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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an 11. 2018

캐릭터

11 Jan, 2018


올해 새로 시작한 일이 있다. 여러 캐릭터가 있고 각 캐릭터의 에피소드를 일종의 극으로 써야 하는 일이다. 이 작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서사의 흐름이나 에피소드의 완성도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작업이라면 해야 할 의미도 없으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캐릭터마다 부여된 프로필을 최대한 드러내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서사를 위한 캐릭터가 아닌, 캐릭터를 위한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런 작업에는 익숙지 않은 편이다. 장르의 문제라기보다는 작업방식의 문제이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쓸 때 사용하는 방식은 선 플롯, 후 캐릭터다. 우선 굵은 플롯을 만든다. 그리고 플롯을 이어 가줄 캐릭터를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거의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썼다. 


“저는 특별히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저 캐릭터가 하는 말을 담았을 뿐이에요.”


정말이지 해보고 싶은 인터뷰다.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달라고 채근하며 달려들다니... 현재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캐릭터의 말을 듣는 것. 그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일지 모른다. 억지스러운 이야기 대부분은 캐릭터의 부자연스러움에서 나오니까 말이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서사, 흔히 말하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쓰는 서사는 캐릭터를 얼마나 잘 데려왔는가가 중요하다. 문제는 아직 나는 캐릭터를 집으로 초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업은 흥미가 생기는 작업이다. 물론 배경과 설정, 프로필이 모두 정해져 있다는 제약은 있지만 그런 제약은 되려 서사를 특별한 방향으로 튀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위해 작법 수업에서는 캐릭터만 만드는 과정을 연습하고, 무작위의 캐릭터를 가져다 이야기를 쓰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작법 수업을 수강한 적은 없다. 그저 작가 지망생 캐릭터가 해주는 이야기를 엿들었을 뿐이다) 

어색한 작업 방식에 일단은 난항을 겪고 있다. 그 기분을 표현해 보자면 이렇다.


“남의 부엌에서 요리할 때 느끼는 어색함.” 


지금 나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가 요리를 하기 좋게 만든 부엌이지만 나에게는 안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만큼 불편하다. 소금 하나를 찾는데도 시간을 낭비해야 하고 겨우 찾은 소금을 제자리에 갖다 놓을 때도 한 번은 망설이게 된다. 물론 어색함이라는 것은 치료방법이 정해진 바이러스와도 같기에 자주 만져 손에 익으면 자연히 소멸할 것이다. 지금 걱정은 이 어색한 부엌이 내 손에 익었을 때다. 그때가 되면 난 분명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 만드는 재주가 없는 것은 아닐까?”


방식을 핑계 삼을 기회는 한정적이다. 그 한계를 넘어섰을 때까지도 핑계를 대고 있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서사에 재주가 없다는 것.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어색한 칼에 손을 베일까 봐가 아니라, 익숙해진 칼에 손을 베일까 봐 걱정이 된다. 


자, 지금부터 위의 일기를 쓴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

평가 방식은 하나, 캐릭터의 특징을 얼마큼 매력으로 살려냈는가의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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