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는 없지만 호사로웠던 귀농의 삶

1부. 시작은 늘 작은 용기에서 온다

by 농부아내


나는 길치이자 방향치이다.

아이들과 함께 목포의 신발가게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취향에 맞춰 신발을 사고 문을 나서는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내가 어느 쪽에서 들어왔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옳다고 생각했던 방향으로 걸어가자 아이들이 “엄마~ 어디 가요?”라며 나를 불러 세웠다. 사람들은 “몇 번만 다니다 보면 외워”라고 쉽게 말하지만, 내게 그 말은 “몇 번만 더 연습하면 수영할 수 있어”라는 말만큼이나 막연하게 들린다. 그래서 운전은 아주 오래전부터 포기했다. 나의 DNA 속에는 길을 읽어 내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농을 결정했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골에서의 삶을 떠올릴 때 농사를 짓고, 자연과 함께 자랄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런 것만 떠올렸을 뿐 내가 직접 운전을 하게 되리라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귀농 초기, 우리는 귀농인의 집에서 생활했고, 이후 지금의 집과 땅을 마련했다. 우리가 뿌리를 내리기로 한 집과 땅은 ‘읍’이 아닌 ‘면’에 있었다. 이 한 단어의 차이가, 이후의 삶을 많이 바꿔놓을 줄 그때는 몰랐다. 비닐하우스를 지어 밤호박 농사를 짓고, 텃밭을 가꾸며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흙을 만지고,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는 삶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내가 떠올린 시골살이와 같은 삶이었다. 남편이 바쁠 때면 '택시'를 부르거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일정을 미루기도 했었다.


이쯤 되면 내가 사는 곳에 버스가 없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읍에는 순환버스가 다니지 않고, 면과 읍을 오가는 버스는 선택지가 아니라 변수에 가까웠다. 마을 입구 버스 주차장에 붙어있는 배차표를 보면 한숨만 나왔다. 몇 시간에 한 대씩 있는 버스의 시간표에 맞춰 탄다는 건, 하루의 리듬을 온전히 버스에 맡긴다는 뜻이었다. 결국 어디를 가든 남편의 일정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남편이 없으면 나는 집에 ‘셀프 감금’된 사람이 되었다. 오늘은 장을 보러 읍에 나가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아니면 내일로 미뤄야 할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 결정권이 내 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마음속에 묘한 찝찝함으로 남았다.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던 시절, 친구들이 하나둘 운전면허를 따기 시작했을 때도 비슷했다. 친구들은 내게도 면허를 따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김기사"를 옆에 둘 거라며 웃어넘겼다. 귀농 후의 삶은 어쩌면 20대의 내가 막연히 바라던 모습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편안함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끔 느껴지는 남편 눈치쯤이야 한 번 눈 딱 감으면 되는 일이었다. “오늘 읍에 좀 나가야 해”, “오늘 저녁에 00랑 만나기로 했는데 괜찮아?”라고 묻는 것도 큰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이동 경로에 자연스럽게 얹혀사는 삶을 살았다. 읍에 볼일이 있으면 남편이 데려다주었고, 지인들과의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남편은 다시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귀농 초반의 나는 꽤 호사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찝찝함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부러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트럭을 멋지게 운전해 후진으로 주차를 해내는 어머님들이나 직접 운전해서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볼 때였다. 시골에서는 그 모습이 유독 또렷하게 보인다. 차에서 내리며 자연스럽게 차 키를 챙기는 사람들, 약속이 끝나면 망설임 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지는 풍경. 그 장면들이 부러움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왔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시골에서 원하는 시간에 이동하고, 누군가를 자유롭게 만나려면 운전면허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길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내가 운전을 한다는 상상, 방향감각 없이 도로 위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다. 차라리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편이 모두에게 덜 위험하겠다는 생각까지 하며 그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아직은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농사일은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충분했다. 내가 원할 때 움직일 수 없는 찝찝한 불편함은 분명해졌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만큼 절박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곧바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불편하지만 안전한 조수석을 지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길을 몰라도 괜찮고, 방향을 헷갈려도 괜찮은 자리. 그 자리가 주는 안온함을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운전이 두려워서 안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안 하기로 선택한 걸까. 그 질문은 곧바로 답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 애매한 물음 위에 다시 일상을 얹어두었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의 방식이 당장은 편안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나를 더 좁은 곳으로 밀어 넣어 이 생활이 오래갈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불안한 예감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예감을 더 이상 모른 척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 안에 조금씩 쌓여 가는 질문들을 인정해 보기로 했다. 그 정도면 그때의 나로서는 충분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질문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질문이 언젠가는 나를 움직이게 하리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로 마음속에 질문 하나를 안고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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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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