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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14. 2015

스티븐 킹의 완벽한 시작과 끝, 태비사 스프루

작가를 짓다 - 7화


작가는 대부분 글로 표현된다. 그러나 간혹 숫자로 표현되는 작가도 존재한다. 오늘 소개할 작가도 그런 작가 중 하나인데 그를 표현하는 숫자를 몇 개 나열해보자.


50편의 장편 소설(이것만 듣고는 아무도 모르겠지…),
200편의 단편 소설( …체호프인가?),
영화화된 작품 67편(어? 혹시?),
TV 시리즈 31편(… 결국, 그 사람이군!)


그렇다. 오늘 소개할 작가는 문단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항상 탐내는 작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은 1947년 미국 메인 주에서 태어났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고향을 좋아해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메인 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다. (고담이나 라쿤 시티 급으로 잔혹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 메인 주다) 스티븐 킹은 어린 시절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두 살 때 아버지가 "담배 사러 나간다."며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어머니는 스티븐 킹과 그의 이복형 데이브(스티븐 킹의 부모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 줄 알고 데이브를 입양했는데, 그 후 스티븐 킹을 임신했다) 를 양육하며 돈까지 벌어야 했다.


이런 가난한 현실 때문에 스티븐 킹의 집은 비교적 늦게 TV를 구입했다. 덕분에 스티븐 킹은 영상 매체에 익숙해지기 전, 활자문화와 먼저 만났다. 당시 스티븐 킹은 장르 구별 없이 다양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의 버릇 때문인지 스티븐 킹은 후에도 장르 불문 좋은 작품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동화에서부터 시작해서 만화, 소설, 심지어 그 나이 때 볼 수 없는 성인소설까지 가리지 않고 책에 빠져들었다.


다수의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쓰고 싶은 욕구도 생겼는데 그가 처음 쓴 것은 어떤 만화책의 내용을 그대로 글로 옮긴 것이었다. 글을 완성한 스티븐 킹은 곧장 어머니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줬는데 어머니는 천천히 그의 글을 읽어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이 창작이 아닌 만화책에서 베낀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내 실망을 하며 이런 말을 전한다.



어머니의 말은 스티븐 킹에게 있어 일종의 허락과도 같았다. 글을 써도 좋을 것이라는 허락. 그런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스티븐 킹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마치 커다란 건물 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문을 마음대로 열어보아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때부터 '이야기'와 '창작'에 대한 스티븐 킹의 애정은 크게 싹트기 시작한다.


스티븐 킹은 어린 나이었지만 어머니의 말처럼 진짜 창작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 창작한 이야기는 네 쪽 자리 마법의 동물 이야기 였는데 어머니는 이 글을 보고 25센트를 구독료로 주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글에도 돈을 지급한 어머니의 행동은 한 어린 소년을 작가로 인정하는 행동과도 같았다. 스티븐 킹은 이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한 것 같고 25센트를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깊이 창작활동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소년 시절을 지나는 중 스티븐 킹은 그의 형과 함께 일종의 독립신문을 창간하게 된다. 그의 형 데이브는 아이큐가 150~170 사이의 천재였고 스티븐 킹 이상으로 활동적인 성격의 인물이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이 쑤셔 견디지 못했다. 신문 창간도 그런 성격 탓에 재밌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시작된 것이었다. 데이브가 창간한 신문의 이름은 <데이브의 삼류 신문>이었다. 스티븐 킹은 형을 도와 잡일도 하고 인쇄일을 돕기도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신문에 자신의 창작 소설을 실은 것이다. 돈을 받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스티븐 킹이 처음으로 지면에 자신의 글을 담은 기념이 되는 사건이었다.


이 신문을 통해 인쇄와 만난 스티븐 킹은 어느 날, 최초의 컬러 공포 영화 <함정과 진자>를 보게 된다. 영화를 좋아했던 스티븐 킹에게는 이 영화 역시 평소 보는 영화와 다름없는 한 편의 영화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달랐던 것이 있다면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번쩍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이다.


스티븐 킹의 아이디어는 이랬다.

"<함정과 진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인쇄해서 책으로 만들자. 그리고 그 책을 학교 아이들에게 팔아보자."

