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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20. 2015

제임스 조이스의 마지막 창을 내준 실비아 비치

작가를 짓다 - 8화


문학계에 전해져 내려오는 아주 재미난 농담이 있다. 

"이 작가의 이 작품은 읽은 사람보다 이 책으로 논문을 쓴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 …이게 농담이냐고? 장난하지 말라고? 농담이라는 말 앞에 '문학계'라고 덧붙인 걸 잊지 마시라)


아무튼, 이 농담은 다시 말하면 이 작가의 이 작품이 굉장히 난해하고, 읽기 어려우며, 한 번 펼치면 곧장 다시 닫고 싶은 그런 작품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만큼 연구하고 분석하고 이야기 나눌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대체 무슨 작품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화자 되는 것일까? 몇몇 작가와 작품들이 떠 오르실 텐데 오늘 소개할 작가는 그중에서도 단연 상위권을 차지하기에 충분한 작가 『율리시스』의 제임스 조이스다.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다. 조이스의 아버지는 지방 정부의 세금 징수원이었는데 벌이가 시원찮았는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조이스는 여섯 살 때 '클롱고우스 우드' 기숙학교에 입학하면서 첫 정규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결국 학교를 자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조이스는 다른 기독교 형제 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이어 나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조이스는 작문에 꽤 재능을 보여 글쓰기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재능 덕분에 조이스는 더블린에 있는 '벨비디어' 학교에 무료로 다닐 수 있게 되어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순탄했던 학업과 달리 실직을 당한 아버지는 점차 나쁜 행동을 일삼기 시작했는데 음주와 폭력은 기본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어머니는 인내하며 종교의 힘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폭주하는 아버지와 기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은 조이스도 엇나갈 수밖에 없었는데 14살 때 더블린 사창가를 드나드는 등의 행동을 했다고 한다. 


이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조이스는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당시 가장 큰 관심사였던 다양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때 배운 언어로는 영어, 이탈리아어, 불어가 있었고 워낙 언어 쪽 재능이 뛰어나 계속해서 각국의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아홉 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언어적 재능을 이용한 일화 중 하나는 희곡 작가 헨리 입센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 일이다. 조이스는 헨릭 입센의 희곡 작품을 너무나 감명 깊게 읽은 나머지 그가 사용한 언어인 노르웨이어를 독학으로 익힌다. 그리고 작품을 원어로 읽을 뿐만 아니라 입센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다양한 언어를 탐닉하고 창작욕을 불태우기 시작할 즘 조이스는 자전소설 <스티븐 히어로>를 쓰기 시작한다. 상당히 마블 코믹스 같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히어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자전소설이다 보니 당연히 배경도 조이스의 고향 더블린이었다. 하지만 작품 속에 그려진 더블린의 모습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들은 너무나 참혹하고 수준 이하의 모습들이어서 당시 더블린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결국 'Dana'라는 잡지에서 연재하지만 출판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되려 조국과 점점 척을 지게 된다.  



자신의 천재성을 인정하기는커녕 배척하기만 하는 조국에서 버티지 못한 조이스는 결국 유럽대륙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 결심에 함께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조이스의 아내 노라 바나클이다. 노라는 더블린의 한 호텔에서 하녀로 일하던 여성이었는데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하고 평생을 함께하게 된다. 노라 바나클은 조이스처럼 문학에 종사하거나 문학작품을 즐겨 읽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집필할 때도 그녀는 그 작품을 한 장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늘 뭔가를 끄적이던 조이스의 버릇에 언제나 툴툴거렸고, 입버릇처럼 작가 대신에 농부나 은행가, 하다못해 넝마주이와 결혼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 푸념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노라 바나클과의 결혼생활이 그다지 순탄치 못할 것 같지만 사실 노라 바나클은 조이스를 아낌없이 내조한 내조의 여왕이었다.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노라 바나클이 조이스를 선택한 것이 조이스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조이스는 노라 바나클의 아낌없는 내조 덕분에 힘든 타국 생활과 생활고, 그리고 창작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의 조력자는 노라 바나클이 아니다) 


조이스는 취리히 등 유럽 대륙에 살면서 자신의 언어적 재능을 이용해 영어 교사 생활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리고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데 1906년 『더블린 사람들』을 완성해낸다. 이 작품은 더블린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편들이 엮인 책인데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음울하고 불행한 삶을 보여주는 작품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증오했다. 이 작품은 그들의 거친 항의와 삭제요구, 심지어 고소까지 당하면서 출판이 거절되었는데 결국 작품을 완성하고 8년이 지난 1914년이 되어서야 완전판으로 출간될 수 있었다. 


