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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Nov 04. 2015

조지오웰 사형수 그리고 코끼리들

작가를 짓다 - 10화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상상력을 앞에 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머릿속에서 '짠'하고 태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상상력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의 체험과 지식이 만나 수정 되어야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야기할 작가도 뛰어난 상상력으로 완벽한 소설들을 발표해 현재까지도 문학사에 굵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은 작가다. 하지만 그가 칭송받았던 소설 속 상상력의 세계는 그의 원체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피지배층에서 권력자로, 탄광의 광부로, 극빈층의 대문 안으로, 심지어 전쟁의 총탄 속에서 목덜미를 스치는 경험을 하기도 했던 작가. 오늘 이야기 나눌 작가는 에릭 아서 블레어. 필명 조지오웰이다.


조지오웰은 1903년 앵글로 인디언(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인도 뱅갈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가 인도정부 아편 국의 하급 관리였기 때문이었는데 오웰은 다섯 살이 되던 해까지 인도에서 생활했다. 다섯 살이 되자 교육을 오웰은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영구 귀국을 한다. 그리고 첫 정규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오웰의 첫 학교는 세인트 시프리언스 사립 예비학교다. 이 학교는 당시 신흥부자들의 자제들이 주로 다니던 학교였는데 오웰은 불행히도 부잣집 자제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부자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학교와 어머니의 이해관계를 조금 들여다봐야 한다.


당시 영국의 출세 루트를 보면 명문고에 입학하여 명문대에 진학하고 졸업 후 고급 관료가 되는 것이 가장 완벽한 출세 루트였다. (지금의 우리의 현실과도 딱히 달라 보이지 않는다) 오웰의 어머니는 머리가 좋았던 오웰을 이 루트를 통해 성공하게 하기 위해 좋은 사립 학교를 알아보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시프리언스 사립 예비학교는 명문고에 진학할만한 인재를 찾고 있었다. 명문고에 진학을 많이 시키면 시킬수록 학교의 이름과 명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는데 이를 위해 가난하고 머리 좋은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출세 루트를 향한 마음과 학교의 명성을 높이고자 한 마음이 만나 오웰은 부자 사립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프리언스 사립 예비학교에서의 시간은 오웰에게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오웰의 부잣집 동기들은 시간만 나면 고급 자동차, 집사의 수, 시골 별장을 경쟁적으로 자랑하며 으스댔고 학교 선생님들은 노골적으로 가난한 오웰을 무시했다. 특히 교장부부가 오웰에게 했던 행동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천한 행동이었다.

몇 가지 사건을 살펴보면 이렇다.


오웰은 돈이 없어 당시에 개인 크리켓 방망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사실을 두고 교장은 오웰에게 "네 부모는 그것을 살 능력이 없어"라며 대놓고 모욕을 했다. 오웰은 평범한 대나무 막대기가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곳에 서 있다는 것을 그때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또 한 번은 기관지염과 폐 질환을 앓고 있던 오웰이 기침을 하자 교장이 "네 숨 쉬는 소리는 마치 아코디언 소리 같다. 늘 먹을 것만 밝히니 그런 거야."라며 또 한 번의 모욕을 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학교의 급식은 너무나 형편없어서 오웰은 언제나 배가 고팠는데 다른 부잣집 아이들처럼 사비로 좋은 음식을 사 먹을 수 없어서 항상 굶주린 채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웰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잘했음에도 무수히 많은 체벌을 받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부모의 연 소득이 2천 파운드 이상의 아이는 절대 매를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사건을 종합해보면 결국 오웰은 학교의 명성을 올려주기 위해 고용된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때의 원체험은 오웰에게 '권력'이 얼마나 무섭고 더러운 것인지 뼛속 깊게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 인식은 훗날 그의 작품 전반에 깊은 메시지로 담기게 된다.


