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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06. 2015

체호프의 우체통에 도착한 한 통의 심지, 그리고로비치

작가를 짓다 - 6화


아류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제2의 00'과 같은 수식어는 때로 기분 나쁜 꼬리표가 되기도 한다. 문학에도 이런 수식어가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수식어는 바로 '00의 체호프'라는 수식어일 것이다. 단편 소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들에게 주어지는 칭호(?)라 볼 수 있는 이 수식어에 기분 나빠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지나친 영광이라며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잘 아는 레이먼드 카버나 얼마 전, 노벨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 등의 단편소설 작가들도 자신의 이름 앞에 '00의 체호프'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체 체호프라는 작가가 어떤 작가이기에 대문호들이 단 한 명의 이견 없이 그의 이름을 떠받드는 것일까? 그리고 작가들의 작가인 체호프는 어떤 계기로 작가의 길에 들어서서 문학계를 뒤흔든 것일까? 혹시 단 한 통의 편지 때문이라면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안톤 체호프. 그는 1860년 러시아의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체호프의 아버지는 농노 출신이었지만 노력 끝에 신분을 벗어나서 채소가게를 운영했다. 하지만 체호프의 아버지는 성격이 거칠어서 체호프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자주 폭력을 당했고 강압적인 환경에서 자라나야 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체호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그의 단편 작품 <3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어린 시절을 거쳐 청년이 된 체호프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채소가게가 파산한 것이었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타간로크를 떠나 모스크바를 향해야 했고, 아직 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한 체호프는 홀로 타간로크에 남아 학업을 이어 나갔다.

5년 과정의 학업을 8년이 걸려서야 마칠 수 있게 된 체호프는 대학공부를 위해 모스크바로 상경하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가족들과 재회한 체호프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인이 된 체호프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가족들의 생계였다. 당장은 목표로 했던 의학 공부를 해야 했던 체호프는 모스크바 의학과에 입학하여 수업을 들으면서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에도 잃지 않았던 특유의 유머감각과 타고난 글재주로 체호프는 짧은 유머 소설을 써냈다. 그리고 그 글을 잡지에 기고하여 원고료를 받아 가족들의 생계에 보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호프는 단순히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400편이 넘는 유머 소설을 써냈는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체호프는 글을 기고하면서 자신의 이름 대신 '안토샤 체혼테'라는 필명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쓸개 없는 사나이', '환자 없는 의사', '성급한 사나이', '나의 형의 아우'(개인적으로 이 필명이 너무 웃기다. 당연한 말이잖아!!) 등 다양한 필명으로 잡지에 기고했다.


분명 무리한 스케줄이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의학 공부와 생계를 위한 소설 창작.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어 내기 위해서 체호프는 몸을 혹사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체호프는 1884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본격적인 의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것은 대작가의 전직으로는 상당히 특이한 이력으로 볼 수 있는데 당시 의학생활을 하면서 체호프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심지어 체호프는 "나에게 의학은 본처이고 문학은 연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그가 의학을 하면서 체험한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예를 들어 체호프의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은 체호프가 만난 환자들을 모델로 한 것이 많았고, 그의 냉철한 리얼리즘 문체 역시 의학 활동을 통해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 것이었다.