『더블린 사람들』의 출간이 이루어지고 조이스는 앞서 출간 거절을 당했던 『스티븐 히어로』를 기본으로 한 새로운 작품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한 작품. 『율리시스』 역시 이 시기에 집필하기 시작한다. 


조이스는 자신의 다른 작품도 그랬지만 『율리시스』를 연재하는 데는 더 큰 고통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영어권 국가들에서 음란하다는 이유로 금서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재를 할만한 공간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그의 천재성을 인지한 위버 여사가 자신이 만들고 있던 정기 간행물 <에고이스트>에 작품을 연재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당시 인쇄업자들은 문제작을 인쇄하다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 했기 때문에 조이스의 작품은 거부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에고이스트>의 독자들도 가족 모두가 보는 정기간행물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며 항의 편지를 끝없이 보내왔고, 이에 구독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위버 여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조이스의 전 작품을 출간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라며 <에고이스트>를 이어가는 대신 출판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조이스의 작품을 출간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이번에도 이 일을 맡아줄 인쇄업자를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결국, 위버 여사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고, 미국의 <리틀 리뷰>만이 『율리시스』의 유일한 연재처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 역시 『율리시스』를 외설적이라며 출간금지를 한 상황이었기에 <리틀 리뷰>도 계속해서 연재를 이어가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 리뷰>는 "잡지가 폐간되는 한이 있더라도 작품 연재를 멈추지 않겠다."며 치열하게 싸운 끝에 폐간된다. (이 무슨 염세주의 영화와 같은 결론이란 말인가…) 


이렇게 『율리시스』의 연재가 계속 무산되고 방법을 찾지 못하자 조이스는 "이제 내 책은 결코 나올 수 없을 거야."라며 낙담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한 여인이 찾아온다. 




여인의 이름은 실비아 비치. 직업은 서점이자 도서대여점이었던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주인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조이스가 파리에서 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문학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졌고 조이스는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조이스는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 자주 들려 책을 빌리기도 하고 실비아 비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조이스를 만나기 전부터 그의 작품에 관심이 있던 실비아 비치는 조이스 필생의 역작이 될 『율리시스』가 출간되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그녀는 낙담하고 있는 조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실비아 비치의 제안에 조이스는 곧장 허락한다. 이제 남은 것은 파리에서 『율리시스』가 출간되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실비아 비치가 출판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출간하려는 책은 악명높은 『율리시스』였기에 어려움은 다른 책에 비해 곱절로 높은 상태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러지 않았는가. 간절히 바라면 우주 만물이 도와준다고…) 


『율리시스』 출간의 첫 번째 문제는 인쇄업자를 찾는 일이었다. 실비아 비치는 당시 파리의 최고 인쇄업자였던 다랑티에르 인쇄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율리시스』가 왜 영어권 국가들에서 금서가 되었는지 설명을 하고 인쇄를 부탁했다. 다행히 끈질긴 설득 끝에 실비아 비치는 인쇄를 허락받게 된다. 


인쇄 계약을 마친 실비아 비치는 『율리시스』 무삭제 완전 판을 출간한다고 광고를 하고 1,000부 한정본이라는 점을 들어 예약을 받기 시작한다. 소문은 무성하고 접하긴 어려웠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무삭제 완전 판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순식간에 예약자가 몰려들었다. 그때 받은 예약자 리스트를 보면 눈에 띄는 이름이 꽤 많은데 당시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회원이기도 했던 앙드레 지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서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츠 등 문학계 거물 인사들이 대거 구매 예약을 했다. 