오웰은 무수한 차별 속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명문 사립고 '이튼'(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이 되는 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에서 오웰은 시, 단편, 수필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많지는 않지만, 훗날 출판 등에서 도움을 주는 친구들도 사귀게 된다. 하지만 이튼에서의 성적은 그리 훌륭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오웰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청 경찰국에 지원한다. 당시 명문대 입학만큼이나 어려웠던 시험을 7등으로 통과한 오웰은 근무처로 '버마'(지금의 미얀마)를 선택한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오웰의 원체험은 철저한 약자로서의 체험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되는 버마에서의 일은 반대로 오웰이 '권력자'로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앞선 약자의 경험에서 오웰이 '수치심'을 갖게 되었다면 이제부터 시작될 권력자로서의 경험은 오웰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

오웰은 1922년 버마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오웰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어느 백인 경찰이 배에서 하역작업을 하던 쿨리(인도인 노무자)에게 발길질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웰은 대체 무슨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가축처럼 때릴 수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웰을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영국인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한 오웰은 제국경찰의 업무를 시작해 나간다. 버마 생활 중 오웰이 가장 우선시했던 것은 우선 버마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원래 언어감각이 탁월했던 오웰은 버마어를 매우 빨리 습득했고, 힌두어와 같은 어려운 언어들도 익혀 나갔다. 그런데 당시 오웰의 이런 행동은 버마의 영국인들에게는 낯선 장면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버마에 거주하던 영국인들은 40년 이상 그곳에 살더라도 버마어를 한 마디도 배우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겼기 때문이다. 이유는 예측 가능한 그것이다. 미개한 민족의 언어를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웰은 그들과 달랐다. 오웰은 버마인들과 친밀하게 지내고자 했고, 인도인을 인종이 아니라 하나의 개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로 함께 소통하고 싶어 했다.


이렇듯 기존의 영국지배층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오웰이었기에 제국 경찰 일은 심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영국의 지배체제와 거기에 속한 영국인들이 토착민들에게 가하는 노골적인 불의는 오웰로 하여금 커다란 죄의식을 갖게 했는데 그중에서도 두 가지 사건은 오웰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글쓰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이고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를 선물한다. 지금부터 두 사건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 사건은 그의 에세이 <교수형>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지 오웰은 어느 날 관할의 감옥에서 힌두인 사형수를 형장으로 호송하게 된다. 형장에 도착한 사형수는 30여 미터 떨어진 교수대를 향해 걸어갔는데 그 길에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 사형수는 아무렇지 않게 웅덩이를 피하려 발길을 옮겨 디뎠고 오웰은 그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오웰은 이렇게 생각했기에 사형수의 발걸음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웰은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 "정신이 멀쩡하고 건강한 한 인간의 생명을 파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는데 오웰조차도 인도인들을 권력을 가진 제국 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웰은 이 장면을 통해 어떤 생명에도 높낮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인간도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갈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웅덩이를 피해 걸었던 사형수의 몸이 줄에 매달린 것을 보고 권력을 가진 이로써 씻을 수 없는 죄의식을 느끼게 했다. 이날 얻었던 깨달음과 죄의식은 오웰이 진지하게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오웰이 남긴 이 말로 알 수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에 나온 사건이다.

어느 날 코끼리 한 마리가 사슬을 끊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한다. 코끼리는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난장을 치는데 이 때문에 인디언 쿨리 한 명이 사망하게 된다. 오웰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 총을 가져오게 했는데 이때는 코끼리가 이미 얌전해진 상태였다. 이제 코끼리를 다시 잡아가면 그만이었지만 오웰과 코끼리를 둘러싼 버마 군중들은 코끼리를 죽이길 기대하고 있었다. 버마 군중들은 언제나 그랬듯 영국인과 영국인의 무기가 자신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내 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오웰은 그런 기대에 찬 군중들의 심리에 눌려 결국 다섯 방의 사격으로 코끼리를 죽이고 만다.


오웰은 이 사건을 보고 소위 말하는 '백인의 책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한 백인의 책무란 것은 영국은 인도의 자연스러운 지배자이고 지배자의 권력은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인식을 말한다. 영국인들은 이 백인의 책무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었던 것이었고, 이런 정당성에 물들어 있는 버마 군중들의 기대를 오웰은 져버려선 안 되는 것이었다.