체호프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도 가족들의 생계 때문이었는데 사실 의사까지 된 마당에 돈은 의학으로 버는 것이 훨씬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체호프는 극빈층의 진료는 무료로 해주는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의학 활동으로는 큰돈을 벌지 못했다. 결국, 믿을 것은 그의 연인, 문학으로 돈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체호프가 잡지에 담길 가벼운 글만 써내려갔다면? 우리는 지금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을까? 적어도 그의 필명 안토샤 체혼테는 알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었고, 대문호의 이름 앞에 그의 이름을 수식어처럼 붙일 수 있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느 날, 체호프의 우체통에 담긴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체호프의 우체통. 거기에 당대의 문학가였던 디미트리 그리고로비치의 편지가 있었다. 생면부지의 대문호에게 편지가 도착하니 체호프는 놀란 마음에 편지를 열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그리고로비치가 체호프를 채근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신에게는 진실로 재능이 있소. 우리를 월등히 능가하는 신세대 작가의 재능 말이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 개인적인 신념 때문이지요. 이제 내 나이 예순다섯 살이지만, 문학에 대한 사랑만큼은 여전해서 늘 관심을 가지고 문학의 발전을 지켜본다오. 그러다가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요.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나는 마음을 자제하지 못하고 당신에게 두 손을 내밀고 있소. 이제는 날림으로 글 쓰는 짓을 그만두시오. 나로서는 당신의 재정적인 형편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오. 낙관적이 아니라면, 옛날에 우리가 그랬듯이 굶주리는 길을 선택하시오. 머리를 스치는 인상들을 보다 성숙한 완벽한 작업을 위해 간직했다가, 단숨에 졸속으로 내갈기지 말고 영감이 떠오르는 행복한 시간에 종이에 옮기시오. 그러한 작품 하나가 여기저기 신문에 실리는 수백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수백 배 더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디미트리 그리고로비치가 체호프에게 보낸 편지'
(출처 ; 운명적 영감에 빠진 문학가들/북하우스)    


체호프는 이 편지를 받고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된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체호프는 자신에게 진실된 작가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문호가 보내온 한 통의 편지에 가슴이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체호프는 특유의 침착은 내버리고 곧장 답장을 쓴다.


이렇듯 제 마음을 사로잡고 큰 기쁨을 안겨준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서 저는 마치 번개에 맞은 듯했습니다. 너무 감격해 눈물이 솟을 정도였습니다. 선생님의 편지가 제 영혼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 지금 온몸으로 느낍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선생님처럼 선택받은 분들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편지가 제 자부심에 무엇을 안겨주었을지도 헤아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떤 자격증보다도 값진 것이며, 저 같은 신출내기 작가에게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보수입니다. 제가 과연 이렇듯 많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지금은 판단할 여력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문학적인 활동에 대해 깊은 생각 없이 아주 경솔하고 부주의하게 굴었습니다. 스물네 시간 이상 매달려 작업한 이야기가 단 한 편도 없습니다. 기자들이 대형화재에 대한 기사를 쓰듯이, 독자들이나 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서 적당히 기계적으로 이야기를 썼습니다.

'체호프의 답장'
(출처 ; 운명적 영감에 빠진 문학가들/북하우스)    




이런 답장을 쓰며 체호프는 진짜 자신의 마음이 하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걸리는 것은 가족들의 생계 문제였다. 체호프의 가족들은 체호프의 도움을 거부하려 하지 않았고 체호프 역시 가족들을 버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체호프는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일반적으로는 상상도 못 할 성과를 이루어낸다.


편지를 받은 1886년 한 해에만 체호프는 116편의 단편을 써냈고 비슷한 시기 희곡작품 <이바노프>도 완성해낸다. 이 모든 것의 추진력은 체호프의 재능이나 주변의 환경이 아닌, 그리고로비치의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로비치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체호프는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888년 권위 있는 문학상인 '푸시킨 상'을 수상한다. 이때역시 체호프는 겸손한 감상을 남겼는데 이쯤 되면 그의 성격이 어땠는지 충분히 예상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체호프의 성공 가도에 그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대부분의 이유는 그가 정치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비판했다. 하지만 체호프는 직접 정치적 활동에 나서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어떤 대열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금했으며, 타인의 소리를 듣는 것에 더 집중했다. 그리고 작가는 토론을 이끄는 사람이 아닐, 마침 시작된 논쟁을 기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신념을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 작품에서 잘 녹여 냈는데 실제 체호프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당시 러시아의 희망 없는 사람들을 모델로 한 인물이 무려 2,355명이나 등장한다고 한다. 이렇듯 체호프는 자신이 직접 관찰하고, 만나고, 이야기 나눈 인문들을 특별한 플롯이나 사건이 아닌, 리얼한 인물 그 자체로 표현함으로써 당시의 시대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나누고 나니 정말 체호프의 우편함에 그리고로비치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오싹해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대니 콜린스>의 이야기처럼 배달 사고라도 있어서 안톤 체호프라는 이름이 안토샤 체혼테로 남아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소설을 읽고 있을까? 단편 소설. 그것의 미학을 즐기고 있을 수 있었을까?