인쇄 업자도 찾았고, 예악도 받았으니 이제 찍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이스의 고집이 문제였다. 조이스는 인쇄를 넘기는 날까지 원고를 수정했고, 계속되는 수정 요청에 인쇄 작업 기간과 비용은 늘어나기만 했다. 게다가 조이스는 당시 눈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워낙에 악필이었기에 조이스의 원고를 타자로 옮길 타자수를 구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글을 알아보고 해독할만한 이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이스의 말에 따르면 아홉 번째 타자수는 원고를 보자마자 던져 버리고는 도망가서 소식이 끊겼다고 했고, 어떤 타자수는 너무나도 절망한 나머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실비아 비치는 다행히 조이스에 버금가는 악필이었던 이를 찾아 그에게 조타수 일을 맡긴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악필은 악필을 알아보는 법이다)


인쇄업자도 구했고, 예약자도 받았으며, 원고를 옮길 타자수도 구했다. 이제 정말이지 출간이 눈앞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조이스의 고집은 빛을 발하는데 이번 문제는 '표지'였다. 

조이스는 『율리시스』의 토대가 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그리스 작품이었기 때문에 표지 색을 '그리스 블루'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색의 종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비슷한 색의 종이를 보여주면 조이스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인쇄업자 다랑티에르는 독일까지 가서 그리스 블루의 종이를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색깔이 아니라 텍스쳐가 조이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실비아 비치와 다랑티에르는 흰색 마분지에 파란색을 인쇄해서 쓰기로 결정한다.


이런 천신만고 끝에 『율리시스』는 작품 내용만큼이나 묵직한 1.55kg 무게의 책으로 탄생했다. 조이스는 자신의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직접 책 포장을 도와주는 성의를 보였다. 포장된 책은 예약자들의 주소로 배달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은 예외였다.  



미국에서 금서 판정을 받은 『율리시스』는 발송된 직후 뉴욕 항구에서 압수되어 버렸다. 그래서 실비아 비치는 나머지 발송분을 멈추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하지만 파리에서 미국까지 금서를 세관에 걸리지 않고 보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한 명의 사내가 등장하는데 그는 스스로 '셰익스피어 & 컴퍼니' 최고의 고객이라 말하고 다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헤밍웨이는 실비아 비치의 고민을 듣고는 24시간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서점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헤밍웨이는 시카고에 사는 친구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작전을 설명했다. 


"내 친구가 캐나다 토론토에 작업장을 만들 것이오. 

그것이 완성되면 『율리시스』를 토론토의 작업장으로 모조리 보내는 겁니다. 

아직 캐나다에서는 이 책이 금서가 아니니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헤밍웨이의 말대로 『율리시스』는 토론토에 있는 헤밍웨이 친구에게 무사히 도착했다. 문제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친구는 책에 날개를 단 듯 『율리시스』 40여 권의 책을 국경 너머로 밀반입시켰는데 방법은 이렇다. 


헤밍웨이의 친구는 매일 바지 속에 『율리시스』를 한 권씩 집어넣은 채 미국으로 가는 정기선에 타서 책을 미국으로 옮겼다. 매일 한 권씩 하다 보니 일의 진행이 더뎠는데 열댓 권의 책만 남겨놓은 상황이 되자 항구 세관원들이 슬슬 헤밍웨이 친구에게 의심을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정기선으로 왕복하는 이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한 명의 친구를 더 붙여준다. 이제 두 명이 남자가 이번에는 『율리시스』를 두 권씩 바지 앞뒤에 넣고 정기선에 올랐다. 그리하여 『율리시스』는 무사히 미국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다.


위에 언급한 사건 말고도 『율리시스』는 출간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한번은 타자수의 남편이 원고를 보고 이런 외설적인 글이 다 있느냐며 벽난로에 던져버려 원고를 손실하기도 했으니 말 다 했지 뭔가) 

이런 고초 속에서도 실비아 비치는 『율리시스』라는 위대한 작품을 출간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어려운 출간의 과정을 견디고 『율리시스』를 세상에 펼쳐 보였다. 이런 실비아 비치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까지 더블린 3부작을 완성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노력 끝에 펼쳐진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20세기 문학 최고의 발견이자 사건, 그리고 연구 과제로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만약 실비아 비치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없었더라면 외설이라는 단어 아래 위대한 작품을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녀의 행동이 문학사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 역시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실비아 비치의 노력에 감사하는 의미로 선물을 준비했는데 그 선물이 자그마치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친필 원고였다. (물론 악필로 쓴…)


친애하는 비치 양,

내가 끄적여놓은 것들을 위해 당신이 기꺼이 수백 프랑이나 되는 우편료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혹시나 『더블린 사람들』의 친필 원고를 갖고 싶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하는 대로 원고를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로써 제가 남은 것은 이 책 초판의 견본뿐인 셈입니다.

