 거였다. 1번이 도서관으로 가는 동안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곧 방학식이라 개인 생활용품은 가져와야 해서 짐이 있으면 아빠에게 전화해 맡기고 학원으로 가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차에서 언니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었다.
같이 있지 않단다. 심장이 두근두근, 떨리기 시작했다. 해남으로 귀농했을 때 2번은 2살이었다. 정착할 집을 둘러보는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한참 뒤에 찾은 아이는 집 뒤쪽 넓은 밭을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만져보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라 불안함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잠시 뒤 1번에게 걸려온 전화.
엄마, 도서관에도 없어요.
심장이 쿵. 일단 1번에게 학원으로 가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떡해야 하지.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해볼까?? 고민을 해봤지만 교실 불이 꺼진 걸 보면 하교 후 아이의 행방은 모르실 듯했다. 학원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학원에 있단다. 1시 30분, 시간 딱 맞춰 도착했단다. 1번에게 전화를 해 2번이 학원에 있다고 하니 수업 잘 받고 집에 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약속장소에서 30분까지 기다려도 안 오면 학원에 따로 가기로 했단다. 2번이 약속장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27분. 옆에 있던 친구가 바로 앞 신호등이 초록불이 되었다고 건너가자, 가는 방향이 같으니 같이 가자고 했단다. 그래서 그냥 친구랑 같이 갔다는 것이 2번의 말이었다.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갔을 뿐이라는 2번. 친구 좋아하고, 사람 따르는 걸 좋아하는 2번 답다. 약속은 칼같이 지켜야 하는 FM 1번은 30분에 도착했으니 3분의 차이로 엇갈렸던 것이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나의 시각으로 보자면 약속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은 2번이 잘못한 일이다. 엄마가 2번 잃어버린 줄 알고 놀랬다는 말과 함께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도 언니와의 약속이 먼저이니 다음번엔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일러두었다. 아이의 타고난 성향이 사람 좋아는 걸 어쩌겠냐마는, 엄마아빠없이 읍내를 걸어 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내가 더 예민해진 것도 있었다. 학교에서 5분 거리이긴 하지만, 신호등도 두 번이나 건너야 하고 세상이 흉흉하니 마음이 더 불안했다.
아이들도 서서히 혼자 해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집 안에서는 스스로 하는 일들이 많은데 집 밖에서는 나의 불안함에 언제나 함께인 시간이 많았다. 지금은 초4인 1번이 초3 시절에 친구와 약속을 잡고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뒷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만감이 교차했었다. 조금씩 품에서 내어 놓아야 할 일들이 많아질텐데 내가 이리 불안해서야 될까. 아이들의 독립을 위해, 무엇보다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불안함을 다스리는 게 먼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