그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함정과 진자>의 이야기를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데이브의 삼류 신문>을 찍을 때 사용했던 인쇄기를 이용해 자신의 글을 인쇄하고 엉성하게 연결해 책(이라기보다는 제본에 가까운)을 만들어 냈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V.I.B' 라고 출판사 이름을 찍었는데 이는 굉장히 중요한 책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스티븐 킹은 이렇게 굉장히 중요한 책을 학교에 가져가 권당 25센트의 가격으로 팔기 시작한다. 40부 정도 찍은 책은 오후가 되자 36권이 팔려나갔고 스티븐 킹은 자신의 주머니에 9달러라는 거금을 넣을 수 있었다. 대작가의 첫 성공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판매 성적이었는데 이렇게 판매 성적이 좋다 보니 책이 교장 선생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교장 선생님은 책을 보더니 스티븐 킹을 혼내기 시작한다.



교장 선생님은 스티븐 킹의 책에 대해 화내며 동시에 그에게 재능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스티븐 킹은 선생님께 혼났다는 사실에 실망하기보다는 어머니가 해주었던 재능에 대한 칭찬을 다시 듣게 된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 책을 판매한 돈을 다시 친구들에게 돌려주며 <함정과 진자> 사건을 마무리한다.


이후 스티븐 킹은 <북소리>라는 학교 신문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기도 하는데, 이런 정적인 신문으로는 스티븐 킹의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뭔가 더 재밌는 것을 생각하던 스티븐 킹은 <빌리지 보밋>이라는 신문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신문은 일종의 풍자 신문이었다. 스티븐 킹은 학교의 선생님들을 별명으로 부르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으로 신문을 만들어 냈다. 선생님들을 웃음 소재로 사용한 이 신문은 학생들에게 당연히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입소문이 나던 끝에 이번에도 교장 선생님의 손에 신문이 들어가고 만다.


<함정과 진자> 때와 달리 교장 선생님은 크게 화를 내며 스티븐 킹을 나무랐다. 이번에도 주요 내용은 "넌 재능이 있는데 왜 이리 쓸데없는 글을 쓰고 있는 거야."라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의 선생님들은 더 이상 스티븐 킹이 엉뚱한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을 관망하지 않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주었는데 그 일은 바로 학교 주간 신문의 스포츠 담당 기자로 활동하게 하는 것이었다.


스티븐 킹은 성인이 돼서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팀의 광팬으로 활동할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지만, 이 당시만 해도 스포츠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권한 활동이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주어진 일은 어찌 됐든 완성하고 마는 성격 때문에 그는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스티븐 킹은 말하자면 첫 번째 글쓰기 스승을 만나게 된다.


주간 신문의 편집장이었던 존 굴드. 그는 스티븐 킹이 써온 기사를 보고는 그 자리에서 퇴고를 해준다. 그는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고 어떤 부분은 잘 되었는지 말해주었고 특히 이 말 한마디로 스티븐 킹의 펜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안 좋은 부분만 지워버린 거야. 대부분은 제법 훌륭했어.”


존 굴드는 이 이야기 말고도 여러 조언을 해주었는데 훗날까지 스티븐 킹이 기억하고 있는 조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렇게 학창시절을 마친 스티븐 킹은 스스로 돈을 벌며 학비를 마련해 대학에 진학한다. 진학해서도 일을 멈출 수는 없어서 다양한 일을 하다가 학교 도서관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태비사 스프루스. 훗날 스티븐 킹의 아내가 되는 시인 지망생은 시 창작 수업을 함께 받으며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글을 제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그 결과 만난 지 1년 반 만에 결혼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고, 양가에서 도움을 받을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 아이까지 가진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시인을 꿈꾸던 태비사와 소설가를 꿈꾸던 스티븐 킹이었지만 생계를 위해 두 사람은 펜보다 다른 일감을 먼저 손에 들어야 했다. 스티븐 킹은 대부분 세탁소 일을 했고, 태비사는 ‘던킨도너츠’에서 일을 했다. 그 와중에도 스티븐 킹은 꾸준히 소설을 쓰고, 완성된 원고는 성인잡지 같은 곳에 기고하여 돈을 벌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스티븐 킹은 미리 따놓았던 교사 자격증을 이용해 작은 학교의 영어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면 세탁소 일보다 훨씬 글쓰기 좋은 환경이 아닐까 싶지만 스티븐 킹은 늘어난 노동 시간 때문에 되려 글을 쓰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 항상 즐겁게 창작을 하고 글을 쓰던 그였지만 그때만큼은 글을 쓰는 게 정말이지 어려웠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한 부담과 심신의 피로는 그의 창작욕에 찬물을 끼얹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보통은 이때쯤 포기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영어 교사 자리를 잡고 있고, 밋밋하지만 삶을 이어갈 수는 있었으니 글보다는 생업에 더 집중하기 위해 펜을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그러지 않았는데 이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내 태비사의 태도였다.