체호프하우스의 입주자들.

체호프 하우스 첫 번째 입주자는 '00의 체호프'의 대표주자 레이먼드 카버를 선정했다. 아메리카의 체호프로 불리며 미국 단편 문학을 새로 정의한 레이먼드 카버는 일찍이 체호프를 자신의 롤모데롤 삼았다. 그래서인지 레이먼드 카버의 마지막 단편소설 <심부름>에는 체호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신병 치료차 독일의 한 휴양도시에 갔다가 숨을 거두는 체호프의 임종 장면이 등장한다.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체호프의 죽음을 그려낸 것만 보아도 레이먼드 카버가 얼마나 체호프를 존경하고 경외 시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첫 번째 선정자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 보인다.


두 번째 입주자는 한국의 연극 연출가 전훈. 한국에서 체호프 연극 일인자로 꼽히는 전훈 연출가는 연극계 러시아 유학파 1세대다. 전훈 연출가는 지난 2004년에 <벚꽃 동산>, <반야 아저씨>, <갈매기>, <세 자매> 등 체호프 4대 장막극을 무대에 올려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명륜동의 한 소극장을 장기 대관해 체호프 전용관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전훈 연출가는 1년 내내 체호프의 작품만 공연한다고 한다. 사실 체호프의 장막극은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장면 전환이 많아서 소극장에서 하기에 버거운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훈 연출가는 꾸준히 소극장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며.

지금까지 그리고로비치의 편지 한 통으로 펼쳐진 체호프의 문학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사실 그리고로비치는 체호프에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충분하다가 말했을 뿐, 문학적으로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신하지 못했던 젊은 체호프에게 그 말은 너무나도 중요한 기폭제였다. 이 기폭제로 이루어낸 문학적 성과나 후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그리고로비치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을 했든, 하지 못했든 그리고로비치의 편지 한 통은 지금의 우리에게 체호프를 단편소설과 희곡으로 만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사실 우리 주변만 살펴봐도 자신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것은 장기만 둬봐도 훈수를 두는 사람이 판을 더 잘 읽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니 혹시 자신의 주변에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말을 아끼지 말고 그들의 재능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길 추천한다. 우리의 눈에 들어온 재능이 어떤 폭발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체호프 하우스 입주자 여러분께.’


아무것도 아닌 저의 집에 찾아와주신 여러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일단 주욱 둘러보세요.

문의 크기, 계단의 장식을 지나

벽난로 위에 걸려있는 낡은 장총도 눈여겨 보세요.


다보셨으면 이제 넓은 커튼이 축 쳐져 있는 무대로 가보죠.

조금이라도 늦으면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 서두르세요.

자, 다들 모이셨으면 이제 커튼을 열어보겠습니다.

.

..

놀라셨나요?

제가 꾸민 무대에 아무도 없어서 놀라신건가요?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관리하는 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랍니다.

그러니 무대 위에는 여러분이 올라가셔야 합니다.

훌륭한 재능을 가진 젊은 여러분들이.


그런데 저기, 그래 저기 뒤에 있는 당신.

당신은 손에 들고 있는 장총을 언제 쏠 생각이신가요?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2015 가을 개편>

'작가를 짓다' 6화

(방송듣기)

http://me2.do/F9IuPiEz

http://me2.do/F9IuPiEz






<참고자료>


『운명적 영감에 빠진 문학가들』 북하우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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