결국, 오웰은 자신의 나라가 지배하는 식민지 군중들에게 쪽팔리지 않기 위해 위협이 되지 않는 코끼리를 쏴버린 것이었다. 이 사건을 겪으며 오웰은 어느새 자신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권력자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그들에게 자신과 영국이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의 깨달음은 오웰로 하여금 "나는 백인이 폭군이 될 때 그가 파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자유"라는 교훈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오웰은 이 사건을 통해 "제국주의는 식민주민을 노예화할 뿐 아니라 무수한 방식으로 주인도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작품 전반에 제국주의를 극도로 비판하고 거부하는 몸짓을 주요한 메시지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렇듯 오웰은 버마에서 권력자로서 겪어야 했던 두 가지 사건인 '사형수 사건'과 '코끼리 사건'을 통해 권력자로 져버려선 안 되는 죄의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인간 그 자체를 파괴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글에 담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결국, 조지 오웰이란 작가와 『버마시절』, 『동물농장』, 『1984』 등 위대한 작품들은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폭발하여 탄생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웰 하우스의 입주자들.

첫 번째 입주자는 그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으로 선정해봤다. 그녀는 영문학과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녀는 조지오웰과 결혼 후, 그와 함께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어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내이자 동지로서 오웰을 돌봐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오웰은 그녀를 통해 작품 속에 유머를 녹여내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실제로 『동물농장』, 『숨 쉬러 나가다』 등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위트와 유머는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오웰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렇게 오웰을 헌신적으로 내조한 아일린은 오웰에게 큰 부를 안겨준 『동물농장』의 성공은 보지 못하고 일찍 사망하고 만다. 죽으라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인데 이제라도 오웰의 성공이 주는 안락한 생활을 느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정을 해보았다.


두 번째 입주자는 프롤 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롤은 프롤레타리아. 즉, 임금노동자 계급을 의미하는 말이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을 참가하고 나서 이런 말을 남긴다.

오웰의 이 말은 세상의 모든 프롤 에게 큰 희망과 의지를 주고 있다. 『1984』의 배경이 되는 1984년으로부터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빅브라더들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롤은 빅브라더들로 하여금 고통받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프롤은 쉽게 좌절하거나 쉽게 포기해 버린다. 이미 지쳐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런 프롤에게 오웰은 미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 당장은 그의 말이 쉽게 와 닿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피지배자가 되어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고, 지배자가 되어 권력을 휘두른 적도 있는 그가.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포화 속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직접 경제적 최하층민이 되어 병을 얻는 것을 감수하기도 한 그가. 그렇게 사회의 위와 아래를 모두 겪어본 그가 미래는 프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는 다시 한 번 그의 말에 믿음을 가져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의 집에서 그의 작품과 함께 말이다.




마치며.

지금까지 조지오웰과 사형수 그리고 코끼리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작품 세계의 시작과 메시지를 들여다보았다. 사실 지금 이야기한 사형수와 코끼리 사건은 사소하다면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에 시선을 던지는 자세는 시선을 받은 이들도 변화시키지만, 시선을 주는 자기 자신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우리는 제국 경찰의 지휘봉이 되어 아무 의미 없이 휘둘러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조지오웰의 글을 보고 조금 더 깊은 생각과 사유를 하게 된다면 조지오웰이 그랬듯 작은 곳에, 그리고 평범한 사람에 귀한 시간과 시선을 던져보길 바란다. 오웰이 말한 프롤의 미래. 그것 역시 이 작은 시선에서 시작될 것이다.





‘오웰 하우스 입주자 여러분께.’


오웰 하우스에 오신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은 대개 <1984>의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동물농장>의 동물들은 어떻게 설정하게 된 것인지를 묻더군요.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여기까지 오시는 길에 여러분은 무엇을 보았는지 묻고 싶군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발이 닿았고, 눈이 머물렀고, 귀에 스친 것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종이에 옮기는 겁니다.

사실 그것이 전부니까요.


믿을 수 없다고요?

행동하지 않고 내뱉는 ‘믿음’이란 말은 위험합니다.

상상하지 않고 흘리는 ‘행동’은 더욱 위험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시간이 감각한 것을

여러분의 언어로 사유하십시오.


그것이 가능하다면.

미래란 시간의 주인은 우리가 될 것입니다.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2015 가을 개편>

'작가를 짓다' 9화   

(방송 듣기)

https://goo.gl/2s4De4


<참고자료>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 한길사

『코끼리를 쏘다』 실천문학사

『198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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