태비사는 스티븐 킹의 글이 큰돈이 되지 않는 현실을 알면서도 언제나 스티븐 킹의 창작 과정을 응원해주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은 당시도 그렇고 시간이 지난 순간까지 스티븐 킹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 말이 잘 보여주고 있다.



스티븐 킹은 믿음을 양분 삼아 낮에는 일하고 퇴근 후에는 글을 쓰며 언젠가 책을 낼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의 시작이 될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새로이 구상한 작품은 예전에 그가 고등학교 관리인으로 일하며 여자 탈의실을 청소하던 때의 경험과, <라이프> 지에 실린 염력 기사가 합쳐지면서 시작됐다. <라이프> 지에 실린 기사는 이런 내용이었다. “정신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은 초경 전후의 나이의 사춘기 소녀들에게 자주 발견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경험과 기사를 합쳐 ‘염력을 가진 소녀’의 공포 이야기를 떠올리고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다. 막힘없이 글은 흘렀고 문제 될 것 또한 없어 보였다. 하지만 세 쪽쯤 썼을 때 스티븐 킹은 돌연 글쓰기를 멈추고 만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완성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 당시 스티븐 킹이 글을 기고하던 매체는 성인잡지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성인잡지의 소설란은 날이 가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스티븐 킹은 잡지가 원하는 분량의 글을 써야만 돈을 받고 팔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떠오른 작품은 짧은 분량으로는 도저히 소화해 낼 수 없는 작품으로 보였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지금 쓰는 이야기가 얼마나 훌륭한 작품으로 태어날지는 모르지만 그런 도박에 긴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세 쪽의 이야기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스티븐 킹이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전날 버린 글 세 쪽을 들고 스티븐 킹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티븐 킹은 무슨 일인가 싶어 아내를 쳐다봤는데 그때 아내는 이런 말을 건넸다.



아내는 이 소설이 정말 재밌을 것 같다며 어서 뒷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재촉했다. 스티븐 킹은 이런 아내의 응원에 힘입어 이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갈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힘을 모아 집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건으로 태어난 작품은 바로 그의 데뷔작이 되는 『캐리』다. 작품을 완성한 스티븐 킹은 친구가 활동하던 출판사 ‘더블데이’에 원고를 투고한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서 수업하던 중에 스티븐 킹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급한 일이라며 교무실로 달려가 받은 전화기 너머로 흥분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방금 온 전보 한 통을 스티븐 킹에게 읽어주었다.


“『캐리』 선인세 2,500달러에 출간이 결정되었음.”


스티븐 킹과 태비사는 날듯이 기뻐하며 『캐리』의 출간을 축하했다. 그리고 태비사는 이제 책도 나오니 교직을 그만하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어떠냐며 제안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은 아직 『캐리』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어찌 됐든 가족의 생계가 먼저였다.

다만,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팔린다면 3만 달러(당시 스티븐 킹의 연봉의 4배)를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기대는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날이 찾아온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스티븐 킹은 다음 작품의 집필을 하고 있었는데 더블에이 출판사의 친구 빌 톰슨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빌은 다짜고짜 지금 앉아 있느냐고 묻고는 지금 당장 앉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스티븐 킹에게 이 소식을 전해준다.


“『캐리』의 보급판 판권이 40만 달러에 시그넛 북스로 넘어갔다네.”