내 생각에 『더블린 사람들』의 일부는 더블린에서 쓴 것 같군요. 그리고 트리에스테에서 써놓고 지금까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약 1,500쪽 분량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원고(물론 책으로 나온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원고 더미도 있습니다.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당신의 친구 제임스 조이스  



조이스 하우스의 입주자들

조이스 하우스의 첫 번째 입주자는 김종건 교수다. 김종건 교수는 제임스 조이스 문학 연구의 권위자이자 제임스 조이스 학회를 창립하기도 한 인물이다. 김종건 교수와 제임스 조이스의 만남은 1960년으로 올라가는데 김종건 교수는 1960년 율리시스 원어 강독을 듣고는 학자로서 평생을 바칠 작품으로 『율리시스』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각오답게 김종건 교수는 난해하다고 정평이 난 『율리시스』를 세 번에 걸쳐 번역해 낸다. 그리고 조이스가 17년간 집필한 『피네간의 경야』라는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65개국의 언어를 사용한 작품으로 '번역 불가'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는 혼신의 노력 끝에 세계에서 네 번째로 이 책의 번역에 성공했고 그런 노력 덕분에 우리는 한국어로 조이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입주자는 조이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위버 여사다. 위버 여사는 앞에서 말했듯이 <에고이스트>의 편집자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를 잡지에 연재하기 위해 모든 불이익을 감수한 인물이다. 그녀는 조이스의 작품을 내기 위해 공들여 만든 <에고이스트>를 포기하고 그의 작품 출간에 매달렸을 정도로 조이스의 작품을 사랑했다. 그리고 낭비벽이 심했던 조이스에게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어 조이스가 문학 활동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조이스 하우스의 입주자로 결정을 해보았다. 




마치며. 

지금까지 제임스 조이스와 그의 조력자 실비아 비치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사실 실비아 비치가 도움을 주기 전에도 제임스 조이스는 잘 알려진 작가였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거부한 조이스 필생의 역작 『율리시스』는 그녀가 아니었으면 해적판 원고로만 남아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비아 비치는 조이스의 '더블린 3부작'의 마지막 단추를 꿰어 준, 집으로 치면 마지막 창을 내어준 은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한다면, 혹은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다른 작가들을 좋아한다면, 진실로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큰 산을 넘어준 실비아 비치와 '셰익스피어 & 컴퍼니"를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조이스 하우스 입주자 여러분께.’


이 집에 오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습니까. 

또 이 집에 오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까. 

발을 떼고도 다시 멈추고, 다시 또 멈추고. 

얼마나 많은 고민의 걸음이 당신을 이곳에 닿게 한 것입니까. 


이 집에 들어섰다고 해서 고지식하게 차례를 지키며 책장을 넘길 필요는 없습니다. 

손이 미끄러져 두 페이지를 한 번에 넘겨도 좋고, 

마음이 가지 않아 다시 그리스 블루의 표지를 지켜보는 것도 좋습니다. 

난 당신이 당신의 흐름을 어그러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바람이 가는 곳을 향해 창으로, 

향기가 머문 곳을 향해 침대로, 

가슴이 시킨 곳을 향해 문밖으로. 

그렇게 이 집에서의 짧은 하루를 보내십시오. 


그것이 내가 사랑한 도시.  


더블린에서의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입니다.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2015 가을 개편>

'작가를 짓다' 8화   

(방송 듣기) 

http://me2.do/GjwLRh3A


<참고자료>

『율리시스』 생각의나무

『셰익스피어 & 컴퍼니』 뜨인돌출판사

『여자와 책 』 슈테판 볼만제임스 조이스의 마지막 창을 내준 실비아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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