스티븐 킹은 다리에 힘이 쭉 빠져 문간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몇 번이나 지금 말한 숫자가 정확한지 다시 확인하고는 30분이나 더 통화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때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통화를 끊고 스티븐은 처가에 갔던 태비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태비사는 이미 출발한 후였다. 이 소식을 어서 알리고 싶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던 스티븐 킹은 시내로 향했다. 그리고 갑자기 태비에게 어머니날 선물을 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값비싸고 굉장한 물건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휴일의 시내에는 굉장한 물건을 파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결국, 스티븐 킹은 최선의 선택으로 헤어드라이어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이미 태비는 부엌에 있었고, 스티븐 킹은 헤어드라이어를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 왜 주는 거예요?”

태비사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스티븐 킹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보급판 판권이 팔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스티븐 킹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태비사는 스티븐 킹이 그랬던 것처럼 어깨너머로 작고 초라한 집 안을 둘러보고는 곧 울기 시작했다.






킹 하우스의 입주자들.

 킹 하우스의 첫 번째 입주자는 정유정 작가로 선정해보았다. 『7년의 밤』, 『28』 등의 작품으로 한국 서스펜스 소설의 대표주자로 나선 정유정 작가는 스티븐 킹에게서 이야기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자주 밝히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인터뷰에서는 스티븐 킹을 하느님으로 모시고 있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스티븐 킹과 가장 가까운 한국 소설을 고르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정유정 작가의 책을 고르면 후회 없으실 것이라 믿기에 첫 번째 입주자로 선정해보았다.



두 번째 입주자는 리처드 바크만이다. 이는 실존 인물은 아니고 스티븐 킹의 필명이었는데 킹이 이 필명을 사용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티븐 킹이 활동하던 당시 미국에서는 다작하는 작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스티븐 킹은 이런 풍조를 비꼬아 보겠다는 의도와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인기 작가가 된 것인지, 아니면 시대를 잘 타고나 운 좋게 인기 작가가 된 것인지 스스로 시험해보고 싶어서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이쯤 되면 결과가 궁금해질 만한데 스티븐 킹은 결론적으로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을 얻었다.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은 평소 스티븐 킹에게 날 선 비난을 했던 비평가들에게서도 칭찬을 끌어냈다. 또한, 대중의 인기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마치며.


지금까지 스티븐 킹과 그의 조력자 태비사의 이야기를 해보았다. 스티븐 킹은 태비사와의 관계를 물어보는 질문에 이런 답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선 지퍼라고 표현했지만 태비사는 스티븐 킹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고 퇴고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를 바라봐주는 최초이자 최고의 팬이며 완벽한 파트너였다.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스티븐 킹을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 『캐리』의 원고는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불탔을 것이고 우리는 수십 편의 소설, 수십 편의 영화, 수십 편의 드라마가 함께 불타오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일은 작가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자소서를 쓰고, 누군가는 보고서를 쓰고, 누군가는 기획안을 쓰다가 스티븐 킹 처럼 휴지통에 던져버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의 컴퓨터에서 휴지통 효과음이 들린다면, 태비사 처럼 옆에 있는 이의 휴지통을 자세히 지켜봐 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저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만으로도 내 곁에 둔 사람은 행복해 할 것이며 작업의 이유를 찾을 것이 분명하다.





‘킹 하우스 입주자 여러분께.’


환영의 인사를 해야 하는데

일단은 저기 날아오는 책을 피하고 봅시다.


그래요.

이 집에서 책은 일종의 공격이자 무기 입니다.

당신이 피하고 있는 그 책들은 내가 당신에게 던지는 벽돌이지요.


피하는 것을 멈추면 안됩니다.

나는 잠깐의 여유도 허락치않고 당신에게 이야기를 던질 테니까요.

방심하면 그 순간 당신의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것입니다.


계속 이렇게 피하고만 있어야 하냐고요?

당연히 아니죠. 이곳엔 성역도, 성자도 없습니다.

누구든 그저 던지고 싶은 것을 움켜쥐어 던지고,

누구든 받고 싶은 것은 받고, 피하고 싶은 것은 피하면 되는 곳이지요.


그러니 당신도 어서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십시오.

그리고 던질만한 것을 휘갈겨 쓰십시오.

완성이 되었나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입니다.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2015 가을 개편>



'작가를 짓다' 7화



(방송 듣기)



http://me2.do/5nnRMs2X



<참고자료>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캐리』 황금가지

『작가란 무엇인가 2』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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